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의 황금시대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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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카의 황금시대를 돌아보다
  • 그레그 매클먼(Greg Macleman)
  • 승인 2020.09.0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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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치, 테스타로사, 911 터보의 뒤를 이어, 1980년대에는 구매자들과 어린이들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슈퍼카들이 쏟아져 나왔다

 획기적이던 메르세데스-벤츠 300SL 걸윙부터 보석 같던 람보르기니의 미드엔진 미우라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은 술자리에서 흥분을 자아내던 모든 슈퍼카의 기원에 관해 토론하느라 시간을 보낼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슈퍼카라는 개념이 언제 정말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는가에 관한 토론은 많지 않다. 자유연애와 나팔바지 시대를 이탈리아의 유력 브랜드인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주도했고, 신스 팝과 소매를 접은 블레이저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더 평범한 승용차들과 틈새시장을 노린 소량 제조업체들이 현상 유지를 바라는 브랜드들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하면서 과거에 사랑받던 차들에 대한 압박이 커졌다.

독일로부터 일본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업체와 새로운 자동차 업체들은 자신들만의 화려한 최상위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존 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화려한 모습과 성능을 지닌 차들을 만들어야 했다. 과잉의 시대로부터 탄생한 것은 세상을 놀라게 할 슈퍼카 라인업이었고, 모두 젊은이들의 침대 벽과 속도 기록 책의 빈 공간을 놓고 경쟁했다.

쿤타치와 테스타로사 같은 고급 승용차든, 포드 RS200이나 컨설리어 GTP처럼 경주와 랠리가 낳은 차든, 1980년대는 여러 거장을 거친 수퍼카의 탄생을 책임졌는가 하면, 속도, 화려함, 특별함의 조합이라는 수퍼카들의 특징을 대중의 정신세계에 강렬하게 각인시킨 시기였다.

 

혼다 NSX와 비교적 비슷한 페라리 F40은 아이콘의 지위를 빠르게 획득해 잘 성숙된 모습을 보였다

Ferrari F40 | 페라리 F40

생일 선물로 받으면 좋을 차를 이야기할 때, 1987년형 F40은 최고 중 하나로 꼽아야만 한다. 마라넬로에 뿌리내린 브랜드인 페라리의 설립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고, 엔초 페라리가 개인적으로 승인한 마지막 차로서 강력한 288 GTO를 대체하는 모델로 여겨졌지만, 1990년대를 겨냥한 기술적 마법보다는 1970년대 기술에 더 큰 믿음을 갖고 만들었다는 점이 포르쉐 959같은 현대적 경쟁차와 달랐다.

니콜라 마테라치(Nicola Materazzi)가 설계한 F40의 배경에는 창조자의 자동차 경주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차를 지향했고, 페라리 차들이 점점 더 부드럽고 호화롭게 바뀌고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트랙 주행에 초점을 맞춘 구매자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를 냈다.

프로젝트에 쓰인 엔진은 288 GTO에 쓰인 것의 다른 버전으로, 트윈 터보차저와 인터쿨러를 단 V8 엔진의 배기량은 2936cc로 늘어났고 최고출력은 478마력, 최대토크는 58.9kg·m에 이르렀다.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설정 역시 많은 부분을 288 GTO에서 가져왔지만, 레오나르도 피오라반티(Leonardo Fioravanti)와 피에트로 카마델라(Pietro Camardella)의 펜 끝에서 나온 피닌파리나 디자인의 멋진 차체는 케블라 패널과 알루미늄을 폭넓게 활용함으로써 전비중량을 겨우 1254kg으로 낮출 수 있었다. 엄청나게 강력해진 V8 엔진과 더불어, F40은 정지 상태에서 가속해 시속 97km에 이르기까지 4.1초 밖에 걸리지 않았고, 최고속도인 시속 324km에 이를 때까지 내달렸다. 몇몇 틈새 경쟁차들보다는 아주 조금 느렸지만, 람보르기니 디아블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들 중에 온전한 양산 모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포르쉐 959처럼 기술적 극한을 추구했던 차와 비교하면, F40은 그야말로 공룡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독일 포르쉐 사람들이 약점으로 여겼을 지도 모르는 점은 F40의 최대 강점으로 드러났다. 종종 역대 가장 위대한 수퍼카 중 하나로 찬사를 받았지만, 페라리는 나중에 표준이 될 전자장비와 안전 기술들이 섞이지 않은 거칠면서도 순수한 주행 특성을 보여주었다. 여러 면에서, F40은 그런 부류의 마지막을 장식한 차였다.

 

아일톤 세나의 도움을 받은 혼다 NSX는 탁월한 성능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Honda NSX | 혼다 NSX

미국이 슈퍼카 경쟁에 늦게 뛰어들었다면, 일본은 자동차 경쟁에 늦게 뛰어들었을 것이다. 혼다 같은 업체가 네바퀴 자동차 생산으로 전환한 것은 겨우 1960년대 초반의 일이었고, 1980년대에 이를 때까지 혼다를 비롯해 같은 나라 출신인 토요타, 닛산, 마쓰다는 고성능 승용차보다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경제적인 차들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런 분위기는 NSX가 바꿔 놓았다. 유럽 업체들이 쥐고 있던 패권에 도전할 차를 만들겠다는 혼다 소이치로의 오랜 꿈을 실현한 차가 바로 NSX였다.

처음에는 페라리 328과 겨루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NSX가 1989년 도쿄 모터쇼에서 공개되었을 무렵에는 목표가 348tb로 바뀌었다. 그러나 기다릴 가치는 있었다. 성공의 열쇠는 가벼운 무게에 있었다. 모노코크 구조 전체를 알루미늄으로 만든 첫 양산 승용차로, 혁신적 섀시와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의 단조 부품들이 무게를 줄였다.

개발 프로젝트를 가장 잘 대표한 것은 엔진이었다. 소문처럼 V12 엔진이 올라가는 대신, NSX에는 가변 밸브 타이밍 기술을 쓴 첨단 트윈캠 V6 2977cc 엔진이 쓰였다. 터보차저를 쓰면서 생길 수 있는 무게와 유지비 증가를 피할 수 있도록 자연흡기 방식으로 만든 엔진이었다. 티타늄 커넥팅로드와 단조 부품들을 쓴 아름다운 V6 엔진은 전자장치가 회전을 제한하는 8300rpm까지 멋진 소리를 냈다. 경주차가 아니면서도 회전한계가 그처럼 높은 차는 드물었다.

NSX와 견줄 이탈리아 차들과 비교하면 NSX는 신선한 바람 같은 존재로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주니어’ 슈퍼카였다. 도심지에서도 이탈리아 고속도로를 달릴 때처럼 편안하게 몰 수 있었고, F-16 제트 전투기에서 영감을 얻은 운전석에 앉으면 탁월한 시야가 펼쳐졌다. NSX에서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을 꼽는다면, 강력한 성능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피닌파리나의 디자인이 공격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NSX가 경쟁상대로 삼았던 348에 비하면 훨씬 더 오랫동안 수명이 이어졌다.

NSX는 고성능 승용차가 비좁거나 덥고 실용성이 없으면서 운전하기 까다로울 필요가 없음을 입증하며 슈퍼카 설계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켰다. 최근 들어서야 비교할 만한 차들이 나올 만큼 실용성의 기준이 된 차였다.

 

타협하지 않는 데 토마소는 컬트적인 추종자를 만들었다

De Tomaso Pantera GT5S | 데 토마소 판테라 GT5S 

쿤타치가 증명했듯, 1980년대에 가장 사치스러웠던 슈퍼카가 모두 그 시기에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더 인기 있는 경쟁 모델처럼, 데 토마소 판테라(De Tomaso Pantera)는 1970년대의 산물로서 톰 티아르다(Tom Tiaarda)가 디자인한 깔끔한 선이 더 극단적 스타일링에 자리를 내어주면서 점점 더 철없는 모습으로 바뀌며 성장했다.

판테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알레한드로 데 토마소(Alejandro de Tomaso)와 포드가 힘을 합치며 탄생했다. 데 토마소는 포드의 클리블랜드 V8 5.8L 엔진을 꾸준히 공급받으며 링컨-머큐리 딜러를 활용할 수 있었고, 포드는 쉐보레 콜벳과 경쟁할 고성능 스포츠카를 만들 바탕이 될 차를 손에 넣었다. 결과적으로 나온 것은 거칠고 부실하며 완성이 덜 된 차와 부실한 품질 관리 때문에 설익은 상태에 가까웠다.

제휴 관계는 1975년에 끝났지만, 1980년에 이를 때까지 문제들은 개선되었고 판테라는 GT5를 통해 역대 가장 공격적인 모습의 차로 진화했다. 섀시는 다시 설계했고, 초기 차들의 날렵하고 깔끔한 스타일은 접착하고 리벳으로 고정한 대형 휠 아치, 두툼한 측면 스커트, 공격적 앞 스포일러에 묻혔다. 르망 프로토타입 경주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뒤 스포일러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중반에 GT5는 GT5S로 대체되었다. 마지막으로 클리블랜드 엔진을 엊은 이 버전은 355마력의 최고출력으로 시속 280km의 최고속도를 냈고, 1990년대까지 꾸준히 생산되었지만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 디자인의 판테라 Si에서는 앞서 나온 모델에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각진 벡터 W8은 미국의 슈퍼카 부문에 충격을 주었다

Vector W8 | 벡터 W8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탄생한 슈퍼카에 가장 근접한 차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포드 엔진을 올린 데토마소 판테라였다. 그러나 1978년에 제럴드 위거트(Gerald Wiegert)가 만든 벡터 W2가 나오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미국산 슈퍼카에 대한 위거트의 비전을 담은 W2는 이탈리아 차 분위기가 뚜렷했다. 1968년에 나온 알파 로메오 카라보 콘셉트카와 무척 닮은 모습은 가위형 도어와 각지게 부푼 아치로 완성되어 생아가타 태생인 람보르기니 엠블럼을 달아도 좋을 정도였다. 그러나 W2는 미국 차 혈통을 숨길 수 없었다. 동력은 3단 자동변속기와 결합한 쉐보레 V8 5.7L 트윈터보 엔진에서 나왔다. 신문 표제를 장식하기에 충분한 시속 390km의 최고속도와 본네빌(Bonneville) 소금호수에서의 인상적인 모습과 달리, 프로젝트는 자금 부족 때문에 좌절되었다.

위거트는 1989년에 마침내 야생 상태였던 W2 콘셉트카를 벡터 W8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일을 제대로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꾸준히 개선된 끝에 만들어진 W8은 W2가 최종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제윤활방식 V8 6.0L 엔진은 드래그 경주차 전문가인 존 로덱(John Rodeck)이 설계한 것으로, 단조 부품과 인터쿨러를 결합한 가레트(Garrett)제 터보의 도움으로 634마력의 최고출력과 89.7kg·m의 최대토크를 내는 괴물 엔진이었다.

생산 준비 단계에서 두 대가 만들어졌고, 그 뒤로 17대가 부유한 구매자들에게 전달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정상급 테니스 선수인 안드레 아가시(Andre Agassi)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아가시는 자신의 차 카펫에 불이 붙은 뒤 차를 반납해야 했고 자동차 잡지 <카 앤 드라이버>의 시승 도중 세 대가 파손되면서 W8은 신뢰성이 형편없다는 평판이 굳어졌다.

 

임페라토르의 혈통은 메르세데스-벤츠의 CW311로 이어진다

Isdera Imperator | 이스데라 임페라토르

1970년대가 끝나갈 무렵, BMW는 슈퍼카를 목표로 만든 첫 차인 M1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고성능의 한계를 높이려 노력한 독일 브랜드가 BMW뿐만은 아니었다. 메르세데스-벤츠에는 최첨단 CW311 콘셉트카를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 에버하르트 슐츠(Eberhard Schulz)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언은 했지만 그 차에 시험용 수단 이상의 목적은 전혀 없었고, 슐츠는 이스데라(Isdera)라는 브랜드로 그 차를 직접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콘셉트카에서 거의 달라지지 않은 임페라토르(Imperator)는 파이프로 만든 스페이스프레임 섀시와 유리섬유 차체 패널이 특징이었는데, 원래 차에 쓰인 팝업 헤드램프는 좀 더 단정한 형태의 덮개를 씌운 것으로 바뀌었다. 동력은 메르세데스-벤츠의 M117 V8 4973cc 엔진에서 나왔는데, 이는 R107(SL-클래스 컨버터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놀라운 공기역학 특성과 낮은 공기저항 계수 덕분에 최고속도 시속 283km및 0→시속 97km 가속 시간 5초의 성능을 내기에 충분했다.

양산 메르세데스-벤츠 모델에 알맞은 고성능 엔진이 잇따라 나오면서 임페라토르도 혜택을 입어, 마침내 32밸브 구조를 쓴 AMG V8 6L 395마력 엔진을 얹을 수 있었다.

1984년에 시작한 임페라토르의 생산은 1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1991년에는 CW311의 팝업 헤드램프를 되살린 페이스리프트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1993년에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만들어진 차가 30대에 그친 것을 보면, 메르세데스-벤츠가 처음에 주의를 준 것은 정당했는지도 모르겠다.

 

포르쉐 959에 탑재된 기술은 슈퍼카 카테고리를 미래로 밀어주는 역할을 했다

Porsche 959 | 포르쉐 959

그룹 B 경쟁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승용차들을 낳았다. 그룹 B 경주는 959가 나온 1987년 이전에 폐지되었지만, 포르쉐가 911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한 차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엔지니어 헬무트 보트(Helmuth Bott)와 전무이사 페터 슈츠(Peter Schutz)가 강력한 네바퀴굴림 버전을 만들 계획을 세웠고, 그룹 B가 자극제가 되었다.

동력은 24밸브 수평 6기통 2849cc 엔진에서 나왔는데, 이 엔진은 그룹 C 프로그램과 956/962에 올라간 DOHC 엔진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보쉬 모트로닉 연료분사 기술과 두 개의 시퀀셜 KKK 터보차저의 도움으로 456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놀랄 만큼 강하고 가벼운 차체는 케블라와 알루미늄을 써서 만들었고, 한 덩어리로 된 앞부분은 유리섬유 강화 폴리우레탄으로 성형했다.

기술로 가득 찬 959가 공학용 계산기였다면 F40은 주판과 같은 존재였다. 가장 돋보인 것은 주행 조건과 노면에 적응해 - 앞뒤 동력 배분 비율 40:60인 - 일반적 네바퀴굴림 시스템처럼 작동하거나 힘차게 가속할 때에는 뒷바퀴로 최대 80퍼센트의 동력을 전달할 수 있는 새 인텔리전트 네바퀴굴림 시스템이었다.

지상고는 고속에서 자동으로 낮아지는가 하면, 유압식으로 연결된 액티브 댐퍼 덕분에 안티 롤 바를 달지 않아도 되었다.

그룹 B의 폐지에 따라, 959는 파리-다카르 내구 랠리에서 차분하게 랠리카의 자질을 입증했지만, 사람들에게는 일반 도로용 승용차로서 더 오랜 기억을 남기고 있다. 당대 가장 진보한 기술을 담은 슈퍼카로서, 최고속도 시속 317km를 자랑한 이 인증용 특별 모델은 오늘날 하이퍼카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닦았다.

 

치열한, 그리고 중요한 페라리 288GTO

Ferrari 288GTO | 페라리 288GTO

느슨한 그룹 B 규정이 포르쉐를 유혹했던 것처럼, 규정이 보장하는 내용들은 전설적인 250GTO 이후 페라리의 첫 그란 투리스모 오몰로가토(Gran Turismo Omologato, 모터스포츠 GT 클래스 인증 모델)가 등장하도록 불을 붙였다. 그러나 그 바탕이 된 모델이 테스타로사(Testarossa)와 공통점이 거의 없었던 탓에, 288GTO는 이름에 걸맞게 경주차로 주로 쓰였고 마라넬로에 기반을 둔 페라리의 라인업에서 고성능 모델 역할을 충실히 했다.

개발은 308을 바탕으로 시작되었지만, 1984년에 처음 288이 생산 라인을 빠져 나왔을 때에는 비슷한 점보다 차이점이 훨씬 더 많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형제 모델처럼 닮아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휠베이스를 110mm 늘인 철제 파이프 섀시와 경량 케블라 패널, 복합소재 격벽이 있었다.

전체를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엔진 블록은 308에 쓰인 것과 기본적으로 같았지만, GTO에 쓰인 것은 훨씬 더 강력했고 엔진은 가로가 아닌 세로로 배치되어 트랜스액슬 방식 변속기가 차체 뒤쪽에 달려 있었다. 스트로크가 1mm 줄어들면서 V8 DOHC 엔진의 배기량은 2967cc에서 2855cc로 줄어들었지만, 최고출력은 두 개의 IHI 터보차저와 웨버-마렐리(Weber-Marelli) 전자식 연료분사 장치 덕분에 406마력으로 높아졌다. 결정적으로, 배기량의 변화 덕분에 터보차저를 쓴 엔진을 배기량이 1.4배인 자연흡기 엔진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FIA의 규정을 적용하면 그룹 B의 4000cc 제한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무게가 1100kg이었던 288GTO는 경쟁차들보다 훨씬 더 앞섰고 겨우 4.9초 만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97km에 이르는 것은 물론 최고 시속 304km까지 현기증이 날 만큼 가속했다. 심지어 이런 기록은 직계 후속 모델인 F40이 등장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

 

노퍽 출신의 에스프리는 경량-슈퍼카로 성장했다

Lotus Esprit Turbo | 로터스 에스프리 터보

1980년대에는 진정한 고성능 차들이 대중 앞에 선보였다. 수많은 핫 해치와 스포츠 세단은 물론, 실용적이고 저렴한 주니어 수퍼카들이 거물급 슈퍼카들에 가까운 매력을 지니고 등장했다. 쏟아져 나온 차들 가운데에서는 마세라티 메라크, 람보르기니 잘파, 페라리 308, 알피느 GTA V6, 그리고 로터스 에스프리가 돋보였다.

1970년대의 산물로,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에스프리는 철제 백본 섀시와 차체 가운데 놓인 1973cc 4기통 엔진에 쐐기 모습의 유리섬유 차체를 씌우고 1976년 파리 오토 살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900kg의 가벼운 무게와 경주차 규격 서스펜션에 힘입어 날카로운 핸들링을 자랑했지만, 162마력에 불과한 최고출력은 거물급 슈퍼카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런 사정은 1980년에 F1 경주차를 닮은 치장과 강제윤활식 910 엔진에 가레트제 T3 터보차저를 단 한정판 에섹스 터보(Essex Turbo)가 등장하면서 달라졌다. 새로운 주지아로 디자인 보디키트가 겉모습을 강조했고 213마력의 최고출력에 0→시속 97km 가속 시간 6.1초, 최고속도 241km를 자랑했다.

그 차는 곧 온전한 양산 모델로 개발되었고 피터 스티븐스(Peter Stevens)가 디자인을 손본 에스프리가 공개되면서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로터스는 제 궤도에 올라서게 된다. X180의 기본 디자인은 이전의 흐름을 이어받았지만, 몇몇 선을 부드럽게 다듬어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한편 강도와 강성이 높아졌다.

1989년에 이르러, 에스프리의 2,174cc 터보 엔진은 로터스/델코 다중 연료분사 장치와 개선된 인터쿨러가 결합되어 최고출력이 268마력으로 높아졌다. 그 덕분에 시속 256km의 최고속도와 5초를 밑도는 0→시속 97km 가속 시간으로 슈퍼카를 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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