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를 다시 포효하게 하라". 푸조 디자인 총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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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를 다시 포효하게 하라". 푸조 디자인 총책을 만나다
  •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opley)
  • 승인 2020.09.2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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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디자인은 아마도 길레스 비달이 10년 전 책임을 맡았을 때도 쇠퇴기에 있었다. 그는 스티브 크로플리에게 말했다. 미적 우수함을 자랑하는 프랑스 브랜드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방법을…

지난 10년간 푸조의 디자인을 맡았던 길레스 비달과 이야기를 나눈 바로 그 날, 유럽 전시회 중 가장 사랑받고 개방적이라 칭하는 제네바 모터쇼의 2021년 행사가 취소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팬데믹 영향으로 흔들린 제조업체들은 내년 제네바 모터쇼 참가 비용이 다소 부담이 된다. 조직위에게 이런 말을 했을 뿐인데도 그 충격은 컸다. 우리는 궁금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모터쇼가 디자인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달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을까?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들 작품을 모터쇼에서 전시하고 평가받기 바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도 이 프랑스인 자동차 디자이너는 놀라운 대답을 던졌다. 

 

푸조 e-레전드는 504 쿠페의 미래를 상상한 것이었다

”방문객이 100만이 넘는 제네바, 또는 파리 모터쇼 같은 행사를 놓친다는 것은 분명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 콘셉트카를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중요한 소재, 컬러, 디자인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순수함을 제공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지금 상당히 높은 수준의 디지털 통신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푸조 나름의 행사를 개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모터쇼가 없더라도 우리 작업물을 일반에 보여줄 수 있는 거죠. 아마도 우리 중 일부는 외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그리워하겠지만 재앙을 피해갈 수만 있다면 필요한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 인스팅트(top) 그리고 2010 SR-1 콘셉트카

비달은 알고 있을 것이다. 푸조에서 인상적인 그의 명성은 지난 2010년, 비교적 젊은 나이였던 38세 당시, 시트로엥에서 12년 동안 작업했던 시간 동안 완성된 그의 철학이 새로워졌고, 그것이 바탕이 됐다는 것을

그가 만들어낸 첫 번째 큰 디자인 작업은 ‘SR1’이라고 불리는 독창적인 푸조 콘셉트 모델이었다. 결코 현실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전 디자인에서 마치 ‘넓은 개구리 입’같이 생긴 모습을 버리고 경량화, 그리고 최첨단 기술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했다. 푸조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더욱 완벽한 비주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마지막에 그가 얘기한 SR1에 관한 역사적 배경은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콘셉트카는 매우 빨리 늙습니다. 디자인은 향후 몇 년 동안 영향을 미치겠지만 소비자들은 시간이 지나도 똑같은 결과물을 원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푸조에게만은 더 그랬죠. 소비자들은 과정을 즐깁니다. 어떤 콘셉트는, 아마도 SR1과 같은 모델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졌겠지만, 여기서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비달이 유행을 선도했다는 것은 이른 대화 속에서 충분히 증명됐다. 그의 첫 번째 콘셉트가 매우 좋았고 중요했겠지만, 더욱 분명한 것은 다음 콘셉트는 더 좋은 것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달이 푸조에서 선임된 이후 디자인되고 출시된 지난 수십 대의 양산차들은 이전 푸조가 어려워했던 부분을 쉽게 풀어나갔다. 문제가 제기됐던 508 모델에서는 아름다우면서도 판매가 잘 될 거 같은 새로운 모습을 갖췄고, 유니크한 i-콕핏 디자인(지금까지 600만대가 사용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적용 중이다)도 만들어냈다. 3008과 5008 SUV를 아우디의 라이벌로 끌어 올렸다. 그의 역할에 대한 확신은 분명했다. 이후 몇 번이나 반복되는, 최신 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라는 질문에도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비달의 다른 콘셉트카는 2015년의 프랙탈(top)을 포함한다

“자동차 브랜드만큼이나 트렌드도 많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술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영리해야 하죠. 디자인은 그저 소통의 형식을 가리키는 건 아닙니다. 짜여진 형식을 갖춰야 합니다. 공장의 설비 라인에 닿는 푸조의 디자인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디자인은 자동차를 만드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50년 전 전성기를 누렸던 사랑스러운 라인을 갖춘 504 쿠페를 재해석해 적용하고 17개국 언어를 구사하는 ‘100% 자율주행’ 콘셉트카 ‘e-레전드’(e-Legend)를 어떤 식으로 수용하고 현대식으로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지난 2018년 파리모터쇼에서 콘셉트카 한 대를 선보이며 비달과 그의 팀은 이것을 ‘레트로-퓨쳐리스틱’이라고 불렀다. 일종의 ‘미래지향적 복고’인 셈이다. 

“사람들은 간혹 자신의 차를 그냥 즐기고 싶어합니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자동차가 어떤지 분석하기 위해 차 안에 화이트보드를 하나씩 갖고 다닐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푸조는 신형 208로 슈퍼미니 시장에서 빠르게 도약했다

이 말은 푸조가 헤리티지 모델의 양산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소린가? 미니 해치백이나 피아트 500과 함께 할 만한 것일까?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달이 미끼를 물었다. 

“이런 아이디어는 오래된 영국식 가치나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이탈리아식 ‘라 돌체비타’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꿈꾸는 많은 고객에게 매력을 전달합니다. 아이디어는 매우 기발하고 수용력이 있지만, e-레전드와 같은 전기차로 양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미니 또는 500과 같은 선상에 서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비달은 새로운 전동화 시대에 접어드는 과정에서 자동차 구매자들은 미니와 500 같은 모델들을 선호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레트로 스타일이 적용된 디자인을 말한다. 

 

e-레전드: 벨루어 및 목재 스티어링 휠이 없다
인스팅트는 푸조의 자율주행 플랜을 보여주었다

“미래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공상 과학 영화를 보더라도 미래는 어둡고 위협적이며 끔찍한 모습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따뜻함은 오간 데 없고 인간미는 사라지죠. 새로운 자동차에는 미래와 융합할 수 있는 더욱 똑똑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일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푸조 i-콕핏으로 성공을 거둔 비달은 차 내 대시보드를 완전히 없애는 방법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비달의 말에 따르면 최신 자동차에 대해 모든 이들이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생각은 전동화 미래가 가져올 또 다른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에어백을 지붕에 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기차 플랫폼 구조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는 문제죠. 재료나 구성들, 모든 준비는 다 돼 있습니다. 공장에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마지막 도전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푸조의 특이한 i-콕핏 레이아웃은 판매 성공을 거두고 있다

보다 과감한 디자인은 어떨까? 우리는 최근 몇 제품들에서 차별성이 판매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비달도 이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살을 붙여 설명했다. 

“닛산 쥬크를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쥬크는 외관상 달라 보이고 더욱 다양한 시장에서 먹혔습니다. 그리고 모든 연령층에게 충분히 어필했죠. 그저 미친듯 차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위험도 감수해야 하죠. 사람들은 자신의 성향을 반영하는 차를 원하는데, 누구도 바보처럼 보이는 차는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고차로 되팔 때의 문제도 생각합니다. 쥬크와 같은 차는 특별한 것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줍니다. 우리는 이보다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방향으로 말입니다. 우리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하며, 브랜드 가치에 대한 확신도 있어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죠.”

그의 모든 대답들이 오히려 또 다른 궁금증을 자아냈다. SR-1의 스타일 변화가 푸조 디자인 철학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전환점인가? 독창적인 또 다른 콘셉트카는 곧 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영영 볼 수 없을 것인가? 비달의 대답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우리의 다음 콘셉트카는, 아니 혹은 가능성이 있는 모델은 매우 중요한 모델이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올해는 아니라는 거죠. 아마도 내년일지도….” 

 

 e-레전드는 과연 생산될 것인가?

이제 푸조는 e-레전드를 결정할 때다

푸조가 2년 전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하며 찬사를 받은 e-레전드 콘셉트의 양산차를 만들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기가 코앞에 왔다.  

당시 푸조의 보스 장 필립 임파라토는 <오토카>에게 PSA 그룹의 전동화 단계가 2020년에 마무리될 때까지 전기적 ‘레트로-미래파’ 스포츠 쿠페(1969년 출시된 504 쿠페를 회상하는)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 푸조 디자인 책임자인 길레스 비달은 과거의 유산에 영감을 받은 모델을 재생산하는 아이디어에 대해 다소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본 것과 같은 e-레전드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사람들이 차를 조종할 필요도 없고 17개 언어를 할 수 있는 자율주행 차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보다 향상된 하이브리드 파워 트레인이나 순수 전기차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결국, 비달은 그러한 차들이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팬데믹 시대에 그것은 어느 때보다 지금 더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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