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 클로젯 - 상원의 차, 레인지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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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 클로젯 - 상원의 차, 레인지로버
  • 신지혜
  • 승인 2020.03.0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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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지로버를 몰고 가는 상원은 끊임없이 뒷좌석에 앉은 딸 이나에게 말을 걸지만 뾰로통한 표정의 이나는 상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도무지 입을 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고즈넉하고 한적한 동네, 맑고 깨끗한 공기가 있는 곳을 찾아 상원은 이나를 데리고 이사를 왔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아내를 잃고 어린 딸 이나는 그 충격으로 말도 하지 않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언제나 신경이 곤두선 모습으로 먼 곳을 바라볼 뿐.

 

건축가인 상원은 여러 가지로 난감하다. 이나의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스스로도 아내의 죽음 이후 공황장애를 앓게 되었으며 딸을 혼자 둘 수 없기에 현장에도 몇 개월째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애가 탄다. 아이를 봐 줄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고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상원에게 매달려 있다. 

친구인 의사는 공기 좋고 조용한 곳으로 이사해 이나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고, 상원은 그의 말대로 한적한 곳에 새 집을 구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멋있는 이 집이 이나에게 좋은 환경이 되어 주리라 기대하며 말이다.

 

그리고 그 덕분일까. 이나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밝은 얼굴로 아빠를 부르고 차려준 밥을 싹싹 긁어먹고 소리를 내어 웃고 2층에서 뛰어다니며 논다. 마음 한 편이 놓인 상원은 마침내 보모가 온 날 다시 현장에 나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상원은 알지 못했다. 이나의 작은 변화가 사실은 무시무시한 사건의 전조라는 것을. 갑자기 이나가 사라지고 이나의 방에 있는 클로젯이 저절로 열리는 등 혼란스럽고 공포스러운 일들이 몇 차례 지나가면서 상원은 더 큰 절망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낯선 남자 경훈이 찾아와 지난 10년 간 감쪽같이 사라진 아이들의 일을 전해주며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클로젯.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큰 공간을 가지고 있는 벽장. 클로젯은 이미 여러 영화 속에서 나온 바 있다. 때로 그것은 신비한 통로가 되어주고 때로 그 곳은 아늑한 공간이 되어주지만 때로 그것은 공포와 맞닿아 있다. 영화 ‘클로젯’의 클로젯은 그야말로 소름 돋는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상원의 차는 레인지로버. 영화 도입부, 화면은 상원의 화려한 시간들을 보여준다. 그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새겨진 각종 트로피들은 그가 얼마나 실력 있는 건축가인지 알려주는데, 그것은 곧 그가 단시간 내 이렇게 크고 웅장한 저택을 마련할 수 있었던 이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상원의 트로피들이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얼마나 실력이 뛰어난지 알려주는 반면, 그는 아내와 딸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는 못할 정도로 바쁘고 늘 현장에 상주했겠구나 하는 짐작을 전해준다. 

어쨌든 그런 상원에게 레인지로버는 더할 수 없이 잘 어울리는 차이다. 단단하고 거침없는 외형, 선이 굵고 터프해 보이는 레인지로버는 그가 언제 어느 때고 현장으로 달려갈 때 망설임 없이 응해주었을 것이다. 

상원은 섬세하고 배려심 깊은 남편 또는 아빠였을 가능성보다는 무심하고 건실한 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의 그런 성향 또한 심플하고 견고한 레인지로버와 잘 맞았을 테고. 또한 그는 늘 바쁘게 현장을 뛰어다녔을 테니 안전성이 담보된 큰 차가 필요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레인지로버는 상원과 썩 잘 맞는 차가 아닐까. 

 

그런 레인지로버가 이나를 함께 태우고 새 집으로 달려간다. 계속 이나에게 말을 걸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는 상원처럼 어쩌면 레인지로버 또한 연약하고 성마른 꼬마 소녀를 태우고 가는 것이 어색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면서도 상원이 이나를 향해 온 마음을 쏟는 것처럼 레인지로버 또한 이나를 단단하게 잡고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싶다. 

그런 상원의 부성은 끝끝내 이나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았고 경훈의 도움을 받아 이나를 되찾아 오는데 성공하고야 만다. 그것이 아버지가 아닐까. 

살짝 열린 벽장 틈 사이로 누군가가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김광빈 감독의 경험에서 출발했다는 이 이야기는 섬뜩함 이면에 아이들에 대한 감독의 안타까움과 따사로움을 함께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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