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를 가로지른 드로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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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를 가로지른 드로리안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2.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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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리안 DMC-12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타임머신으로 만든 영화'백 투 더 퓨처'가 올해 개봉 30주년을 맞이했다. 영화에서 드로리안을 타고 날아간 ‘30년 뒤의 미래’가 이제 현재가 됐다.

■ 미국에서는 1985년, 국내에는 1987년에 개봉했다

1985년 미국에서 개봉한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는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로맨싱 스톤〉(1984년)으로 스타 감독이 된 로버트 저메키스가 메가폰을 잡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영화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가상의 중소도시 힐 밸리를 중심으로, 괴짜 과학자 에미트 브라운 박사(크리스토퍼 로이드)와 고등학생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J. 폭스)의 시간 여행을 그린 3부작이다. 1, 2, 3편의 주요 시간적 배경은 각각 1955년, 2015년, 1885년이다.

영화에서 타임머신으로 나온 드로리안 DMC-12는 제2의 주인공이다. 원래 초기 각본에서는 냉장고가 타임머신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본 아이들이 냉장고에 들어가서 놀다가 갇히게 될 것을 우려한 저메키스 감독은 타임머신을 자동차로 바꾸고 각본을 새로 썼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신의 한 수’가 됐다.

드로리안 DMC-12는 GM 출신 엔지니어 존 드로리안(John DeLorean)이 설립한 드로리안 모터 컴퍼니(DMC)가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생산한 2인승 스포츠카다. DMC가 생산한 유일한 모델인 탓에 간단히 ‘드로리안’(the DeLorean)이라고 부른다.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드로리안은 걸윙 도어와 스테인리스 차체가 특징. 특히, SS304 스테인리스강으로 제작한 차체 패널은 페인트나 클리어 코트를 입히지 않고 금속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 매우 독특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특징을 살려 영화에는 드로리안의 스테인리스 차체가 대형 콘덴서 역할을 해 시간 이동 시 안정성을 높인다는 설정이 들어갔다.
 

■ DMC-12의 모체가 된 DSV 프로토타입(1976년)과 존 드로리안

드로리안의 더블 Y형 프레임은 로터스 에스프리의 것에서 파생됐고, 서스펜션 설계도 에스프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체적으로 하체는 에스프리와 매우 유사하다. 이는 로터스의 설립자이자 소유주였던 콜린 채프먼이 드로리안을 설계했기 때문.

드로리안에 들어간 V6 2,849cc PRV(푸조·르노·볼보) 엔진은 150마력을 발휘했다. 미국 사양은 배기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촉매변환장치를 추가하면서 최고출력이 130마력으로 낮아졌다. 200마력 안팎의 성능을 원했던 존 드로리안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타깃 시장은 미국이었지만, 생산은 북아일랜드에서 이루어졌다. 판매가격을 1만2천 달러(약 1천326만원)로 계획하고 모델명을 DMC-12로 지었지만, 생산비용 증가와 환율 문제로 인해 2만5천 달러(약 2천762만원)에 출시했다. 현재 화폐가치로 6만5천250달러(약 7천21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 현대 쿠페 콘셉트, 로터스 에스프리와 닮았다. 모두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디자인

출시 당시 1만 달러(약 1천105만원)의 웃돈을 주고서라도 구입을 원하는 고객 대기명단이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드로리안은 1983년 DMC의 파산과 함께 총 8,583대 판매를 끝으로 짧은 생애를 마쳤다. 그로부터 2년 뒤, '백 투 더 퓨처'에 타임머신으로 등장하면서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제작진이 드로리안을 선택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다만, 자동차로 타임머신을 만들 거라면 기왕이면 멋진 차가 좋지 않겠냐는 브라운 박사의 대사를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드로리안은 영화에서 우렁찬 엔진음을 내는데, 포르쉐 928의 V8 엔진 소리를 녹음해서 쓴 것이다.

영화 초반 드로리안은 플루토늄을 연료로 쓰는 원자력 기관을 갖추고 등장한다. 브라운 박사는 시간 여행을 위해서 1.21GW(기가와트)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1GW는 100W(와트) 전구 10만 개를 1시간 동안 켤 수 있는 에너지로, 일반적으로 원자력발전소 1기의 전력생산량이다.
 

■ 영화에서 드로리안은 끊임없이 개조된다. 사진은 2편과 3편에 걸쳐 등장한 형태

또한, 시속 88마일(시속 142km)로 주행해야 하는 조건도 있다.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핵심장치인 ‘유동 콘덴서’(flux capacitor)가 시속 88마일에 도달해야 작동하기 때문. 타임머신 자동차의 특징을 살린 영화적 장치다.

시속 88마일이라는 독특한 요소는 이후 다양한 대중문화 매체를 통해 수없이 변주됐다. 일례로, 지난 2011년 발매된 엑스박스360용 레이싱 게임 ‘포르자 모터스포츠 4’에서는 드로리안으로 시속 88마일에 도달하면 ‘시간 여행’이라는 도전과제가 완료된다.

영화의 중심 내용은 시간 여행으로 인해 발생한 타임 패러독스를 바로잡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1.21GW의 에너지를 공급할 방법을 찾고, 차를 시속 88마일로 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3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망가진 ECU를 고칠 수 없는 1955년에는 진공관 회로를 만들어 대체하고, 휘발유를 구할 수 없는 1885년에는 증기기관차의 힘을 빌리는 식이다.
 

■ 영화 속 2015년의 텍사코 주유소. 텍사코는 지난 2001년 쉐브론에 합병되며 사라졌다

드로리안은 1편 말미에 미래 기술로 개조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브라운 박사는 쓰레기통에서 각종 생활쓰레기를 꺼내 ‘미스터 퓨전’(Mr. Fusion)이라는 기계장치에 넣는다. 쓰레기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소형 핵융합장치로 추정된다. 또한, 일종의 반중력 장치를 쓴 비행기능이 추가되기도 했다. 원자력 기관의 위험성, 연료 수급의 어려움, 고속주행에 필요한 공간적 제약을 미래 기술로 모두 극복한 것.

1편은 주인공 일행이 2015년으로 떠나면서 끝나고, 1989년에 개봉한 속편 '백 투 더 퓨처 2'에서 내용이 이어진다. '백 투 더 퓨처 2'의 시간적 배경이었던 2015년은 이제 현재가 됐다. 그런데 26년 전에 상상했던 2015년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다르다.

영화 속 2015년은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거리에는 홀로그래피 광고판들이 즐비하며, 초 단위로 날씨를 정확히 예측하고, 손바닥 크기의 건조 피자를 보습장치에 넣으면 2초 만에 따끈한 대형 피자가 되는 세상이다.
 

■ 드로리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타임머신이 됐다

저메키스 감독은 '백 투 더 퓨처 2' 블루레이에 수록된 해설에서 “아무리 과학적으로 예측하려 한들 틀릴 게 분명했기 때문에 그냥 재미로 상상했다”고 밝혔다. 그와 함께 각본을 쓴 밥 게일은 “2015년에 자동차가 날아다니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영화에 꼭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이 적중한 부분도 있다. 미용 성형의 대중화, 동시에 여러 채널을 볼 수 있는 TV, 개인 맞춤 광고, 동작을 인식하는 비디오게임, HMD(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등은 실현됐다. 나이키는 자동으로 끈이 조여지는 운동화를 올해 시판할 계획이다.
 

■ 영화 속 나이키 운동화가 실제로 나온다

자동 신발 끈과 EL 조명이 들어간 하이톱 스타일의 나이키 맥(Mag)은 〈백 투 더 퓨처 2〉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가 호버보드(공중부양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장면을 통해 여러 번 노출된 맥은 나이키 디자이너 팅커 해트필드의 디자인. 영화 개봉과 함께 맥의 상품화를 요구하는 청원이 이어졌으나, 실현되기까지는 22년이 걸렸다.

지난 2011년, 나이키는 자동 신발 끈 기능을 뺀 맥의 복제품을 만들어 이베이 경매를 통해 하루에 150켤레씩 10일간 총 1,500켤레를 판매했다. 총 판매액은 600만 달러(약 66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는데, 1켤레 당 평균 4천 달러(약 442만원)에 판매된 것. 수익금 전액은 파킨슨병 퇴치를 위한 연구기금으로 쓰였다. 해트필드는 지난 2월 나이키가 자동 신발 끈 운동화를 2015년에 시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것이 맥일지는 불확실하다. 나이키는 2010년에 자동 신발 끈 기술을 특허출원한 바 있다.

글 · 임재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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