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유발자, BMW M3 & 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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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유발자, BMW M3 & M4
  • 이경섭
  • 승인 2021.05.15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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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이 차량은 중독의 위험이 있습니다.
예. 그 위험 감수하겠습니다. M이라면 기꺼이.

“사흘은 됐고 하루만 타면 안 되나요?” 시승 요청을 받고 이렇게 물었다. 누가 들으면 바보 같은 소리라 할지 모르겠다. 2박 3일이나 마음껏 탈 수 있는 차가 다름아닌 BMW M3, M4라는 걸 안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물었다.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차가 어떤 차인지 잘 아는 나는 며칠씩이나 맹렬한 흥분감을 심장에 끼얹기 싫었다. 사실 내겐 부정맥이 있다. 행여라도 심장에 부담을 주는 행위를 자청해서는 안 된다.

 

가끔씩 또는 자주 불규칙하게 뛰는 내 심장은 “이번에도 그래선 안 되는 거 알지?”라고 궁서체로 엄숙히 경고했지만, 아드레날린을 흠뻑 분출할 준비가 된 우뇌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동안 심장 혈관을 계속 압박했다. 그래도 심장이 이겼다. 하루 장거리 시승과 한나절 코너링을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해. 그렇게 소심한 타협으로 일정을 잡았다.

BMW M3 및 M4 공식 영상 첫머리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Warning! Contains a highly addictive experience.” (경고! 이 차량은 중독의 위험이 있습니다.) 내 경우라면 ‘경고! 심장에 심각한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정도가 되겠다. 그러니 그 위험 굳이 무릅쓸 이유가 없지. 나이를 생각해야지. 왕년에 다 해봤잖아.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처음 봤다. 보통은 영상에 나온 것들과 실물 컬러가 다른데 이 두 차는 홍보영상의 그것과 너무 똑같아서 놀랐다. 흐릿한 지하 조명에서도 광채가 났다. M3는 짙은 초록색. 정식 명칭이 ‘아일 오브 맨 그린 메탈릭’(Isle of Man Green metallic). 남자섬 초록 금속?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한눈에 마음에 든다. 왠지 영국 느낌이 난다. 브리티시 그린이 떠올라서 그런가. 아무튼 멋지다. 튀는데 점잖다. 옆에 있는 M4의 컬러는 더 돋보인다. M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상파울루 옐로 메탈릭’(Sao Paulo Yellow metallic)이라 한다. 요즘 한창 피어나는 감나무 여린 잎처럼 싱그러운 컬러다. 번쩍이는 차체 색상만으로 마음이 한껏 들뜬다.

 

신형 BMW M3와 M4는 미디어에 노출되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주로 디자인과 관련된 혹평이었다. 대개는 ‘못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거대하게 확장된 키드니 그릴이 지나치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인터넷 이미지와 영상들을 검색해보니 어느 기사에서든 비평가들은 한 마디씩 거들었고, 조롱 일색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흠, 그런가? 난 아닌데. 내 눈만 이상한 건가 했는데, 실제 모습을 보니 역시 너무도 멋지다. 내 취향, 내가 틀리지 않았다. 못생기긴커녕 BMW라면, 아니 M이라면 모름지기 이래야지.

 

M3는 딱 봐도 공격적이다. 포효하며 달려드는 야수 같다. 압도적 존재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BMW는 늘 새것을 내놓을 때마다 논란을 낳았다. 그렇지 않은 적이 있던가? BMW의 새 모델을 보고 비평가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어떤 때는 뚱뚱하다 하고, 어느 때는 너무 얌전하다 하고, 한때는 엉덩이가 괴상하다고 떠들어댔다. 크리스 뱅글이 들은 끔찍한 악평을 떠올려보라. 그런데 나중은 어땠나? 나오는 대로 비난하던 얇은 입술에 모조리 지퍼를 채우지 않았나. BMW는 눈치를 보며 디자인하지 않는다. 조금씩 고쳐가면서 바꾸지 않는다. 늘 선제적이고 과감하고 공격적이며 파격을 지향했다. 그리고 언제나 수긍을 이끌어내고 팬을 확장했다. M의 진성 팬은 M을 비난하며 사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목소리도 크게 낸다.

 

보닛을 길게 늘어뜨리며 프런트 그릴 가운데로 떨어지는 주름 굴곡은 차를 더욱 근육질로 보이게 한다. 그리고 거대한 세로형 그릴. 이렇게 강조한 그릴이야말로 ‘내가 BMW다’라는 자신감에 다름 아니다. 사람 콩팥을 닮았다 하여 키드니 그릴로 불리는 이 유명한 프런트 그릴은 BMW의 오랜 유산이다. 1939년 전설적인 밀레밀리아 내구 로드 레이스에서 데뷔한 BMW 328 쿠페에서 시작됐다. 1940년대 레이스 챔피언으로 군림하며 BMW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형태적 변형은 있었지만 키드니의 상징성은 80년 넘도록 한 번도 지워진 적이 없었다. 단지 미학적 요소를 넘어 이번에는 각종 센서 재배치를 통해 공기역학적으로도 커다란 개선을 이뤘다고 BMW는 밝히고 있다.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기능을 숨기고 있는 듯한 파란 눈동자가 인상적인 헤드라이트는 더 커지고 밝아졌다. 이토록 빠른 차는 눈이 중요하다. 특히 야간에서의 위험요소를 회피할 수 있는 밝은 라이트가 필수다. 최대 500m를 확보할 수 있는 레이저 라이트가 기본 장착됐다. 시속 100km를 주행한다고 하면 1초에 약 28m를 주행하니까 17초 후에 지나갈 곳을 미리 보는 셈이다.

 

압도적 인상, 제원보다 훨씬 커 보이는 근육질 몸매. 비견할 데 없는 카리스마. 이 초록색 야수를 어디서 보았더라. 마블 스튜디오 마성의 캐릭터 헐크에 비유할 수 있을까? 우르릉거리는 배기음을 들려준다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겠다. 제발 나한테 화를 내지 말아야 할 텐데.

슬쩍 눈을 피하며 문을 열면 선뜻 올라타기 주저하게 된다. 이렇게 아름답고 이렇게 타기 불편한 시트라니. 투톤 컬러, 버킷 형태의 카본 M 스포츠 시트가 마치 견고한 허들 같다. 바가지에 주저앉는 듯 타고 내리기 결코 쉽지 않지만 겨우 엉덩이를 비집고 일단 앉으면 곧장 이런 생각이 든다. 상상을 뒤집는 감탄. 이거 내 몸을 알고 만든 건가. 나 이제 사로잡힌 건가.

 

M3와 M4는 구성이 똑같다. 문짝과 크기와 무게만 약간 다르다. 먼저 M3에 오른다. 세상에나 이렇게 내 몸에 꼭 맞는 시트라니. 원래 내 차였나 하는 생각. 맞춤 수트 생각을 잠시 했는데 이것이 수트의 느낌이라면 철갑 수트 정도겠지. 그러면 헐크가 아닌 아이언맨인데. 페인팅을 바꾼 최신형 아이언맨. 별안간 자존감으로 충만해진다. 시트를 맞추고 시동 버튼을 누르니 특유의 우렁찬 배기음이 터져 나온다. M의 심장이 요동하자 내 심장도 약간 소리를 냈다. 

 

M의 마력을 완성하는 건 배기 사운드라 할 수 있다. 네 개의 팁과 중앙의 디퓨저로 이뤄진 머플러에서는 가장 조용한 플랩 오프 이피션트 모드에서부터 스포츠 모드와 가장 강력한 포효를 터뜨리는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 이르기까지 총 네 가지 사운드가 터지며 귀를 즐겁게 한다. 골목길이나 늦은 밤 주차장에서 차를 꺼낼 때 눈치가 보인다면, 전자식 플랩 컨트롤을 통해 사운드를 조절할 수도 있다. 오늘은 장거리를 다녀온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출발.

 

제원상 M3와 M4컴페티션의 최고출력은 510마력이다. 66.3kg·m의 엄청난 토크가 2750~5500rpm 영역에서 고르게 내뿜어진다. 과거에도 우리는 시승기를 쓰며 M을 ‘양의 탈을 쓴 늑대’ 정도로 표현하곤 했다. 그런 표현이 우스울 만큼 이 차는 ‘야수의 탈을 쓴 야수’ 그대로다. 어딜 봐서 양인가. 누가 봐도 연예인 같은 차를 몰고 거리에 나서면 좀 머쓱해진다. 보란 듯 돋보이는 외모에 공기를 자극하는 특유의 배기음.

 

그런데 10분쯤이나 시내를 달렸을까. 금세 익숙해져서 놀랐다. 남산 길을 돌아 간선도로에 오르며 처음에 가득하던 위화감은 어느새 사라졌다. 오래 탄 내 차. 말을 아주 잘 들을 것 같은 기분. 천천히 밀리는 도로에서 차선을 천천히 넘나들며 가속감과 핸들링을 가늠했다. 이런 정도면 도심에서 일상주행용으로도 편하고 즐거울 것 같다. 가끔 즐기는 세컨드카가 아닌 데일리카로도 충분한 일상의 스포츠카. 크롬 장식 하나 없이 카본 감성 물씬 느껴지는 레이싱의 감각을 도심 주행에서도 누릴 수 있을 듯하다.

고속도로에서는 고속으로 달려 봐야지. 엔진은 3.0L 트윈파워 터보 직렬 6기통 가솔린. 일반 모델은 480마력이지만 컴페티션 모델은 510마력으로 출력을 늘렸다. 구형보다 무거워졌지만 더 빨라졌다. 무게당 마력이 마력이 향상돼 4초 이내에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주파하고 시속 200km까지는 12초 남짓에 도달한다. 시속 80km에서 시속 200km까지는 구형보다 1초가 더 빨라졌다고 한다. 스포츠 주행에서 이 가속시간은 너무도 중요해 1초 단축은 엄청난 진보라 할 수 있다.

 

페달의 반응에 따라 즉각 반응하는 몸놀림이 놀랍다. 엔진을 생각하면 빠른 건 당연한데도 놀랍도록 통쾌하다. 더욱 놀라운 건 주행 안정감. 이렇게 빠른데 이토록 단단하다니. 오랜만에 만난 M의 진가에 혼자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엔진이 강력해진 만큼 그 성능을 온전히 주행성능에 녹이기 위해 섀시 구조와 차체 강성, 공기역학 등 차량의 전반적 설계 단계에서부터 BMW M 모터스포츠 수준의 전문 기술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베이스 모델인 3, 4 시리즈보다 늘어난 앞뒤 트랙과 타이어 폭, 엔진 성능을 고려해 완전히 새로운 설계가 반영됐다. 고강도 강철과 가벼운 알루미늄을 적정 비율로 활용해 차체 경량화와 비틀림 강성을 최대로 높였다. 이러한 요소들이 더욱 정밀해진 응답성과 다이내믹해진 성능은 물론 편안한 일상 주행성까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는 것이 BMW의 공언이다. 왜 아니겠는가. 보도자료 수치를 확인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차량 통행이 적은 강원도의 긴 고갯길. 촬영을 위한 목적지다. 산맥에 새로 터널이 뚫리며 고속도로 지위를 빼앗긴 옛길. 평일의 한가한 고갯길을 오르내리며 한나절 멋진 와인딩을 즐겼다. 어느 순간 와인딩 좀 탄다 하는 지역 바이커들이 잔뜩 따라붙기도 했다.

완만한 구배는 물론 급한 코너링에서도 자세를 잡아주는 안정감은 특별한 수사가 필요 없을 만큼 좋았다. 일반 모델에 비해 딱딱한 스포츠 서스펜션은 기본 장착된 어댑티드 댐퍼 덕분인지 크고 작은 바닥 충격을 적극 잡아냈다. BMW가 제공한 공식자료의 설명은 이렇다; 차체 바디와 섀시 마운팅의 높은 비틀림 강성은 BMW M모델 고유의 역동성, 그리고 민첩하면서도 정밀한 주행감각을 발휘하도록 하는 핵심 요소다. 횡가속과 조향 거동의 모든 영역에서 횡가속력이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덕분에 한계 상황에서도 뉴트럴한 성향을 유지한다. 엔진룸, 알루미늄 보강패널이 장착된 앞 서브프레임, 하부 보강부품, 차체에 견고하게 고정된 뒤 서브프레임은 격렬한 주행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제어 가능한 핸들링을 보장한다.

 

표현은 어렵지만 말 그대로다. 후륜구동이면서 정확하고 예리하게 돌아나가는 코너링은 마치 레일 위를 달리는 것처럼 안정적이고 견고했다. 트랙에서처럼 코너를 과격하게 돌며 스티어링휠을 잡아채도 차는 계속해서 더 해보라고 격렬히 도발하는 것 같았다. 바닥에 끈덕지게 달라붙던 바퀴 속도를 줄이고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쯤 해두는 걸로. 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이렇게 rpm을 계속 올렸다간 내 심장이 더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차를 집에 가져가도 될까요? 딱 3일만이라도.” 조금 비굴했지만 공손히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은 M4. 구성이 똑같지만 기분이 달랐다. 외관부터 더 스포티한 쿠페는 감성이 다르다. 한 가지 발견한 거라면, M4는 뒷시트를 앞으로 뉘면 트렁크까지 뻥 뚫려서 길고 큰 짐을 실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의외의 장점이다. 장난 삼아 길게 누워 보았다. 앞 시트를 앞으로 최대한 빼면 옹색하나마 둘이 누울 수도 있다. 평상시라면 누가 그렇게 하겠나. 그래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애인과 둘이 섬에 들어가 마지막 배를 놓치고 숙소마저 없다면 할 수 없이 차를 선착장에 대고··· 음, 여기까지만 하자.

밤길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가며 아내와 평일 여행을 급하게 잡았다. 이런 기회가 흔하진 않지. 어지간해서 놀라지 않는 당신도 감탄하다가 천장에 머리를 부딪칠지도 몰라. 모처럼 미세먼지도 걷힌 봄날. 차창을 조금 내리고 연둣빛 M4를 몰아가며 한껏 들떴다. 스티어링 휠 양쪽에 빨갛게 도드라진 M 드라이브 모드 버튼이 자꾸 누르라고 자극하는 것 같다. 또 심장이 뛴다. 이번엔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다. 

글 · 이경섭 칼럼니스트 사진 · 송정남 포토그래퍼

BMW THE M3 Competition    
길이X너비X높이    4794mm X 1903mm X 1433mm
휠베이스    2857mm
무게    1705 - 1730kg
엔진    직렬 6기통, 2993cc, 트윈 터보, 가솔린
최고출력    510마력
최대토크    66.3kg·m
0 → 시속 100km 가속    3.9초
구동방식    FR
변속기    8단 자동(M 스텝트로닉)
서스펜션(앞/뒤)    스트럿 / 5링크
타이어(앞/뒤)    (앞)275/35 ZR19 (뒤)285/30 ZR20
    
BMW THE M4 Competition    
길이X너비X높이    4794mm X 1887mm X 1393mm
휠베이스    2857mm
무게    1700 - 1725kg
엔진    직렬 6기통, 2993cc, 트윈 터보, 가솔린
최고출력    510마력
최대토크    66.3kg·m
0 → 시속 100km 가속    3.9초
구동방식    FR
변속기    8단 자동(M 스텝트로닉)
서스펜션(앞/뒤)    스트럿 / 5링크
타이어(앞/뒤)    (앞)275/35 ZR19 (뒤)285/30 Z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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