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스킨 - 조르주의 아우디 V8] - 재킷 한 벌에서 시작된 막장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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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스킨 - 조르주의 아우디 V8] - 재킷 한 벌에서 시작된 막장극
  • 신지혜
  • 승인 2020.01.2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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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홀린 듯한 표정으로 가죽 재킷을 바라본다. 사슴가죽으로 만든, 프린지 장식이 달린 재킷은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그 남자 조르주에게는 꽤나 인상적인 모양이다. 조르주에게 재킷을 건넨 남자는 덤이라며 소형 카메라를 한 대 준다. 거의 새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재킷과 카메라를 손에 들고 조르주는 차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달린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상당히 기분 좋은 마음으로.

사슴가죽 재킷. 볼수록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입어보는 순간 확 느낌이 왔고, 그래서 가격흥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차 문에도 걸어보고, 거울 앞에도 걸어보고, 의자에도 걸어두고, 조르주는 점점 더 재킷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마치 사랑에 빠진 것 같다. 

문득 조르주는 사슴가죽 재킷이 말을 거는 듯 느낀다. 그리고 그 재킷은 자기가 세상에서 유일한 재킷이 되고 싶어 한다고 느낀다. 그래. 그 소망을 이루어 주겠어.

어딘가 들뜬 마음이 된 조르주는 카페에서 일하는 드니스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녀가 영화편집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얼떨결에 자신이 영화감독이며 무언가를 찍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 조르주는 내친 김에 드니스를 고용하고는 대충 이것저것 찍어 놓았던 테이프를 건넨다.

놀랍게도 드니스는 조르주의 영상에서 큰 인상을 받게 되고 적극적으로 편집에 대한 의견을 펼치면서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한다. 조르주는 조르주대로 자신의 사슴가죽 재킷을 세상에서 유일한 재킷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사람들을 속여 재킷을 빼앗기 시작한다. 영화를 찍는답시고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에게 다시는 재킷을 입지 않겠다는 대사를 읊게 한 뒤 트렁크에 재킷을 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를 찍는다는 말에 신이 나서 협조하던 사람들은 재킷을 실은 채 그대로 달아나는 조르주가 영 어이없지만 재킷을 되찾을 방도가 없다. 

그렇게 드니스의 재촉과 사슴가죽 재킷의 재촉을 받은 조르주는 조금씩 광기에 물들어 간다. 사람들에게서 재킷을 벗겨 빼앗는 일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카메라에 담긴 영상은 그래서 점점 더 폭력적이 된다. 드니스는 점점 더 자극적인 장면을 원하고 조르주는 점점 더 끔찍한 광기에 물들어간다.

조르주의 차는 아우디 V8. 올드 모델인 이 차는 조르주와 늘 함께 한다. 사슴가죽 재킷을 사러 외딴 집으로 향할 때도 아우디는 기꺼이 함께 해 주었고, 재킷을 걸어 놓는 지지대가 되어주기도 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재킷을 트렁크에 가득 실어 주었다. 조르주가 카메라로 사람들을 찍을 때 받침대가 되어 주기도 하고, 조금씩 광폭해져 가는 조르주 곁에서 그가 행하는 행동을 모두 지켜본다. 

낡은 아우디 V8은 어쩌면 아내와 헤어지면서 그에게 남은 유일한 물건인지도 모른다. 가진 돈은 재킷 사는 데 다 쏟아 부었으니 아우디는 재킷과 카메라와 더불어 조르주에게 남겨진 가장 소중한 물품일 것이다. 

아우디는 아마도 오래전부터 조르주와 함께 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내와의 희망차고 행복했던 시절부터 함께 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빈털터리로 아내와 헤어진 조르주지만, 아우디 V8은 이전의 그의 생활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품일 수도 있다. 나름 소중하게 여겼던 삶이 있었으리라. 나름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으리라. 나름 여유를 즐기는 생활이 있었으리라.

이전 조르주의 삶부터 지금, 광기에 물들어가는 조르주의 모습까지 아우디 V8은 모든 것을 보아 온 것이다. 그 간극을 견디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시간들을 함께 했기에 조르주의 광기를 묵묵히 받아들여줄 수도 있었는지 모른다. 

쿠엔틴 듀피유 감독의 ‘디어 스킨’은 참 괴상한 영화다. 재킷 하나에서 출발한 광기라니. 그런데 묘하게도 눈을 뗄 수 없다. 조르주의 영상을 본 드니스의 반응처럼 영화를 보는 관객인 우리가 감독이 만든 영화 한 편을 자기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해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임을 상기해보면 이 어이없는 영화가 은근히 재미있어진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조르주의 영상이 드니스의 감정과 해석과 충돌하면서 뭔가 있어 보이고 그럴 듯해 보이는 영화의 일부가 될 수 있겠다 싶다. 문화콘텐츠라는 것, 예술이라는 것은 이미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시대로 넘어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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