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의 마법사, 지오반니 미첼로티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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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의 마법사, 지오반니 미첼로티의 세계
  • 믹 월시(Mick Walsh)
  • 승인 2020.08.0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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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반니 미첼로티는 시티카부터 맞춤형 GT, 심지어 캐러밴까지 모든 디자인 방식에 독창적인 감각을 더했다
미첼로티는 600 멀티피아를 기반으로 한 여러 ‘비치 버기’ 디자인을 포함해 다양한 피아트 스페셜 모델들을 제작했다 이 스케치는 비날리에 의해 개발됐으며, 1957년 제네바 오토살롱에서 데뷔했다. 이 신제품의 특징적인 점은 베니어로 덮인 차체와 극적일 정도의 개방형 지붕이 있다. 미첼로티는 엔지니어 엔리코 나르디의 스피드 보트도 설계했다.

1200대가 넘는 광범위한 자동차 디자인을 해낸 ‘토리노의 마법사’ 지오반니 미첼로티는 주요 콩쿠르나 디자인 박물관에서 특별 전시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아들 에드가르도는 아버지의 디자인에 대해 놀랄 만한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

 

1970년대 초 미첼로티는 LEM(Laboratorio Elettrico Mobile)과 함께 배출가스 제로인 전기차 콘셉트카를 만들었다. 전기 엔지니어 지안니 로그리아티와 공동으로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피아트와 함께 개발됐으며, 모터쇼 전시 전 미첼로티의 스튜디오 작업장에서 완성됐다. 작업장 근교에는 토리노의 산 카를로 광장이 있다.

미첼로티는 전쟁 전 스태빌리멘티 파리나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던 젊은 시절에 대담한 외관의 주문제작 알파로메오를 만들었다. 이후 1970년대 후반 영국 레이랜드에서 빛을 보지 못한 프로젝트로 좌절감을 느낄 때까지 미첼로티의 기록은 숫자도 많았고 종류도 다양했다. 그가 58세의 나이로 사망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 그의 경력과 작품에 대해 되짚어본 책이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출간되었다.

 

토리노 사무실에서 일하는 미첼로트를 다니엘라(오른쪽)와 에드가르도가 지켜보고 있다. 이후 에드가르도 역시 스튜디오에 합류했다. 미첼로티의 스케치 스타일은 매우 허술했고 종종 수채화를 사용하기도 했다. 스타일 향상을 위해 디자인에 정기적으로 검은색을 칠했다.
미첼로티의 재능은 일본을 포함해 1960년대 초까지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프린스 스카이라인 스포츠 프로젝트를 완료한 후 히노의 제안으로 르노 4CV 기반 콘테사 스포츠에 대해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1964년에는 쿠페 버전도 만들었다.

1921년에 태어난 미첼로티의 재능은 파리나의 첫 직장에서 일찌감치 입증되었다. 유명한 클라이언트 리벨리 백작은 17세 소년이 자신의 맞춤형 알파 6C를 위해 한 1:1 드로잉을 보고 깜짝 놀랐다. 피에트로 프루아가 1948년 갑자기 파리나를 떠났을 때 미첼로티는 견습생에서 디자인 책임자로 승진했다. 1950년대 이탈리아 스타일링의 황금기가 시작되던 그 무렵 이 훌륭한 젊은이를 가로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0대였던 미첼로티는 이미 이국적인 자동차 디자인으로 모터쇼에서 화제를 모은 데뷔작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DAF는 1964년 데포딜(Daffodil) 31의 스타일을 변경하면서 미첼로티의 주요 고객이 됐다. 여기에서 44 쿠페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다. 패널을 목재 벽 주위에 덧대고, 그것들이 서로 맞물리도록 강철 관형 틀로 옮겼다. 이러한 과정이 완료되면 내부에서 작업이 시작된다. 또한 미첼로티는 네덜란드 왕실을 위해 여러번의 DAF 디자인을 만들었다.
미첼로티는 트라이엄프와 오랜 관계를 맺어왔지만, BL 시대에는 데이비드 바슈와의 경쟁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 1979년에 아들 에드가르도와 함께 TR7을 대체할 스포츠카 브로드사이드(Broadside)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결정권자의 승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이 제작되지 않았고, 이후 트라이엄프와 함께 한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활동한 후, 1955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헤드라인을 장식한 ‘데몬 루즈’를 포함해 파리나에서 처음 만난 알프레도 비날리의 광범위한 제작에 참여했다. 피아트 8V를 기반으로 한 이 디자인은 35세의 외과의사 알도 루이노가 의뢰한 것이다. 미첼로티는 비날리의 장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겼다. 왜냐면 그들은 알루미늄을 망치로 두들겨 능숙하게 차체를 만들었고 나무로 된 벽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트라이엄프에 제안한 많은 스타일링 중에는 매끈한 디자인의 1964 비테세 GT 패스트백이 있었다. 기발한 특징으로는 파노라믹 루프와 깊은 차체 측면을 들 수 있는데, 이 측면은 1300 세단으로 이어졌다. 프로토타입은 미첼로티의 토리노 제작소에서 만들어져 제네바에서 공개됐지만, 대중들에게는 너무 급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미첼로티는 비날리를 위해 10개의 오토 뷰(Otto Vu) 차체를 제작했지만, 데몬 루즈와 달리 조르지오 암브로시니의 시아타를 위해 아름다운 바르체타도 만들었다. 1952년 처음 스케치된 프로토타입 208S는 하트 모양의 그릴이 특징으로 미국에서 잘 팔렸는데,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캐롤 쉘비가 만든 코브라에 영감을 주었다.

 

70년대 미첼로티는 계속해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갔으며 그 중에는 ‘쐐기 모양’ 디자인도 있었다. 피아트의 개발 작업에는 충격 흡수를 위한 일체형 폴리에틸렌 범퍼가 장착된 최초의 차량인 128 펄서가 포함됐다. 에드가르도는 이 일회성 모델을 일일 운송수단으로 수년간 사용했다.

미첼로티 작품 범위는 이국적인 쿠페에서 맞춤형 스테이션 왜건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많지만, 그의 포트폴리오는 자동차 외에도 다양하다. 산업 디자이너로서 그는 커피 머신, 냉장고, 오븐과 각종 가구들도 디자인했다. 국제 사이클 경기를 위한 프로모션 차량은 부수적인 작업이었으며, 다른 프로젝트에는 퍼거슨 트랙터, 베스파 및 모토루미 스쿠터, 영국 제조사 마스턴의 캐러반도 포함되어 있다.

 

카로체리아 비날레에서 일할 당시 미첼로티의 독특한 핸드 드로잉 스타일은 부유한 고객, 특히 페라리 오너들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널리 사랑받았다. 독특한 투톤 디자인의 212는 대담하게 감싼 벌크헤드, 화이트 월 타이어와 미첼로티의 시그니처인 격자모양의 에그크레이트 그릴 등이 특징이었다.

주로 도로용 차량으로 유명하지만 미첼로티 스타일의 경주차로는 페라리 340의 파생모델 카레라 파나메리카나, 데토마소-콘레로 그랑프리 카, 가장 위대한 랠리 머신 알피느 A110 등이 있다. 후자는 진 레델레(Jean Rédélé)의 의뢰로, 이탈리아 밖에서 의뢰받은 첫 번째 결과물이다. 1955년 고풍스러운 A106의 스타일링은 세련된 A108을 거쳐 상징적인 A110으로 발전했지만, 창조적인 미첼로티는 레델레가 디자인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후에야 비즈니스에 대해 깨닫게 됐다.

 

미첼로티는 초창기 페라리를 위한 맞춤형 디자인을 제작했지만, 마라넬로 기반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북미 레이싱 팀인 루이지 치네티 주니어의 특별 주문이었다. 365GTB/4를 기반으로 1974년에서 1979년 사이에 5대의 로드스터가 만들어졌으며, 그의 사망 이후 1980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마지막으로 공개됐다.

미첼로티는 50년대 후반 전통적인 카로체리아의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이미 깨닫고, 주요 제조사의 컨설턴트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다. 일본 회사들은 해외 시장 진출의 첫 걸음으로 유럽 디자이너를 영입해 스타일을 완성했다. 1958년 프린스는 미첼로티를 고용해 다양한 모델을 꾸미고 회사 로고를 재작업했다.

 

미첼로티는 600 쿠페를 시작으로 1960년대 BMW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이후 디렉터인 빌헬름 호프마이스터를 위해 중형 모델에 적합한 다양한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프런트 엔드에는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특히 ‘키드니 빈’ 그릴 디자인은 뾰족하게 보이는 뉴 클래스(Neue Klasse) 쿠페의 배지를 위해 대담하게 깎아내렸다.

DAF와 BMW의 부흥에 큰 공을 세운 미첼로티는 스탠더드-트라이엄프와의 관계 및 코벤트리 회사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모델의 독특한 모습으로도 유명하다. 레이랜드와 스카멜과 같은 상용차 설계도 있었지만, 1956년 영국과의 첫 번째 연결고리는 소규모로 제작된 프리스키 마이크로 카부터 시작됐다. 스탠더드-트라이엄프 MD 알릭 딕은 “아이디어를 종이 한 장으로 번역할 수 있는 스타일리스트를 만나본 적이 없다. 지오반니는 내 아이디어를 마치 내 마음을 읽는 것처럼 해석해 말 그대로 내가 묘사하는 자동차를 그려냈다”고 말했다.

 

미첼로티는 카로체리아 알레메노를 위한 A6G-2000 그란투리스모를 포함, 1950년대 마세라티 코치워크를 위해 여러 디자인을 만들었다. 만들어진 차체는 미첼로티 디자인의 슬림한 프로파일과 일치하지 않았으나 독특한 흡기구 디자인은 유지됐다. 토리노의 전설은 브릭스 커닝엄을 위한 스페셜 쿠페를 포함해 여러 5000GT를 스타일링했다. 

에드가르도 미첼로티와 지안카를로 카벨리가 만든 책 ‘프리 스타일리스트’는 폰다지오네 네그리(negri.it)에서 58유로(약 7만7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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