움직이는 풍경, 볼보 XC90 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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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풍경, 볼보 XC90 B6
  • 최주식
  • 승인 2021.06.26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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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름이 좋은 곳에 데려가 준다”라는 내용의 어느 정유회사 광고가 있었다. 이 카피는 어쩌면 ‘기름’ 대신 ‘자동차’가 되었으면 더 좋았을지 모른다. “좋은 차가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말은 얼마나 근사한가. 이때 ‘좋은 차’의 의미는 비싸거나 고급차의 개념보다 내가 좋아하는 차, 그리고 ‘좋은 곳’이란 내가 가고 싶은 어딘가라는 의미를 담고서 말이다. 볼보 XC90 B6을 만나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은 장거리 여행이었고, 그 지점에 부산이 꽂혔다. 

출근길 혼잡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여명의 도로 위에는 생각보다 차들이 많았다. 하지만 흐름은 순조롭게 이어진다. 대시 패널 위에 동그란 바워스 앤 윌킨스 스피커가 무게 추처럼 자리 잡고 있다. 옵션이지만 이게 없는 볼보는 왠지 어색해 보인다. 어느새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도시의 흔적은 사이드 미러 속으로 사라지고 멀리 산등성이가 꼬리를 문다. 스펙트럼의 붉은빛이 강한 파장을 일으킨다. 아침해가 이제 막 산봉우리를 벗어나려는 참이다. 도로 위에서 스티어링 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은, 일찍 길을 나선 자의 전리품 같은 것이다. 
 

 

사위가 밝아지면서 실내의 실루엣도 뚜렷해진다. 수공 느낌을 주는 패널 상단의 바느질과 계기를 감싸는 크롬, 크리스탈 기어 레버가 햇살에 눈을 뜬다. 간결하고 기능적인 실내의 미덕은 편안함과 차분함을 준다는 것. 실내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경우 더 중요해지는 덕목이다. 예전에 커보였던 세로형 디스플레이가 이제는 평범해졌다. 최근에 나오는 차들이 경쟁적으로 사이즈를 키우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볼보는 그 균형을 잘 맞추어 왔다는데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균형은 디자인적인 비례에서부터 무게중심, 차체의 밸런스를 포함한다. 
 

좋은 자세를 만드는 운전석은 기능적이고 편안하다

볼보의 변화는 점진적이다. 변하지 않은 듯 변화는 조용하게 한 걸음 앞서 가고 있다. 볼보의 새로운 파워트레인 B6은 가솔린 T6을 대체하는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다. 드라이브-E 시스템의 2.0L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300마력을 낸다. 42.8kg·m의 두툼한 토크가 2100~4800rpm의 넓은 구간에서 발휘되어 고속으로 이어지고 유지되는 과정을 순조롭게 해낸다. 이 정도 덩치의 차를 이렇게 가볍게 내모는데 2.0L 엔진이라고 하면 대부분 놀란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4기통 2.0L가 주류가 되고 있다. 여기에 플러스 알파의 기술력이 포인트다.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브레이크를 밟을 때 생기는 에너지를 회수해 가솔린 엔진을 지원하는 시스템. 연료효율을 높이면서도 민첩한 엔진 반응을 돕는 구조다. 

직렬 4기통 2.0L,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2, 3열 시트를 접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마냥 부드럽고 나긋한 성격은 아니다. 타코미터가 8000rpm까지 표시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레드존은 6700rpm부터 시작된다. 컴포트에서 다이나믹 모드로 바꾸면 자세는 달라진다. 무엇보다 액셀러레이터 응답성이 빨라진다. 0→시속 100km 가속 6.7초의 성능은 전체적인 패키징을 고려했을 때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폭발력은 충분하므로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된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길도 잘 만들고 도로 상태도 괜찮다. 그래서 달리기 좋은 길이 많은데 속도감시 카메라도 무척 많다. 잘 달리게 만들어놓고 감시하는 아이러니.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것은 오롯이 운전자의 몫이다. 구간 속도 단속도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은 이럴 때 요긴하다. 속도 세팅만 맞춰놓으면 알아서 구간을 처리한다. 다른 차들도 그 흐름에 맞춰가므로 조금 딴짓 할 수 있는 여유 구간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청사포에서 XC90은 풍경의 일부처럼 잘 어울렸다

 

어느새 바다가 보이는 마을 청사포에 도착했다. 푸른 뱀의 전설이 깃든 곳. 원래 뱀 사(蛇)자가 지금은 모래 사(沙)자로 바뀌었다는 이야기. 두 개의 등대가 마주 보고 서 있는 포구는 아담한 정취가 제법 남아 있다. 방파제를 따라 낚시꾼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언덕 위로 보면 우뚝 솟은 빌딩들이 달라진 풍경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근래 해변열차라는 스카이캡슐이 운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동해남부선이 다니던 철길은 산책로가 되고 그 위쪽으로 모노레일을 깔아 미포, 송정을 오간다. 

 

부산에서 드라이브를 해보고 싶다면 청사포에서 흰여울문화마을까지 달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바다 위에 길을 놓아 거의 일직선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거리도 23km에 불과하다. 중간 중간 가고 싶은 곳을 들렀다 가도 좋지만, 이렇게 달려본 다음 되돌아오는 행로도 괜찮다. 무엇보다 광안대교와 부산항대교를 거쳐 가기 때문에 부산의 푸른 속살과 항구의 거친 풍광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맘껏 바닷바람을 쇠는 것은 덤이다. 

가는 길에 한군데 들른다면 용두산공원에 갈 것. 초량에서 돼지국밥이나 밀면 한 그릇 먹고난 다음 식후경으로 제격인 곳이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두 발이 땅에 닿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 오르는 길가 벽면에는 1940년대부터의 연대기 사진이 시간여행 속으로 안내하고 부산타워가 우뚝 서 있는 광장에 다다르면 영도다리 주변으로 부산항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포동 거리로 내려가는 계단은 에스컬레이터로 바뀌었다. 
 

흰여울문화마을의 오후 풍경

어떤 경로로 가든 흰여울문화마을은 꼭 한번 가보는 게 좋겠다. 하얀 담장 너머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걷다가 ‘빈방’ 있다는 벽보를 보면 그냥 한철 눌러앉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다. 

XC90은 바다가 있는 포구에서 그림처럼 풍경의 하나가 되고 혼잡한 시내 도로나 호쾌한 바다 위 도로 어디에서나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자세를 견지했다. 
 

여정을 마무리하고 회귀하는 길은 어두웠고 갑작스레 굵어진 빗줄기가 집중호우처럼 쏟아졌다. 올 휠 드라이브(AWD)에 힘입은 섀시는 균형을 잃지 않았고 타이어는 탄탄한 접지력을 뒷받침했다. XC90의 장점은 이처럼 장거리여행에서 만나는 불규칙한 일기 변화에 듬직하게 대처한다는 것. 연비는 공식 수치인 9.2km/L(복합)와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 가속의 정도에 따라 그 수치를 오르내렸다. 결론적으로 XC90은 “좋은 차가 좋은 곳에 데려다 준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차라고 말하고 싶다. 

 Fact file  Volvo XC90 B6 AWD

가격    9290만 원(인스크립션) 
크기(길이×너비×높이)    4950×1960×1770mm 
휠베이스    2984mm 
엔진    직렬 4기통 1969cc 가솔린,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최고출력    300마력/5400rpm 
최대토크    42.8kg·m/2100~4800rpm 
변속기    자동 8단 
최고시속    180km(제한) 
0→시속 100km 가속    6.7초 
연비(복합)    9.2km/L 
CO2 배출량    186g/km 
서스펜션(앞/뒤)    더블 위시본/리프 스프링 
브레이크(앞/뒤)    모두 V디스크 
타이어(앞/뒤)    모두 255/45 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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