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차, 지프 글래디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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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차, 지프 글래디에이터
  • 이경섭
  • 승인 2020.12.14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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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지프 글래디에이터는 자꾸만 모험을 부추긴다. 그 부추김에 이끌려 아들과 오프로드로 나섰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실제로는 그런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아버지가 되어보면 안다. 나도 그걸 깨달았다. 내가 아이에게 가르친 건 자전거 타기, 루어낚시 매듭과 캐스팅, 면도하는 방법 정도다. 나머지는 다 알아서 컸다. 그리고 요즘은 운전을 가르친다. 아들이 면허를 딴 지는 좀 됐지만 실제 도로에서 주행할 일이 없다 보니 운전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가르쳐 보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배워도 되겠어? 부부는 운전 배우다가 싸워서 이혼을 한다고 하던데?” 겁을 줘 보았지만 아들은 기꺼이 아버지에게 배우겠다 했다. 고맙지 뭐. 내가 잘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술을 아들에게 가르친다는 보람은 크다. 초보치곤 곧잘 하는 아들에게 조수석에 앉아 필요 이상의 잔소리를 해가며 기술을 전수하는 맛은 사뭇 뿌듯하다. 요즘 한동안 그런 기쁨으로 살고 있다. 그러던 중 마침 지프 글래디에이터를 타보게 됐다. 

 

글래디에이터는 한 마디로 랭글러의 픽업 트럭 버전이다. 랭글러인데 픽업트럭이며 천장을 개방할 수 있는 컨버터블 오프로더이기도 하다. 실은 이 한 줄만으로 글래디에이터의 모든 특징이 설명된다. 세상의 수 많은 차 중 이만큼 강렬한 캐릭터가 어디 있으며 이만큼 전천후 실용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존재가 또 있을까? 젊음으로 붐비는 도심 골목이거나 한산한 외곽도로, 럭셔리한 호텔이거나 시골의 농장, 암벽도로와 숲속 진창길에서도 아무 위화감 없이 어우러지는 차. 그게 지프 글래디에이터의 본령이다.

앞 모습은 영락없는 랭글러다. 실내도 랭글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한 계기반과 인테리어 설계. 조금은 불친절하지만 지프 헤리티지가 그대로 묻어나는 감성적 터치가 구석구석 배치돼 있다. 수많은 열혈팬이 열광하는 견고한 신뢰성이 터프하면서도 세련된 오라와 함께 강렬하게 다가온다. 실용에 방점을 맞춘 만큼 2열 시트 아래와 뒤쪽에 수납 공간을 촘촘히 마련해 편의성도 한결 더했다.

 

앞모습은 랭글러인데 옆모습을 보면 과도하게 길다. 전장 5.6m이면 어지간한 기함급 세단이나 대형 SUV에 비해 살짝 긴 정도라 그리 압도적 길이도 아닌데 몹시 길게 느껴진다. 3박스 형태의 랭글러. 첫 느낌은 생경하다. 지프의 픽업이라니.

“비(RAIN)가 광고하는 그 차네요?” 아들은 평소 티비를 보지 않는데 어찌 알았나? 유튜브에서 봤다 했다. “영상에서 보던 것보다 더 커 보이는데요?” “운전 좀 늘었으니 어디 한번 몰아볼 테냐?” 아들은 손을 내젓는다. “그러고 싶지만 아직은 옆자리로 만족할래요.” 열광하며 운전대에 달려들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단번에 포기를 하다니 왠지 좀 아쉽기도 하다. 하려는 일에는 고집이 세지만 아들은 매사 신중하다.

 

모처럼 특별한 차를 타보게 됐으니 어디를 가볼까나? 인근 교외로 평일 하루 소풍을 가보기로 했다. 촬영하며 발견하게 된 터프한 산길도 알고 있으니 특별한 체험을 해보는 거야. 주차장을 나오는데 나도 조심스럽다. 교관으로서 운전의 모범을 보여야 하니 폼 나게 나서야 하는데 차가 너무 길다. 체감상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높은 시트 포지션이라 시야가 넓어 도로에 나서면 대장인 듯 당당해진다. 

3.6L 펜타스타 V6 엔진의 사운드는 우렁차다. 배기음과 함께 힘차게 발진하는 쾌감은 있지만 일반도로에서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승차감은 오프로드 전용 머드 타이어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힘껏 페달을 밟으면 주행 질감은 상당히 매끄럽고 기대 이상으로 순발력이 좋다. 어차피 고속주행용은 아니야. 적당히 밀리는 길에서 속도를 줄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두 시간쯤 달렸다. 다소 딱딱하게 느낄 수 있는 앞좌석 버킷형 시트는 가는 내내 불편함을 몰랐는데, 적재함 때문에 거의 직각으로 곧추선 뒷자리 시트는 어떨지 모르겠다. 

 

“우와, 굉장한데요? 이런 기분 처음이에요.” 비포장 임도로 들어서며 트렌스 레버를 4H 오토로 바꾸고 지붕을 열었다. 운전석 지붕과 조수석 지붕은 레버 몇 개만 비틀면 손쉽게 열 수 있다. 진정한 오프로더답게 지붕뿐만 아니라 윈드실드와 문짝까지 모두 분리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으니 지붕을 여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순진한 동승자는 연신 감탄을 터뜨린다. 세상의 모든 오프로더는 이렇게 컨버터블이어야만 할 것 같다. 머리 위로 숲이 쏟아져 들어온다.

두어 번 왔던 곳이지만 길이 더 험해져 있다. 지난 여름, 태풍과 폭우가 긁어낸 깊은 도랑이며 바위가 군데군데 솟은 둔덕이 막아 섰지만 글래디에이터는 문제 없이 치고 올라갔다. 이 정도 험로에서는 머리가 사정없이 흔들려 정신을 혼미하게 할 테지만 긴 스트로크로 충격을 충분히 잡아주는 서스펜션 덕분인지 한결 수월하게 느껴진다. 글래디에이터 네 바퀴에는 오프로드 전용 폭스(FOX) 쇼크업소버가 장착돼 있다.

 

수풀을 헤치며 가는 동안 어느새 아들은 말이 없어졌다. 급경사 오르막 앞에서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괜찮을까요?” 굳이 주행모드를 전환하지 않고도 오를 수 있는 경사라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안다. 휠베이스가 길어서 하체가 바위에 긁히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글래디에이터는 거뜬히 길을 차고 올라간다. 루비콘 모델은 전설적인 지프 4X4 기능을 상징하는 빨간색 트레일 레이티드(Trail Rated) 배지를 붙이고 있다. 40.7도의 진입각과 25도의 이탈각, 최저 지상고는 250mm, 760mm깊이의 물길도 지날 수 있으며 최대 2721kg까지 견인할 수 있다. 거침없다는 표현은 이럴 때 어울리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아버지는 내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말리고 금지하셨다. 다칠까 봐, 힘들까 봐, 곤란해질까 봐 그러셨다는 걸 지금은 안다. 그런데 나는 아들에게 해 보라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싶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지만 실상은 그게 잘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못 미더워서. 아흔 아버지가 예순 아들 걱정하듯이.

 

모험을 가르쳐야겠다. 뭐든 부딪쳐보라고 부추겨야겠다. 어디든 가보라고, 뭐든 해보라고 말해줘야겠다. 너만의 삶을 개척하라고 독려해야겠다. 오늘 글래디에이터를 함께 타고 산길을 달리다 보니 생각이 대범해진다. 고 애니웨어, 두 애니띵. 지프 글래디에이터가 동기를 자극한다.

능선길에서 차를 세우고 간식을 먹기로 했다. 이런 풍경에는 좀 더 근사한 장면이 연출돼도 좋을 것이다. 글래디에이터의 짐칸, 트럭베드라고 부르는 공간의 테일 게이트를 열고 길게 눕는다. 덮개는 둘둘 말아서 고정해두고 글래디에이터가 제공하는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는 장면. 우린 방금 거친 진창길을 함께 헤쳐왔다. 모험을 통과한 부자(父子)의 달콤하고 나른한 휴식. 커피라도 끓이면 좋을 텐데. 하지만 오늘은 편의점에서 사온 초코우유와 삼각김밥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 아들의 소망은 검사였다. 우리 부부는 내심 기대를 걸었는데, 알고 보니 검사(檢事)가 아니라 검사(劍士) 즉 글래디에이터라는 걸 알고 실망한 적이 있다. 어쩐지 한동안 검도 도장을 열심히 나가더라니. 속물 근성의 부모는 아들이 검투사로 자라는 것을 방치하지 않았다. 지프 글래디에이터를 같이 타다 보니 잊고 있던 옛일이 생각났다. 검투사가 되려던 아들은 이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고, 그 일에 도전하고 있다. 대견하지만 가끔은 마음 짠하다. 

오늘 아비의 운전 시범을 위해 나선 특별한 소풍. 생각해보니 어떤 상황, 어떤 일에도 어울리는 이 차의 탁월한 효용이 하나 더 있다는 걸 발견했다. 부자의 차. 돈 많은 사람이 타도 좋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타기에 더 좋은 차. 

“이 차는 얼마나 해요?” “6990만 원이래. 7000만 원에서 10만 원 빠져.” “생각보다 안 비싼데요?” “그래서 더 인기가 많아. 올해 배정된 물량이 금방 다 나갔다는구나. 우리가 지금 주문하면 내년에나 받을 수 있을 거야.” 말하고 보니, ‘만약에’라는 말을 빠뜨렸다. 다음에 우리가 글래디에이터를 탄다면 그때는 운전석과 조수석 주인이 바뀔 수 있겠지. 아비의 잔소리가 늘 테고, 어쩌면 흥분해서 부정맥이 도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겠지.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하루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 짧고 아쉽게 느껴진다. 오늘 참 좋은 날이었다. 

글 · 이경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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