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자동차 업계를 떠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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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자동차 업계를 떠났나
  • 짐 홀더(Jim Holder)
  • 승인 2021.05.0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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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쓰는 미끼는 뻔하다. 하지만 어떤 것이 사람들을 떠나도록 유혹하며, 그들이 배운 것을 새로운 역할에 적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거를 후회하고 있는지 짐 홀더(Jim Holder)가 그들에게 직접 물었다
푸크는 그가 사랑하는 차를 중심으로 그의 사업을 꾸렸다

데이비드 푸크(David Pook)

과거: 대우와 재규어 랜드로버의 동역학 전문가
현재: 자영업 동역학 전문가

대우에서 있을 때, 제너럴 모터스에서 온 경험 많은 동역학자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은 무척 행운이었다. 이런 기본 소양과 문제 해결을 위한 더 넓은 적용 및 방법론적인 부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활용하고 있는 부분이다.

재규어 랜드로버에서 19년차를 맞이할 때까지 나는 이 직업적 방향을 유지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비즈니스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가려운 곳을 긁고 싶은 마음이 컸고, 솔직히 말하면 재규어 랜드로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도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SVO의 차량 동역학 책임을 맡고 있다가, 자발적으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나는 알핀의 A110 튜닝을 비롯해 개인적인 구성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안들을 계획했다. 언제나 모든 일이 완벽하게 계획된 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A110의 튜닝과 나의 라이프110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있으며, 소셜 미디어 사업도 함께 성장시키고 있다. 여러분 또한 너무 융통성 없이 계획을 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사업의 현실성과 동시에 어떻게 돈을 벌지에 대해서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좋은 멘토들과 경험 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 덕분에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또한, 돌이켜보면 재규어 랜드로버가 다른 여러 곳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엔지니어링에 대한 깊이 있는 가르침을 주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여기서 얻은 기술적 전문성과 지식은 정말로 매우 감사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이다. 

일을 떠나게 되면 우선 수입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 것인가 하는 걱정부터 들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고, 모든 성공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 말이다. 

내가 다시 업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은 “예스”이지만, 아직은 그때가 아니다. 올바른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며, 어느 쪽이든 절대적으로 미련이 있진 않다. 나는 메르세데스-AMG F1 팀의 총 책임자인 토토 볼프가 어떻게 팀을 운영하고 리드하는지에 대해서 큰 신뢰를 보낸다. 이것은 내가 재규어 랜드로버의 엔지니어링에서 찾은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철학으로 나 자신의 사업을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는 성공이 내가 관련된 자동차의 동역학과 관련된 것에 의해서 가늠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 최고의 차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그것을 사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나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라이프110이란 사업을 시작해 유럽과 일본, 호주 등 전 세계 고객들을 대상으로 판매하고 있다. 

life110.co.uk

 

논 플라스틱 비치는 친환경적인 제품들을 판매한다

개리스 딘(Gareth Dean)

과거: 혼다, 닛산, 재규어 랜드로버의 PR 및 마케팅
현재: 논 플라스틱 비치 대표

나는 내 아내인 니콜라와 함께 2018년 10월, 공동창업주로서 논 플라스틱 비치를 설립했다. 우리는 자체 브랜드로 대나무 칫솔부터 샴푸 바, 치약 정제 및 설거지용 비누에 이르는 플라스틱 소재의 대체 상품을 판매한다. 우리는 말 그대로 주방의 테이블에서 시작해 자체 인력으로 전 세계 91개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동안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바다를 보고 우리 스스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우리가 판매하는 모든 제품은 현재 효과적이고 저렴하며 지속 가능할 것이란 우리의 모토를 충족시켜야만 한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프리 비행을 실행해낸 에티하드 에어웨이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스키 브랜드 살로몬 등과 함께 협력했다. 우리가 에티하드와 함께 일을 진행하던 때에도, 우리는 그저 차고 하나와 식사 테이블만을 가진 상태였으며, 그것은 무척 흥분되는 일이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는 것과는 놀라울 만큼 달랐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빠른 결정 속도가 엄청난 장점으로 발휘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실리콘 소재로 만들어진 그릇 덮개의 이름인 ‘Boll**ks to Cling Film’이 많은 대기업과의 회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단점도 존재한다. 나는 틀림없이 집으로 운전할 때 타던 재규어 I-페이스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제네바 모터쇼 또는 화려한 어딘가에서 열리는 미디어 테스트 드라이브와 같은 행사를 보면 질투심에 사로잡히곤 한다. 내가 다시 업계로 돌아갈까? 논 플라스틱 비치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에 그렇게 될 것 같진 않지만, 절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상담과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nonplasticbeach.com

 

버든은 지금 개인 전용기를 판매하고 있지만, 자동차는 여전히 그의 열정이다

가이 버든(Guy Burden)

과거: 재규어 및 자동차 소매 마케팅
현재 : 자영업 컨설턴트

카 세일즈로 시작해, 나는 1990년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로 입사했다. 테크니컬 세일즈맨으로 활동하며 브라질에서 개인 전용기를 판매했다. 그 이후 나 자신의 항공기 무역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1994년에 퇴사했다.

내가 항공기 쪽으로 옮긴 까닭은 항공 업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인 존 드 하빌랜드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비행기를 팔아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대로 했다. 나는 먼저 기술적인 부분과 비행법에 대해서 배워야만 했고, 그건 실제로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 대신 나는 전 세계를 여행했으며, 그 가운데 많은 것을 배우고, 국가 원수로부터 영화배우, 거물급 금융업자에 이르는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에서의 경험은 나 스스로에게도 퍽 도움이 됐다. 개인 전용기와 고급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판매 주기가 긴 고부가 자본재로서 보통 의사 결정자가 한 명이다. 단지 그 숫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마음으로부터 자동차인이다. 개인 전용기들은 흥미롭지만 근본적으로 몽상에 가까운 제품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형 포드 트랜짓부터 JCB의 최신형 건설기기에 이르기까지 바퀴가 달린 모든 차량에 대해서 눈을 반짝이고 있다. 

현재 나의 컨설팅 사업은 자동차부터 개인 전용기와 항공기, 호텔과 농장, 그리고 농기계까지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자동차다. 우스운 일이다, 그렇지 않나?

sturtconsulting.com

 

코츠는 재규어 랜드로버에서 배운 기술을 사용해 전기 자동차 수리기사가 됐다

제임스 코츠(James Coates)

과거: 재규어 랜드로버의 배터리 엔지니어
현재: 이동식 전기 자동차 미케닉

나는 재규어 랜드로버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의 주변을 맴돌았던 나는 3년 동안 그곳에서 일했으며, 그들은 나를 전기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는데 필요한 모든 훈련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해줬다. 최종적으로 나는 몇몇 흥미로운 프토로타입의 개발에도 참여했다.

나는 급여도 좋았고 수당도 많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은 간질거림도 있었다. 매트 클리블리가 접근해 내게 이동식 EV 차량 전문 수리 회사를 차리는 일을 함께하겠느냐고 물었고, 처음에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후 자발적인 명예퇴직 제안이 나왔고, 그 보상 금액이 그리 큰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엔 현실이 됐다. 

재규어 랜드로버에서 나는 순수하게 파워트레인 관련 업무를 수행했지만, 우리는 결코 완성차를 실제로 볼 수는 없었다. 그것이 일이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나는 차를 완전히 정지시킨 상태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했다. 전문성은 제한적이었고 핵심은 상당히 답답했다는 것. 나는 고객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나는 이런 일련의 흐름 위에 있거나 그보다 앞서있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나는 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세 시간씩 차를 몰고 다니곤 했지만, 그 역시도 모두 즐거웠다. 

전기자동차는 실제로 수리가 간단하다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뭔가 크게 잘못될 일이 훨씬 적다. 우리는 초기형 닛산 리프를 최신 40kWh 배터리 팩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등의 흥미로운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여기엔 우리가 수정해나가야 할 약간의 차이점들이 있다. 비교적 간단하게 자동차가 사용되는 방법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진행할 때, 재규어 랜드로버가 가르쳐 주었던 내용을 다시금 복기하게 된다. 결코 안전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직업윤리는 여전히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을 바에는 아예 손을 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cleevelyev.co.uk

 

실버스톤 스쿨은 십대들에게 기술 과목을 가르친다

닐 패터슨(Neil Patterson)

과거: 맥라렌 12C와 570 시리즈의 치프 엔지니어
현재: 실버스톤 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실버스톤 서킷에 새로운 기술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에 관심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나의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사실 나는 그들이 또 다른 닐 패터슨을 찾으면서 잘못 전화를 걸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누군가를 가르쳐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기회란 점은 분명했다. 내가 사랑하는 고성능 기술 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젊은이들이 근미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력을 쌓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버스톤 UTC는 2013년 9월에 문을 열었으며, 우리 학생들의 나이는 모두 14세에서 18세 사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엔지니어링과 비즈니스에 초점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의 기업들이 찾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측면도 있다. 바르셀로나 인근에서의 시승을 위한 여행이나 도전적인 설계의 검토를 추진하거나 그 금액을 삭감하는 일, 주로 무언가를 발명해낼 수 있는 기회 등의 일들 말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꾸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마라넬로의 상대방이 짜증낼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제 학생들이 전통적인 학교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성취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짜릿함이 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매년 학생들을 포뮬러 1에서 일하도록 보내고 있는데, 이제 그 팀들이 직접 학생들을 구하러 오고 있다.

나 역시 적절한 역할과 그에 따르는 많은 돈에 의해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적당한 시기가 되면 밝힐 수 있을 아주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계속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더 많은 젊은이들이 기술 분야에서 자신만의 틈새시장을 노려, 이 업계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보상인지 모른다. 그래서 정말 기쁘다.

silverstoneutc.com

 

마르케스는 옷들과 커튼, 담요 등을 수수료를 받고 꿰매준다

안드레아 마르케스(Andrea Marques)

과거: 닛산의 컬러 및 소재 디자이너 
현재: 자영업 재봉틀 전문 디자이너

나는 구매 업무를 담당했다. 더 발전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으며, 언제나 자동차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다. 닛산이 크랜필드에 터를 잡으면서 입사할 기회가 생겼을 때, 나는 정말 그 자리를 간절히 원했다.

거의 완전한 자율성을 가진 세 사람으로 구성된 팀에서, 전화 회의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하는 거의 80명에 가까운 팀의 일원이 되어 일하게 되는 것은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법률적 지식이나 계약 협상 등을 위해 개발한 기술 중 일부는 딱히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협상을 통해 주고받는 것을 좋아했지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받아내는 쪽이 무척이나 더 중요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좋아했고 나 역시 확실히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을 내 인생 여정의 일부로 여겼지만, 그것은 결코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전 동료를 통해 헤드헌팅을 당했고,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을 필요로 하는 역할을 받아들였다.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다시 한 번 직장에서 녹초가 되며 정리해고 대상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은 또한 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졌다. 나는 스스로의 우선순위를 다시 한 번 재평가했고 그것이 지금 내가 재봉질을 하고 있는 이유가 됐다. 나는 내 업무량을 스스로 통제하며 내 작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아주 많이 다른 것이지만 무척이나 행복한 삶이다. 

towcesterseamstres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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