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 릭 달튼의 캐딜락 쿠페 드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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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 릭 달튼의 캐딜락 쿠페 드빌
  • 신지혜
  • 승인 2019.11.2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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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동료이자 친구이다. 할리우드에서 주로 서부극에 출연하며 멋진 역을 도맡아하던 스타 릭 달튼. 그리고 그의 액션을 대신해 온 스턴트맨 클리프 부스.

잘 생긴 외모와 연기력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아온 릭 달튼이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를 찾는 사람들이 뜸해졌다. 그와 함께 세월을 보내 온 클리프 부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릭과 늘 함께 하며 촬영장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몇몇 영화인들과의 불화가 있었고, 그 에피소드들은 늘 클리프의 뒤를 따라다니며 발목을 잡는다.

어쨌거나 그들은 왕년의 스타였고 지금도 근근이 이름은 유지하고 있는 터. 1969년의 릭과 클리프는 아직 할리우드에 있다. 그들에겐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리라.
릭과 클리프는 오랜 동료이자 친구이지만 때로 클리프는 릭의 운전기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 클리프의 집사가 되기도 한다. 릭을 하얀색 캐딜락 쿠페 드빌에 태워 촬영장에 데려갔다 데려오고, 릭의 집에 수리할 곳이 생기면 지붕 위도 마다 않고 올라간다. 릭의 술친구가 되어 주고 릭의 보호자가 되어준다. 일면 클리프는 릭의 가족과 
다름없지만 그렇게 일과가 끝나면 클리프는 자신의 집, 트레일러로 돌아와 자신의 충직한 개와 함께 자신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옆집에 누군가 이사해 온다. 새롭게 이웃이 된 그들은 다름 아닌 감독 로만 폴란스키와 그의 아내이자 아름다운 배우인 샤론 테이트. 먼발치에서 부부를 본 두 사람은 살짝 흥분한다. 저런 유명인의 이웃이 되다니.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69년이라는, 영화사에서는 잊지 못할 끔찍한 사건이 있었던 그 때를 배경으로 실제에 기반한 허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리우드의 배우 릭 달튼의 시간으로는 당시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보여주고 배우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꿈을 심어 주는 영화산업의 일면과 배우의 아우라를 보여준다. 릭은 그렇게 촬영장에서 연기를 하면서 관객들에게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다.

역시 할리우드에 있지만 릭과는 다른 위치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클리프 부스의 시간은 조금 다르다. 클리프가 촬영장에 있는 모습은 주로 플래시백을 통해 그의 과거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현재의 그의 모습은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릭의 캐딜락을 몰고 우연히 마주친 히피 소녀를 따라 그들의 세상에 들어가게 된 클리프는 그 곳에서 독특한 경험을 한 후 빠져 나오는데, 대역배우이자 스턴트맨인 클리프는 어쩌면 히피 소녀의 세상에서 (마치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간접적 경험처럼) 현실이면서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히피소녀의 세상을 체험하는 것으로 우리들에게 또 다른 간접적 경험을 하게 해 준다. 대역으로 실제 배우의 액션을 덮어주는 것처럼 자신의 경험으로 관객의 경험을 덧씌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타란티노는 이 영화를 통해 가장 큰 간접 경험을 관객에게 돌려준다. 바로 샤론 데이트 사건이다.

끔찍하고 잔인했던 이 사건이 있었던 그 해, 타란티노는 영화적 허구로 실제를 덮어주면서 샤론과 영화팬들, 관객들에게 단단한 위로를 건네고 있는데, 너무나 허구 같은 허구인 영화의 종반부 장면은 실제의 사건에 대해 든든한 위로가 되고 통쾌한 복수가 된다.

영화 속에서 단연 눈에 들어오는 차는 캐딜락 쿠페 드빌이다. 밝게 빛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차는 그대로 할리우드의 스타인 릭 달튼을 보여준다. 차체의 크기며 색이나 디자인이나 어디를 보아서도 존재감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이 차는 릭 달튼 그대로인 것이다.

한편, 이 차를 주로 운전하는 사람은 사실 릭이 아니라 클리프인데, 촬영장 밖에 있는 보통사람들은 클리프 혼자 캐딜락을 모는 것을 보게 되면 자연스레 그의 차라고 생각하게 된다. 릭의 액션이 클리프의 대역임을 모르고 보면서 그 액션이 릭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듯이. 그래서 상아색 캐딜락은 눈에 뜨일 수밖에 없는 스타 릭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그의 대역인 클리프를 나타내기도 한다.

어쨌든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할리우드의 스타를 대변하는 릭과 그의 한 면인 클리프를 나타내는 쿠페 드빌은 화면 속에서 멋진 풍모를 자랑한다. 마치 ‘이런 시대가 있었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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