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아름다운, 알파로메오 스트라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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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아름다운, 알파로메오 스트라달레
  • 오토카 코리아 편집부
  • 승인 2020.08.2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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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달레(Stradale), 스칼리오네(Scaglione), 그리고 쇼카들. 모두 티포 33 스포츠 프로토타입에 뿌리를 둔 알파로메오의 가장 이국적 슈퍼카로서 1967년 9월 몬자에서 열린 페스티발 델 아우토드로모(Festival Dell'Autodromo)에서 선보여 자동차 세계를 놀라게 한 차와 연관된 이름들이다. 심지어 엔초 페라리조차 “그 차에서 잘못된 것은 엠블럼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유명한 이 미드 엔진 2L 쿠페가 태어나기까지 겪은 고난을 말하기에는 ‘몸부림’이라는 단어가 알맞을 것이다.

1963년, 카를로 치티(Carlo Chiti)는 알파의 자동차 경주 부문 운영과 더불어 그에게 주어진 2.0L 스포츠 프로토타입 개발 작업도 아우토델타라는 이름의 별도 자회사가 맡도록 요청했다. 그가 개발할 차는 TZ 쿠페로, 부분적으로 구형 스카라베오(Scarabeo) 기반의 2L 스포츠 프로토타입이었다. 첫 T33은 1967년 3월 발로코(Balocco)에서 첫선을 보였지만, 대담한 H자 형태의 섀시에 - 항공기 제작 경험을 활용해 알루미늄을 리벳으로 결합해 만든 것이었다 - V8 274마력 엔진을 차체 가운데에 올린 이 차는 첫 시즌에서 겪은 어려움으로 입증되었듯 경주 출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치티에게 충분히 많은 일이 주어지지 않은 것처럼, 주세페 루라기(Guiseppe Luraghi)와 오라치오 사타(Orazio Satta)가 이끄는 알파 경영진은 50대를 생산할 계획으로 새 프로토타입을 바탕으로 하는 일반도로용 승용차 개발도 요구했다. 치티는 1963년에 단명한 ATS 슈퍼카를 만들며 프랑코 스칼리오네(Franco Scaglione)와 일한 바 있었고, 1966년 말에 토리노를 근거지로 일하고 있던 재능 있는 설계자였던 그와 새 알파 개발 계약을 맺었다.

스칼리오네는 항공 분야에서도 일했는데, 훌륭하고 대담한 스타일리스트면서도 그의 디자인은 공기역학에 기술적 토대를 두고 있었다. 스트라달레 프로젝트 시작 단계부터 차체 형태는 축소 모형부터 알루미늄이 그대로 드러난 프로토타입으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시험을 거쳤다. 부유한 구매자들이 입증했듯이, 시속 274km로 미사일처럼 달리는 차는 고속에서 대단히 안정적이었지만 운전자와 동승자는 비좁은 실내에서 열기에 시달렸다. 

 

엔초 페라리는 스트라달레에 감명 받았다

알루미늄과 페랄루만(Peraluman, 마그네슘 함량이 높은 알루미늄 합금의 일종)을 써서 만든 오리지널 경주차 섀시를 바탕으로 휠베이스를 늘린 첫 스트라달레 프로토타입은 비아 엔리코 페르미(Via Enrico Fermi)에 있는 아우토델타가 만들었다. 그러나 경주 부문은 차체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스칼리오네는 장비와 전문 기술 부족으로 좌절감이 더 커졌다.

더 많은 전문가들을 채용했지만 아우토델타의 중심 인물은 경주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고, 치티와 매일같이 토리노와 세티모 밀라네제(Settimo Milanese) 사이를 출퇴근했던 스칼리오네의 관계는 껄끄러워졌다. 9월이 되어 마침내 차체가 만들어졌지만 엔진이 없었고, 차체 색을 놓고 논쟁이 벌어져(치티는 흰색을 원했다) 이사인 루라기에게 할 프레젠테이션은 늦어졌다.

10월에 프로젝트 진행 승인이 떨어졌고, 치티는 더 튼튼하고 오래가는 철제 섀시를 바탕으로 하는 ‘양산’차 생산을 위해 스칼리오네의 조언과 달리 카로체리아 마라치(Carrozzeria Marazzi)와 접촉했다. 조용한 데뷔 이후, 스트라달레는 몇 주 뒤에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식적으로 선보였다. 값은 당시로는 놀라운 수준인 1만7000달러로, 가장 비싼 모델 자리를 차지했다.

겸손한 스칼리오네는 스트라달레의 공기역학 시험이 성공적인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경주차보다 120kg 더 무거웠는데도, 일반도로용 차는 전통적인 양모 털실을 단 상태로 발로코 주변을 달리며 아주 안정적임을 입증했다. 차체에서 와류는 뒤 휠 아치 뒤쪽에만 나타났다. 드루엔토(Druento)에 있는 사라치노 에 링구아(Saracino e Lingua)가 만들어 완성된 첫 차체는 스칼리오네의 모형과 거의 같은 모습이었다.

프로토타입 이후에 앞뒤 휠 아치 아래에 대형 공기 배출구를 단 형태로 차체가 개선되었다.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세부 작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각각의 차를 구별할 수 있었다. 언론 매체 시승은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켜, 대단한 성능과 날카로운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 환상적인 노면 유지 능력에 찬사를 보냈다. 시속 241km까지는 엔진 소음이 비교적 작았지만, 시속 258km를 넘어서면 뒤쪽에 있는 V8 엔진의 울부짖음이 작은 실내를 정말 강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운 좋은 소유자들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낮은 지상고였는데, 주유소 입구의 경사면으로 들어설 때에도 긁히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경험은 풍부했지만, 스칼리오네는 T33 경주차의 데이토나 차체를 개발할 때 치티에게 무시당했고, 1968년을 거치며 그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해졌다. 마침내, 그는 마라치에서 초기 작업을 지도한 뒤에 사임하고 인테르메카니카(Intermeccanica)에 합류했다.

 

아구스타 백작(오른쪽)은 포르텔로에서 파란 섀시의 111을 소장했다

주문은 더뎠고, 규격은 반 경주용 코르사에서 실내를 고급스럽게 꾸민 루소 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스트라달레를 경주에 투입하는 것에 관한 초기 논의가 있었고, 프로토타입 한 대를 타르가 플로리오에 보냈지만 시연용으로만 쓰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된 여러 개인 소유자들이 힐클라임과 경주에 출전했다. 1996년, 두 대의 스트라달레가 몬테레이 히스토릭(Monerey Historic) 이벤트에서 달리며 절대 다시 볼 수 없을 듯한 멋진 모습을 연출했다.

초기형 T33 경주차와 스트라달레를 모두 경험한 사람은 거의 없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오스트리아의 전문업자인 에곤 츠바이뮐러(Egon Zweimüller)가 두 차를 모두 몰아봤다. “그 차들은 독특한 개성이 있어요. 모터사이클처럼 아주 직접적인 느낌이 있죠.” 그의 말이다. “ATE 브레이크는 훌륭하지만 무겁고, 경주용 클러치는 까다롭고, 스티어링은 지극히 직관적이고, 변속기는 약간 뻑뻑하지만 속도를 높이면 조작하기가 좋아집니다. 엔진, 브레이크, 변속기 모두 반드시 달리기 전에 충분히 예열해야 해요. 2.5L나 3L 엔진을 얹었다면 꿈에 그리던 차가 되겠지만, 스트라달레와 비교하면 데이토나와 미우라는 트럭이나 다름없어요. 일반도로를 달릴 수 있는 순수 경주차입니다.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도 없고, 예비 타이어는 앞쪽에 하나 밖에 없지만 인증용으로 특별히 만든 공구함이 있죠.”

츠바이뮐러는 네 대의 스트라달레와 관계를 맺었고 그 차들의 매력에 끌렸다. “모습이 아주 섹시하고 무척 여성스러워요. 모든 세대가 매력을 느낄, 영원한 걸작입니다.”

스트라달레의 정확한 생산 대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아마도 치티의 도움을 받았을, 지오반니 고르다넹고(Giovanni Giordanengo)가 비밀리에 만든 ‘컨티뉴에이션(continuation)’ 차들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조르다넹고가 알파 박물관 차들을 재생할 때, 그는 그 차를 복제할 완벽한 참고자료를 얻었다.

 

스칼리오네의 걸작은 어느 각도에서나 아름답지만, 특히 위에서부터가 예술이다. 주의: 방귀를 뀌었을 때 지붕과 여분의 통풍구로 실내를 환기시키는 방법

일반적으로는 스칼리오네가 디자인한 열세 대의 스트라달레가 완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치티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알루미늄을 리벳으로 결합한 섀시를 기초삼아 사이드 멤버 안에 연료를 넣었던 프로토타입을 포함해 처음 생산된 세 대는 네 개의 헤드라이트가 특징이었지만, 이탈리아 법규를 충족하기 위해 1968년부터는 램프를 두 개로 줄였다. 법규상으로는 트럭만 헤드램프를 쌍으로 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쇼카는 1969년 영화 ‘아름다운 11월’(Un bellissimo novembre)에 등장해, 매력적인 조연인 지나 롤로브리지다(Gina Lollobrigida)와 아름다운 모습으로 경쟁을 벌였다. 차의 독특한 특징으로는 지붕에 달린 한 개의 와이퍼가 있었고, 이 초기형 스트라달레는 알파로메오가 소장하고 있다가 더 큰 트럼펫 형태의 스피카(Spica)제 연료분사 콜렉터를 달고 일본인에게 팔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편, 예비 부품으로 만든 두 번째 차는 현재 알파로메오의 무제오 스토리코(Museo Storico) 박물관의 스타가 되어 있다. 초기 차들은 아우토델타가 곤란한 상황일 때 완성되었지만, 나머지 차들은 자가토(Zagato)와 투링(Touring) 출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사로노(Saronno) 근교의 카로노 페르투셀라(Caronno Pertusella)에 있던 카로체리아 마라치에서 완성되었다.

철제 섀시로 만든 첫 스트라달레는 미국인 애호가 헨리 웨셀스 3세(Henry Wessells III)가 샀다. 그는 1960년대 초반에 타르가 플로리오 출전을 위해 시칠리아로 가서 치티를 만났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어 경주 모임에서 정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1967년에 웨셀스는 발로코로 초대를 받아 신형 티포 33의 시험 과정을 지켜봤다. 방문하는 동안, 그는 작업장에서 비밀스러운 알루미늄 차체의 쿠페를 봤다. 웨셀스는 홀딱 반해 첫 ‘양산ʼ 스트라달레를 주문했다. 그 차는 몇 달 동안 이탈리아를 벗어나지 않은 채, 주기적으로 웨셀스가 거리로 몰고 나갔다. 한 번은 베니스로 향하는 아우토스트라다 고속도로에서 4km동안 회전 한계인 1만rpm을 유지하며 시속 290km로 고속 질주를 하기도 했다. 

웨셀스는 1999년에 이렇게 회상하며 스칼리오네의 기술을 확인했다. “스트라달레는 환상적일 만큼 안정적이었어요. 옆바람이 불 때조차도 훌륭하게 직진했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를 운송하는 것을 홍보하는 조건으로, 차는 마침내 무상으로 알리탈리아 항공편에 실려 미국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나중에 알파로메오 전문가인 키스 고링(Keith Goring)이 넘겨받았다. 커네티컷 주의 도로를 신나게 달린 것은 물론, 데이토나와 라구나 세카에서 경주에 출전하며 콩쿠르 스타가 되었다. 이 차는 스칼리오네가 직접 관여한 마지막 스트라달레이고, 지금은 한 벨기에 사람의 소장품이 되었다.

 

아구스타를 위한 특별한 루쏘 운전석 트림은 헬리콥터 시트와 재떨이를 포함한다

브레시아를 근거지로 하는 사업가이자 경주 선수인 주세페 루키니(Giuseppe Lucchini)는 힐클라임 행사에 직접 몰고 나가는 코르사 한 대를 포함해 두 대의 스트라달레를 소유했다. 아름다운 2L 차에 이끌린 다른 이탈리아 유명 인사에는 가업인 헬리콥터 사업의 사장으로서 전 세계를 누비는 코라도 아구스타(Corrado Agusta) 백작이 있다. 그는 사진에 나온 로열 블루(유일하게 빨간색이 아닌 차다)색 차체와 황갈색 실내를 갖춘 섀시번호 111의 스트라달레를 주문했다. 이 고급 모델은 볼보 안전벨트를 단 헬리콥터 좌석과 재떨이, 특수 틴팅한 유리 등 여러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아구스타는 이중 브레이크 서보, 마네티 마렐리(Magneti Marelli)제 점화장치, 고속 주행 중 어마어마한 압력으로 엔진 커버가 들뜨는 문제를 막을 추가 고정 볼트도 요구했다. 

차는 경주 선수인 테오도로 제콜리(Teodoro Zecolli)가 몬자 서킷에서 시험했고, 1973년까지 백작이 갖고 있었다. 나중에 일본인 수집가 하야시 요시유키가 111번 섀시 차를 빨간색으로 다시 칠했지만, 주행거리가 짧고 원래 상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이 스트라달레는 다행히도 유럽으로 돌아왔고 츠바이뮐러의 팀에 의해 5000시간에 이르는 복원을 거친 뒤 원래의 파란색으로 돌아왔다.

다른 스트라달레들은 역사가 더 복잡하다. 두 대는 사고를 당했고, 섀시번호 110번은 여러 해 동안 팔리지 않은 채 로마의 비아 델라 폰타나(Via della Fontana)에 있는 팔룸보 개러지(Palumbo Garage)에 남아 있었다. 마그네슘 합금 도어에 퍼스펙스 유리를 단 것이 특징인 이 경량 모델은 2018년 빌라 데스테(Villa d'Este)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 있다. 몇몇 스트라달레는 희귀한 기계 부품들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면서 수십 년 동안 숨겨진 채로 있었지만, 엄청난 가치 때문에 지금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원래 상태와 거의 같은 차 한 대는 치티가 소유했다가 최근 판매되기 전까지 코모 근교 지하주차장에 보관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사라졌던 다른 한 대는 시카고에 남아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 모든 이상한 일은 궁극의 알파로메오에 매력을 더한다. 복잡하게도, 섀시번호 113은 미신적 이유로 쓰인 적이 없지만 섀시번호 133인 차는 현재 뉴욕에 있는 로렌스 오리아나(Lawrence Auriana) 컬렉션에 있다.

아우토델타와 카로체리아 마라치가 만든 스트라달레 외에도, 콘셉트 차체 제작을 위해 네 개의 섀시가 추가로 이탈리아 최고의 디자인 스튜디오에 전달되었다. 모노코크 시대에 H자형 섀시는 이미 구식이 되었기 때문에, 알파는 예비 부품을 외부로 내보낼 곳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가장 놀라운 것은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가 베르토네 시절에 디자인한 쐐기 모양의 카라보(Carabo, 풍뎅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1968년 파리 오토살롱에서 공개되었다. 새로운 특징으로는 공압장치로 여는 시저 도어와 나중에 쿤타치에 영향을 주게 되는 차체 형태를 꼽을 수 있었다.

 

더 큰 트럼펫 모양의 스피카 인젝션, 4-캠, 트윈 플러그의 V8 엔진 

피닌파리나에는 티포 33 세 대가 주어져, 먼저 1968년에 운전석 뒤에 오렌지색 스포일러를 달고 차체 앞에 일렬로 놓은 라이트들을 투명 패널로 덮은 화려한 은빛 로드스터를 선보였다. 디자인이 환상적인 이 차는 실망스럽게도 두 번째 로드스터를 만들기 위해 분해되었다. 그 차는 파올로 마르틴(Paolo Martin)이 디자인한 쐐기형태의 쿠네오(Cuneo)로 1971년 브뤼셀 모터쇼에 나왔다. 1969년 파리 오토살롱에서 피닌파리나는 33/2 스페치알레 베를리네타(Speciale Berlineta)를 깜짝 공개했다. 이 차는 알파로메오 이사였던 루라기가 엔초에게 의뢰해 페라리 P5를 손질한 것이었다. 차체는 번쩍이는 밝은 노란색으로 다시 칠했고, 걸윙 스타일 도어와 타탄 무늬 내장재, 수납식 헤드램프를 갖춘 이 디자인은 원래 한정 생산을 고려한 것이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도 비차리니 만타(Bizzarrini Manta)의 후속작이 될 가능성을 엿볼 차를 만드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가 1969년에 선보인 이구아나는 날카로운 앞부분에서 높이 솟은 뒷부분으로 이어지는 형태는 알페타 GT의 모습을 짐작하게 만들었고, 지붕을 포함해 유리를 광범위하게 활용한 것이 특징이었다. 차체는 필러를 연마 가공한 은색이었고, 실내는 이상한 기어 레버와 동반석에 단 ‘안전 조끼’를 포함해 금속가루를 주제로 꾸몄다.

T33으로 만든 마지막 콘셉트 카는 1976년에야 나왔다. 베르토네가 제네바에서 공개한 미래적 모습의 나바호였는데, 이 차는 새로운 파이프 섀시와 유리섬유 차체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었다. 첨단 공기역학 요소인 앞 스플리터와 조절식 뒤 스포일러가 쓰인 반면, 헤드램프는 펜더 옆에서 가로 방향으로 뻗어 나왔다. 장식을 제거한 실내에는 디지털 계기, 고정식 좌석, 스포크가 하나인 스티어링 휠, 공중에 떠 있는 센터 콘솔이 있었다.

 

스트라달레는 페라리 GTO나 맥라렌 F1보다 더 희귀해, 지금은 엄청난 가치가 있다. 아쉽게도, 그 차들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예로운 콩쿠르 행사에서 시상대에 오르기 위해 1단 기어를 쓰는 것 외에는 아무도 그 차들을 몰지 않는 듯하다. 티포 33 경주 선수들처럼 그들도 기계적 설계를 도전으로 여기고, 여러 이력이 미스터리다.

이 영광스러운 이국적 차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차들을 더 많이 움직이게 만들기를 바란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여러 대가 함께 여행하는 모습은 장관일 것이다. 스텔비오나 가르데나 고개를 오르며 V8 2L 엔진들이 함께 내뱉는 울부짖음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취재협조 - 에곤 츠바이뮐러(zweimuellercars.com), 찬 르 후이(Chanh Le Huy), 요한 비머(Johann Wimmer) 

알파로메오 T33 스트라달레
판매/생산량 1967-’69/18 (콘셉트카 포함) 
구조 앞뒤 서브 프레임을 포함한 강철/마그네슘 튜블러 
섀시, 알루미늄 차체 엔진 알루미늄, 뱅크당 DOHC를 
장착한 V8 1995cc, 스피카 인젝션 최고출력 248마력/8800rpm 
최대토크 22.4kg·m/7000rpm 변속기 6단 콜로티 근접비 
수동변속기, 뒷바퀴굴림 서스펜션 독립식, 더블 위시본 
트레일링 암; 코일 스프링, 텔레스코픽 댐퍼, 앞/뒤 안티롤 바
스티어링 랙 앤 피니언 브레이크 ATE 벤틸레이션 디스크, 
뒷바퀴 내장 길이 3962mm 너비 1702mm 높이 991mm 
휠베이스 2337mm 무게 753kg 0→시속 97km 가속 6초 
최고시속 273km(추정) 연비 n/a  가격 새차 1만7000달러 
현재 1000만~1500만 파운드(약 152억~228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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