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계의 거인, 스털링 모스 경(1929–2020)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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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계의 거인, 스털링 모스 경(1929–2020)을 추모하며
  •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ropley)
  • 승인 2020.06.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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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 모스는 많은 이가 당대 가장 훌륭한 재능을 지닌 레이서로 꼽힐 뿐 아니라,
다른 레이서들을 비교하는 기준이 되었다.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ropley)가 그의 삶을 되돌아본다
스털링 모스 경: 레이스 드라이버로 요약되는 그의 일생

오랜 투병 끝에 지난 부활절 일요일에 런던에서 90세를 일기로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 스털링 모스 경은 항상 레이스 이력에서 자신의 특이한 이름이 중요했음을 인정했다. 19세의 나이에 운전대를 잡고 짧은 시간 사이에 이루어낸 경이로운 업적을 뛰어넘어, 젊은 드라이버로서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이름에 있었다고 그는 믿었다.

그는 어머니(젊은 시절 싱어 나인을 몰고 힐클라임 경주에 출전했다)가 자신을 해미시(Hamish)라고 부르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버크셔 주에서 치과의사로 일했고 1924년 인디 500 경주에서 16위를 차지한 아마추어 레이서이기도 했다)가 스털링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에 관해 설명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결정된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말했다.

모스는 언제나 상냥한 목소리에 애국심이 강했고 겸손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중의 시선이 경력을 쌓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여러 동료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었다. 그는 경주를 시작하자마자(처음에는 아버지의 BMW 328을 몰았고, 곧 존 쿠퍼의 극초기형 500cc 1인승 경주차로 바꿨다)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생의 마지막 날까지 줄곧 대중과의 관계를 이어 나갔다. 주된 이유는 일생동안 이어진 그의 레이스에 대한 사랑을 사람들이 알고 인정했다는 것과, 그의 가장 훌륭한 우승 기록들 중 대부분이 경주에서 가장 빠르지 않은 차를 몰았을 때 나왔음을 사람들이 잘 알았다는 데 있었다.

 

1958년 모스와 호손은 F1 타이틀을 놓고 접전을 펼쳤다
1955년 밀레 밀리아에서 모스와 코드라이버 젠킨슨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모스는 틀림없이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레이서였다. 1962년 굿우드에서 그가 경력을 마감하는 사고를 당하고 한 달 동안 혼수상태에 있었을 때, 런던의 이브닝 스탠다드 신문은 1면의 단신으로 그의 상태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몇 년 전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 행사장 드라이버즈 클럽 밖에서 젊은 챔피언들은 주목받지 못한 것과 달리,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일상적 관계가 전혀 깨지지 않았음을 알았을 것이다.

같은 행사장에서 기획력 있는 노점상들은 여전히 모든 교통경찰이 과속하는 운전자들에게 했을 법한 1950년대의 유명한 문구, ‘당신이 무슨 스털링 모스라도 되는 줄 알아?’(Who do you think you are, Stirling Moss?)가 담긴 티셔츠를 파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다. 

모스의 이력에서 돋보이는 것들은 전설이 되었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포뮬러 원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한 적이 없는 최고의 드라이버였다. 1958년 시즌에 단 1점 차이로 챔피언이 되지 못한 이유는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마이크 호손(Mike Hawthorn)의 실격에 그가 스포츠맨답게 항의하면서 호손이 6점을 되찾아 끝내 챔피언이 된 것이었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 7년 동안, 모스는 세계 선수권에서 네 차례 2위에 올랐고, 나머지 시즌에는 3위를 차지했다.

모스는 모두 합쳐 529차례 경주에 출전해 212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어떤 때에는 하루에 여섯 차례 경주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것은 경주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었고, 변함없이 차가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능력을 뽑아냈다. 그는 그랑프리 경주에 66번 출전해 16번 우승했고 40차례 시상대에 올랐다. 그는 스포츠카 경주에서 여러 차례 대단한 우승을 기록했고 랠리 선수로서도 좋은 기록을 남겼다. 그는 알파인 랠리 골드 컵에서 세 차례 우승했고, 1952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는 선빔 탈보(Sunbeam-Talbot) 90을 몰아 2위에 올랐다(당시 <오토카> 기자 중 한 명이 코드라이버로 참여했다).

 

1961년 모나코 GP에서 모스의 승리는 그의 뛰어난 업적 중 하나다

두 차례의 아주 특별한 경주에서 모스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인 섬뜩할 정도로 놀라운 운전 실력과 어마어마한 용기와 결단력이 드러났다. 첫 번째는 그와 저널리스트인 데니스 젠킨슨(Denis Jenkinson)이 메르세데스-벤츠를 몰고 이탈리아 도로 1600km 코스를 평균 시속 157.7km로 겨우 10시간 조금 넘게 달려 완주해 우승한 1955년 밀레 밀리아(Mille Miglia)였다. 당시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두 번째는 눈부신 성과를 거둔 1961년 모나코 그랑프리였다. 그는 심각할 만큼 출력이 부족한 롭 워커(Rob Walker) 로터스 18 경주차를 몰고 나섰다. 한 바퀴 차로 우승을 차지했어야 마땅할 상어처럼 날렵하고 훨씬 더 강력한 신형 페라리 V6 경주차 세 대를 제친 그는 3초 차이로 우승했다. 두 우승 모두 전적으로 드라이버의 능력이 빚어낸 성공을 대표하는 사례로 길이 남을 것이다.

모스는 1962년 부활절 월요일에 굿우드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100 경주에서 로터스 경주차를 몰다가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 한 달간의 혼수상태에서 회복되면서, 그는 몸 한 쪽이 마비되었음을 알았다. 결국 회복되기는 했지만, 경주차로 시험주행을 해 본 뒤에 그는 오랜 기술과 감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은퇴를 결정했다. 그러나 명성은 60년 동안 사그라지지 않고 이어졌고, 모스는 종종 모터스포츠가 훌륭하게 영웅을 기억하는 것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모스는 <오토카>의 헌신적인 독자로, 지금의 모든 편집진이 참여하기 훨씬 전부터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기자들을 이해하고 (대부분) 좋아했기 때문에, 기사의 더 자세한 내용을 묻거나 그가 했던 이야기에 부연설명을 하기 위해 종종 전화를 걸었다. 아내와 나는 그의 집에서 몇 번 식사를 함께 했고, 그래서 수지(Susie) 여사가 훌륭한 요리사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F1의 최전선에 있었다
모스의 용기와 컨트롤은 전설적이었다

몇 가지 일들은 항상 내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하나는 내가 어느 날 오후 장기 시승용 차인 르노 트위지를 몰고 메이페어(Mayfair)에 있는 그의 집 부근으로 갔을 때 그가 금세 관심을 보인 일이다. 그가 스쿠터, 삼륜차, 스마트, 그리고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교통수단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그 차를 좋아하리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는 분명히 나이가 80대였을 텐데, 쏜살같이 운전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트위지의 최고속도는 시속 82km이고, 나는 그가 좁고 복잡한 런던 도심 거리의 끝에 닿기도 전에 그 속도에 다다랐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중에 그가 트위지 한 대를 사서 앞뒤로 놓인 비좁은 좌석에 (다행히도 몸집이 작은) 수지 여사를 뒤에 태우고 몬 것을 이해한다.

또 다른 기억은 언젠가 실버스톤에서 열린 영국 그랑프리에서 보여준 그의 관대함이다. <오토카>는 가장 나이 많은 독자를 알아봤고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나는 그가 처음 출전한 영국 그랑프리에서 모스를 봤고 오랜 팬이기도 했다. <오토카> 외부 필자인 콜린 굿윈(Colin Goodwin)은 모스가 서킷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이곳에 와서 우리 손님을 만나보면 어떻겠느냐고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했다. 10분 뒤에 모스는 우리와 함께 있었고, 그는 기뻐하는 독자들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가장 좋게 기억하는 것은 모스의 잘난 체하지 않는 본성이었다. 그가 수시로 했던 라디오와 TV 인터뷰를 접했다면 여러분도 알겠지만, 그는 언제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내 질문에 어떻게 답했는지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 질문이 그가 앞서 천 번은 답했을 것이 뻔했지만 말이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스털링, 1955년 밀레 밀리아와 1961년 모나코 그랑프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훌륭한 우승이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는 생각하느라 잠시 뜸을 들였다. 마치 이 질문을 평생 처음 들은 것처럼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밀레 밀리아를 골라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네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요…”

아마도 모스의 운전에 관한 최고의 기억은 어느 해인가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그의 뒤를 따라 달렸던 것이 아닐까. 그는 밀레 밀리아 우승 경주차를 떠오르게 하는 메르세데스-벤츠 300 SLR을 몰고 막 출발한 상태였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재규어 헤리티지가 보유한 D-타입 중 한 대를 몰고 뒤를 따랐다. 나는 관중이 오로지 그만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봤다. 마치 트랙 위에 그가 혼자 존재하는 듯 말이다. 그의 미소, 머리의 각도, 나른한 손짓에는 ‘물론, 이런 반응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에요’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스만을 위한 것이었고, 당연히 그랬어야 했다. 

 

 

스털링 모스 경을 기억하며

나는 그와의 대화를 그리워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독특한 조합이었고, 우리의 우정이었다. 시간과 배경이 매우 다른 두 사람이 만났지만, 레이스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동지로 만들었다. 그와 함께 특별한 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루이스 해밀턴, F1 월드 챔피언 6회

그는 성공적인 스포츠맨이자 진정한 신사였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우리가 그를 항상 기억하게 하는 이유이다.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사장

그는 페라리의 두려운 경쟁자였다. 아버지는 스털링이 타지오 누볼라리(1892-1953, 이탈리아 레이스 드라이버)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어떤 차종에서든 그는 레이스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인데, 레이스는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곁에 남아있었다.
피에로 페라리, 페라리 부회장

그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우리 업계의 진정한 거인이었고, 영원히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마리오 안드레티, 1978 F1 월드 챔피언

스털링의 경력은 그의 완벽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는 특징으로, 그는 스스로를 진정으로 차별화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토토 울프, 메르세데스 F1팀 수장

그는 레이스 드라이버가 가야 하는 길을 걸었고, 레이스 드라이버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은퇴한 이후에도 필척할 수 없는 기준을 세웠다.
잭키 스튜어드, F1 월드 챔피언 3회

 

 

 모스의 경주 이정표 

1948 
아버지의 BMW 328로 레이스를 시작한 그는 나중에 1인승의 쿠퍼 500으로 첫 우승을 기록했다

 

1950
던로드에서 열린 RAC 투어리스트 트로피에서 재규어 XK120으로 달려 그의 첫 국제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1951 
브렘가르텐에서 열린 스위스 그랑프리가 그의 F1 데뷔전이었으며, HWM-알타를 타고 출전해 8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1954
챔피언십과는 무관한 올튼 파크 인터내셔널 골드 컵에서 마세라티 250F를 몰고 그의 F1 레이스 첫 우승을 달성했다. 빌 로이드와 오스카 MT4를 함께 몰았던 세브링 12시간 스포츠카 레이스를 통해 비(非) 미국인 최초의 우승자가 되었다

 

1955
메르세데스 팀에 소속된 그는 에인트리에서 열린 영국 그랑프리에서 F1 챔피언십 레이스 첫 승리를 차지했고, 밀레 밀리아에서도 300 SLR로 우승할 수 있었다

 

1957
마세라티에서 반월로 전환해 영국 제조사 최초의 우승 기록을 안겼다. 그는 1955년부터 1958년까지 매년 챔피언십에서 2위를 달성했다

 

1958
뉘르부르크링 1000km에서 애스턴마틴에게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이벤트에서 3연승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1961
로터스 18/21과 함께 노르드슐라이페에서 열란 독일 GP에서 그의 마지막 F1 챔피언십 우승을 기록했다

 

1962
굿우드에서 열린 챔피언십과 관계없는 F1 경기에서의 심각한 사고로 인해 그의 레이스 경력이 마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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