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번갯불, 재규어 D-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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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번갯불, 재규어 D-타입
  • 닉 웰시(Mick Walsh)
  • 승인 2021.05.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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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 레이스 시상대를 목표로 경주했고, 충돌했으며, 새로운 차체를 씌웠다. 그렇게 재탄생한 이 선풍적인 재규어 D-타입은 생애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단 두 번 레이스를 펼쳤지만, 르망의 최고 무대에서만 달렸고,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GT로 재창조됐다가, 최근 프렌치 레이싱 블루 로스 아미고스 팀 차로 복원된 섀시번호 XKD 513. 이렇게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재규어 D-타입은 드물다. 

첫 번째 주인 장-마리 브루신은 불운한 숫자를 신경 쓰지 않았고, 1957년 24시 도전은 그의 화려한 새 스포츠 경주용차와 함께 이루어진 꿈이었다. 하지만, 그 영광을 재현하려던 시도는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산업 다이아몬드 거래로 부를 쌓은 브루신은 초창기 ‘메리’라는 이름으로 힐클라임과 프랑스 클럽 레이스에 출전했다. 르사르트에서 경주하고 싶다는 그의 오랜 야망은 1955년, 느지막한 기권으로 좌절되었다. 아마도 그가 주문한 D-타입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다시 출전하기까지 왜 2년이 걸렸는지는 수수께끼이다. 아마도 55년의 기권 이후 가족들이 그를 만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모두 1957년 브루신이 33세의 나이로 놀라운 데뷔를 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됐다. 

 

리어 엔드는 1958년 르망 24시를 위해 유선형으로 수정되었다

XKD 513은 리옹 기반 에이전트이자 로스 아미고스 팀 출전자 중 하나였던 앙리 페이뇨를 통해 파리의 재규어 딜러 찰스 델크로이스에게 주문되었다. 프렌치 레이싱 블루로 칠해진 차는 6478 AT 69로 등록되었으며, 에큐리 에코세, 에퀴프 내셔널 벨지, JD 해밀턴의 D-타입과 함께 재규어 워크스의 지원을 받았다. 

브루신은 보조 운전자로 장 루카스를 선택했다. 40세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래된 알파 로메오 몬자로 경주를 시작했고, 루이지 치네티와 함께 1949년 스파 24시간 우승을 차지하는 등 인상적인 성과를 빠르게 거둬낸 경험 많은 드라이버였다. 

고르디니의 팀장으로서 55년 이탈리아 그랑프리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로버트 맨존을 대신하기도 했다. 르망에서 페라리들과 함께 선두를 달리곤 했던 루카스는 1951년에 겨우 8위를 기록했고, 52년에 실격당한 후 자신의 불운을 깨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자동차경주에서 은퇴한 루카스는 제라드 ‘잡비’ 크롬박과 함께 프랑스 월간지 <스포츠 오토>를 출간했고, 조 슐레서를 관리했지만, 주요 수입은 카사블랑카의 정어리 공장에서 나왔다.

 

57년 뮬산 코너에서 D-타입을 바짝 뒤쫓은 라이벌, 513 프뢰르와 573 에퀴프 내쇼날 벨지는 각각 3, 4위로 경주를 마쳤다

연습 기간 동안 로스 아미고의 D-타입은 13위를 차지했으며, 5대의 출전 재규어 중 가장 느렸다. 하지만 폴 프뢰르와 프레디 루젤레의 노란색 에퀴프 내쇼날 벨지를 바싹 뒤쫓았다. 난폭한 마세라티 450S 쿠페를 탄 스털링 모스가 시작부터 튀어나간 후 ‘매리’와 루카스는 첫 한 시간 동안 15위부터 꾸준히 치고 올라갔다. 선두권까지 올라간 이들은 론 플록하트와 이보르 뷰브의 에큐리 에코세 D-타입을 앞장세워 자정까지 굳건한 5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 벨기에 D-타입은 점화 문제로 서킷에서 거의 1시간 동안 발이 묶였고, 흥분한 프랑스 팀은 결승점까지 3위로 올라서 재규어가 1-2-3-4-6위를 휩쓰는데 일조했다. 영국차 재규어는 프랑스에서 항상 충실한 추종자를 거느렸고, 데뷔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브루신은 열광하기 충분했다.

이 같은 실적에 고무된 로스 아미고스는 이듬해 다시 XKD 513을 투입했고, 재규어로 차를 돌려보내 업그레이드 준비를 했다. 코번트리의 재규어는 새로운 규정의 르망에서 D-타입으로 경주를 계속하기를 원하는 개별 팀들을 위해 성공적인 ‘식스’의 3L 버전을 개발하는데 동의했다.

3.4L 블록을 기반으로 개량된 ‘워크스’ 엔진은 5500~7000rpm의 더 높은 출력 범위를 가진 성능 특성이 3.8과 달랐다. 최고출력은 258마력, 최대토크는 5500rpm에서 33.0kg·m였다. 처음에 에큐리 에코세는 다른 길을 택했다. 스트로크가 더 짧은 재규어의 2.4 블록과 에이스 정비사 ‘윌키’ 윌킨슨의 새로운 유닛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3L 엔진을 개발했다. 이 엔진은 6100rpm에서 237마력의 더 낮은 출력을 냈지만 토크 정점이 낮았다. 스코틀랜드 팀은 르망 3주전 열린 뉘르부르크링 1000km에서 팩토리 3L 엔진을 가진 2대의 팀 자동차와 개량된 직렬 6기통 XKD 606으로 달렸다. 그것은 잭 페어맨과 존 ‘욕’ 로렌스가 5위로 돌아와 유일하게 완주한 D-타입이 됐다. 

 

듀이스에 의해 테스트된 XKD 513은 두 개의 르망 출격을 위해 재건되었다

워크스 3L 엔진의 신뢰성 문제에도 불구하고, 에큐리 에코세의 소유주 데이빗 머레이는 이를 르망용 D-타입에 탑재키로 했다. 첫 한 시간 안에 두 대의 스코틀랜드 차 모두 피스톤 파손과 밸브기어 결함으로 탈락했다. 

프랑스 재규어 딜러인 페이뇨는 재규어 공장과 밀접한 접촉을 가졌고, 1957년 팀의 인상적인 성과 덕분에 XKD 513은 두 번째 외출을 위한 최신 개조 작업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재규어 워크스는 로스 아미고스 팀에게 동일한 새 헤드를 제공했고, 노르만 듀이스는 프랑스 팀 소속으로 돌아가기 전에 영국의 D-타입에 대한 광범위한 개발을 수행했다. 다양한 개량에는 헤드레스트 지느러미와 리어 펜더의 특수 통풍구를 통한 공기역학 개선이 포함됐다. 운전석에는 새로운 규정에 맞게 전체 폭의 ‘스크린’이 부착됐다. 그러나, 이전 연도와는 대조적으로, 1958년 경주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브루신은 보조 운전자를 안드레 굴피로 바꿨는데, 그는 부유한 프랑스계 모로코인으로 우연의 일치로 정어리 사업을 했고(별명이 ‘데데 라 사르딘’이었다) 고르디니 팀에서도 경주를 했다. 뛰어난 수완으로 17세부터 채무추심을 했던 굴피는 후에 엘프 아키텐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1954년 자크 폴레와 고르디니 T15S를 공유한 르망 베테랑이었지만, 51년 6번 랩에서 장 라리비에르가 그들의 페라리 212 엑스포트를 치명적으로 충돌시킨 이래 불운한 동료 운전자라는 징크스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항공기 스타일의 콕핏

에큐리 에코세 자동차들처럼 XKD 513은 초반 몇 시간 동안 엔진 문제로 씨름했다. 독특한 파란색 D-타입은 수차례 피트스톱 후에 오후 5시에는 49위, 꼴찌로 떨어져 있었다. 경주는 밝은 햇빛과 치솟는 기온 속에서 시작됐지만, 초저녁에 비가 억수로 내리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각성한 프랑스 대표팀은 5시간 만에 다시 34위로 올라섰다. 10시의 어둠 속에서 피트의 마지막 함성을 들은 브루신은 NART 페라리 250 테스타 로사를 탄 미국인 르망 신예 브루스 케슬러를 제쳤다. 그 추월은 브루신이 던롭 커브에 너무 빠른 속도로 도착하는 결과를 낳았다. 커브는 바깥쪽 둑에서 진흙이 범람해 있었다. 둑에 부딪힌 브루신의 D-타입은 회전했고 케슬러가 도착하기 직전의 트랙으로 던져졌다. 그가 회피하는 행동을 취하는 사이 페라리가 부서진 재규어로 돌진했다. 

브루신은 즉사했다. 반면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헤드레스트에 올라앉은 케슬러는 멀쩡했다. 그가 둑을 기어오르자 페라리가 불길에 휩싸였다. 구경꾼들은 흙으로 불길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소방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라틴의 이국적인 차는 까맣게 타버린 후였다. 케슬러는 픽업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간호사들은 그의 옷에 숨겨진 치킨 스낵을 발견하고 어리둥절했다. 

마샬들은 도랑에 처박힌 재규어의 구겨진 보닛과 꽁무니를 회수했고, 부서진 차는 장애물을 비추는 가스등 조명과 함께 둑에 남겨졌다. XKD 601을 운전한 던칸 해밀턴이 빠른 속도로 이 암울한 장소에 도착해 두 번째 D-타입 희생자가 될 뻔 했다. 다행히도 그는 먼 둑에서 경고를 위해 모자를 공중으로 던진 관중을 발견하고는 곧장 속도를 늦춰, 코너 사이로 보이지 않던 차를 피할 수 있었다. 

이 카리스마 넘치는 에이스는 야밤에 낯선 사람 덕분에 목숨을 건진 뒤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또 다른 심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아르나지에서, 해밀턴은 주차된 팬하드를 피하다가 크게 제어력을 잃었다. D-타입은 공중제비 후, 물이 찬 도랑을 가로질러 거꾸로 떨어졌고, 두 명의 관중이 끌어내지 않았다면 해밀턴은 익사할뻔 했다. 영광스러운 57년 경주의 뒤바뀜에서, 참가한 다섯 대의 D-타입이 모두 탈락하거나 충돌했으며, 개인 출전 용사 중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새로 만든 3.0L 모터와 독특한 오일 탱크

XKD 513은 레이스가 끝날 때까지 트랙 옆에 남아있었는데, 프랑스 당국의 조사 후 앞쪽과 뒤쪽 차체는 폐기됐고 뼈대는 딜러 페이뇨에 의해 브라운 레인으로 다시 보내졌다. D-타입은 조반니 미켈로티가 1960년에 뼈대를 획득할 때까지 공장에 손 타지 않고 보관되었다. 자신의 디자인 회사를 막 출범시킨 이탈리아의 스타일리스트는 모터쇼 홍보 전시를 위해 새로운 GT 콘셉트를 만드는 프로젝트꺼리를 찾고 있었다. D-타입은 E타입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알루미늄 차체의 취약성으로 인해 충격 후 항상 엉망으로 보였지만, XKD 513의 주요 모노코크와 서브프레임은 살아남아 있었다.

토리노의 스타일리스트는 차체 패널을 잘라내고 오리지널 휠베이스를 바탕으로 날렵한 쿠페를 연출했다. 메탈릭 블루와 밝은 트림으로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던롭 알로이 휠을 끼운 재규어 르망 경주차는 1963년 제네바 살롱에서 데뷔하여 최고상을 받았다. 스타일링은 미켈로티의 작품 중 오스카와 트라이엄프, 특히 TR4 기반의 제스트와 유사하지만, 예리한 앞부분은 히노 콘테사 스프린트에 대한 그의 디자인을 예고했다. XKD 513은 여전히 두 번밖에 주행하지 않은 최소 주행 거리 상태에서 3730 BR 69로 등록됐고 미켈로티가 토리노를 일주하는 일일 교통수단으로서 가끔 사용됐다. 하지만 트리플 베버 카뷰레터와 긴 르망 차축 비율 등 경주용 튜닝은 도시 주행에 실용적이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들어 35 코르소 프랑시아에 있는 스튜디오 테크니코 디자인 카로체리아의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고, 미켈로티는 재규어를 미국 조지아로 가져가자는 리차드 F 카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곳에서는 지역 교회를 위한 기금마련용으로 전시됐다. 

1970년대 초에 영국에서는 역사적인 차들의 경주가 시작되었고, D-타입은 수요가 많았다. 앤드류 고트웨이는 수소문 끝에 딥 사우스에 있는 미켈로티 쿠페를 추적해냈고, 카터를 설득해 차를 인수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 손으로 제작한 차체는 원래의 D-타입 뼈대에서 분리되었고, 재건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로렌스 브리스토우에게 팔렸다. 그는 가이 블랙과 크리스 키스-루카스에게 차를 완성하도록 주문했다. 리빌드에는 서브프레임 및 모노코크뿐만 아니라, 팩토리 테일 섹션 전체를 포함한 많은 시기에 걸친 부품이 사용되었다. 꼬리 지느러미와 3.8리터 엔진, 원래의 ‘짧은 앞코’ 스타일로 완성된 차는 당연히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으로 칠해졌다. 

 

1958년 르망용 XKD 513을 개발 중인 MIRA의 전설적인 테스트 드라이버 노먼 듀이스(Norman Dewis) - 핀, 브레이크 및 6기통 3.0L를 포함하는 업그레이드

영국의 저명한 수집가 빌 레이크는 미켈로티 차체와 내부를 인수한 후, 린스에게 리빌딩을 의뢰하면서 박살난 4.2리터 E타입에서 필요 부품을 적출하도록 했다. 어울리지 않는 빨간색을 칠하고 20KOG로 등록된 완성차는 레이크의 아내 로즈마리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차는 롤랑 어반의 재규어 컬렉션에 전시됐다가 벨기에의 애호가 루카스 라우레이스에게 인수됐다. 그는 이 쿠페를 진품에 가깝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XK 엔지니어링은 1963년 제네바 쇼 스타일로 차를 재건하는 임무를 맡았고, 파우더 블루로 다시 칠했다. 레이크는 Mk2 대시보드를 장착했지만, 코번트리의 재규어 전문가는 손으로 빚은 원작을 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진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미켈로티의 스케치가 오랫동안 사라졌기 때문에 참고 자료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16인치 센터록 던롭 휠과 론 비티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4.2L 300마력 엔진을 가진 완성차는 미켈로티에 대한 훌륭한 헌사가 됐다. 

D-타입은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영국인 피터 기딩스에게 팔렸고, 광범위한 레이스에 나갔다. 이후 소유주인 밥 베이커는 미국 자동차전문지 <로드 앤 트랙>이 비교테스트에 사용하도록 차를 빌려주었다. 1986년 4월호 표지를 장식한 라구나 세카에서의 테스트에는 필 힐, 이네스 아일랜드, 밥 홀버트가 운전자로 참여했고, D-타입은 페라리 250 테스타 로사, 포르쉐 RSK와 경쟁했다. 

XKD 513은 아리조나에 근거지를 둔 재규어 전문가 테리 라슨에게 인수되기 전에 빌 치자의 손을 거치면서 진한 파란색으로 칠해졌다. 이후 12년 동안 라슨보다 D-타입에 더 많은 재미를 느끼거나 친밀감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라슨은 D-타입을 운전하는 것뿐 아니라 가다듬고 역사를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몬테레이 히스토릭에서 경주를 했고, 콜로라도 그랜드와 코퍼스테이트 1000에 참가해 미국의 가장 위대한 경로를 돌았다.

 

재킹 포인트를 위한 노즈 컷아웃

D-타입은 또한 브라운 레인에서 르망까지 가는 2개의 재규어 행사를 위해 유럽으로 운송되었고, 라슨과 듀이스의 값진 우정이 시작됐다. “XKD 513은 나의 첫 번째 D-타입이어서 그 기억은 매우 특별하다.” 라슨이 말했다. “콜로라도의 트레일 리지 로드에서 운전했던 추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146km의 거리, 460개의 코너, 2700m까지 이르는 높이, 그리고 지나다니는 다른 차는 거의 없었다. 노먼은 웨스턴을 사랑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의 영웅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우리 여행을 즐겼다. 한번은 그리어 대초원에서 길을 건너는 소떼에 막혀 멈췄는데 그는 진짜 카우보이들을 보고 흥분했다.”

라슨은 결국 XKD 513을 프레드 보흘랜더에게 팔았다. 그는 차체를 더 밝은 파랑으로 칠하고 17번 숫자와 원형 표식을 다시 그렸다. 하지만 차는 2001년 오스트리아인 한스-요르그 홀레이스 박사와 함께 유럽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홀레이스는 밀레 밀리아와 굿우드 리바이벌의 2014년 D-타입 기념행사를 포함하여 이 차를 운전하는 것을 즐겼다. 

2017년 9월, 르망 우승 60주년을 기념하여, XKD 513은 에큐리 에코세 팀 2대의 차인 XKD 606, XKD 603과 함께 코번트리에서 햄프턴 코트의 엘레강스 콩쿠르로 가는 리유니온 여정에 올랐다. 홀레이스와 그의 형제 귄터에게는 특별한 여행이었다. 이 행사는 듀이스를 자동차와 재결합시켰고, 퀴니 루우먼과 나눈 XKD 513의 정확한 파란색에 대한 대화는 홀리스가 재도장을 생각하도록 자극했다. 동포인 이곤 츠바이뮐러가 이 일에 동참했다. “이 차는 햄프턴 코트 이후 우리 작업장에 왔고 모노코크 상태로 벗겨냈다.” 전문가는 회상했다. “다행히도 나는 오리지널에 아주 가까운 XKD 553도 갖고 있었기에 완벽한 참고 자료가 됐다.”

 

미켈로티는 1963년 제네바 오토살롱 데뷔를 준비하며 재규어 르망(Jaguar Le Mans)을 새로 완성했다. 토리노 스타일리스트는 변환된 레이서를 자신의 로드카로 사용했지만, 긴 르망 기어와 이국적인 튜닝이 현실적이지 못했다

오랜 기간의 조사, 역사적인 사진, 영화, 그리고 기억들을 추적하는 것은 그 세부 사항들이 진짜임을 확실히 해주었다. 소유주는 지느러미를 가진 스타일과 3L 스펙을 유지하기를 원했지만, 1957년 3위를 차지했던 숫자 17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츠바이뮐러는 “듀이스가 MIRA에서 테스트한 58년 업그레이드 모델의 컬러 사진을 발견했지만, 여전히 행운의 숫자 17”이라며 “이것은 우리가 다시 만든 역사의 창이다. 프렌치 블루로 칠해지기 전 색상이 녹색이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고 말했다. 

다시 만드는 동안, 리벳은 제거되고 진정한 항공 사양의 부품으로 대체되었다. 꼬리 지느러미는 올바른 모양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58년식 리어 펜더 통풍구와 뒤쪽 아치 뒤에 있는 작은 지느러미도 추가되었다. 정확한 파란색을 찾는 것이 어려웠지만, 결국 1955년 글라스 색상표를 통해 이후 XK140에 사용된 컬러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 마지막 손길은 손으로 그린 등록번호, 원형, 지느러미 끝에 있는 삼색 디테일이었다.

완성된 D-타입은 츠바이뮐러에 의해 광범위하게 테스트됐다. 츠바이뮐러는 3L 엔진이 특별한 특성을 가졌다고 말했다. “여전히 강한 토크를 지니고 있지만 회전성은 더 낫다. 마세라티 300S에 가깝고 소리도 더 날카롭다. 강화된 6피스톤 브레이크는 환상적이고, 부드러운 도로에서는 핸들링이 탁월하다.”

르사르트 복귀는 연기되었지만, 올해 XKD 513은 르망 클래식에서 경쟁할 예정이다. 2020년 충분히 달리기로 결심한 홀레이스 형제는 지난해 10월 밀레 밀리아에 입성, 팬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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