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 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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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아침 창을 열며
  • 최주식
  • 승인 2008.02.2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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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조화석습(朝花夕拾)이라 하지요. 오래 전에 읽었던 루쉰의 산문집 제목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아침 마당에 떨어진 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쓸어버릴 것이 아니라, 저녁까지 기다린다는 여유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인생이란 단지 여유만이 아니라 강인한 인내와 원숙함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살갗을 스치는 매운 바람에도 인생을 배웁니다.   

오랜만에 사무실에서 아침을 맞이합니다. 자동차 저널리즘계에 입문한 지 16년 만에 처음으로 창간호를 만들었습니다. <오토카>는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보아왔던 잡지였습니다. 말하자면 독자에서 만드는 입장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설레임이 적지 않습니다. 영화 개봉을 앞둔 감독이나 배우의 심정이랄까요. 잡지계에서는 창간호 작업을 한다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지요.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창간 준비기간도 무척 짧았고요. 솔직히 말하면 좀 더 잘 만들지 못한 변명을 미리 해두는 것이지요. 하지만 시작부터 너무 욕심내지 않으려 합니다. 무엇보다 <오토카>의 내용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창간호에 조금 분량은 많지만 <오토카> 114년의 역사를 실은 이유입니다. 하나의 잡지가 그것도 자동차 전문지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왔다는 데 경외감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중순 영국 <오토카>를 발행하는 헤이마켓미디어그룹에 다녀왔습니다. 자동차 스튜디오를 건물 내에 가지고 있을 만큼 규모가 컸습니다.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사진스튜디오 LAT가 바로 이 회사 소속으로 그 편집실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속내는 무척 부러웠지만 또 한편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만드는 자동차 잡지를 국내에 소개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세계는 이제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 오래입니다. 

국내에서 팔리는 한국차와 수입 자동차는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또 전 세계에서 소비됩니다. 세기말부터 불어 닥친 인수합병으로 자동차는 이제 국적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고도 하지요. 라이선스 잡지가 단지 번역소개에 그치지 않고 함께 기사를 읽고 공감할 수 있는 배경입니다. <오토카>에서 다루는 차는 대부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차들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꿈의 영역 또한 자동차 잡지의 매력일 테지요. 사실 독자들의 수준과 눈높이는 어느새 전문가 수준에 뒤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전문지의 편집자로서 무게감이 큰 이유입니다.   

에둘러 말하긴 했지만 창간호에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오토카>가 어떤 잡지이다 하는 것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기사 하나하나를 읽어보면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없는 정보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1년 또는 2년 뒤에 등장할 예상모델을 짚어내는 예지력과 공정하고 신뢰성 있는 테스트는 이미 100여년의 역사를 통해 입증된 것입니다. 2007년 로드 테스트의 종합판을 실은 것도 <오토카>가 어떤 방법으로 어떤 차들을 테스트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더불어 2008년 등장할 세계 각 메이커의 100대의 차 또한 흥미롭습니다. 현대 뒷바퀴굴림 쿠페 i40 C 소식도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런던에서는 조금만 길을 가다보면 잡지 가판대가 눈에 띄었습니다. 잡화점 같은 데서도 마찬가지구요. 잡지의 종류도 많았지만 원하는 분야의 책을 찾아 읽는 사람들 역시 무척 많았습니다. 그래서 잡지가 더욱 발전하는 듯했습니다. 세계는 지금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웹 2.0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럴수록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한 욕구 또한 커지는 게 사실입니다. 인터넷도 물론 유용하지만 아무데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자동차 기사가 아닌, 정말 읽고 싶고, 그래서 오랫동안 보관하고 싶은 자동차 잡지를 만들고자 합니다. 저 역시 서점에 가면 사고 싶은 잡지를 찾는 독자 중의 한 사람이니까요. <오토카 코리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격려, 그리고 충고도 잊지 마시길. 고맙습니다.

월간 오토카 코리아 2008.2월호(창간호) 편집장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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