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전략과 철학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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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전략과 철학의 부재
  • 최주식
  • 승인 2008.04.21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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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웬만한 차의 계기판을 보면 바깥온도를 나타내는 표시가 있지요. 그날의 날씨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울 때 유용하게 쓰이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지난 몇 주 사이 이 온도표시가 많이 오른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루하루 무감하다가 어느새 계절이 바뀐 것을 차 안에서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특히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게 되면 바깥바람을 쏘일 기회가 그만큼 적어집니다. 하늘이 푸른 날, 한번쯤 차를 두고 걸어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는 게 어떨까요? 

최근 나오는 자동차를 보면 지나치리만치 전자장비가 넘쳐납니다. 워낙 기능들이 많아서 매뉴얼을 보기도 머리가 아픈데요, 쓰지도 못할 기능들 때문에 괜히 차 값만 비싸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별다른 기능 없이 순수하게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차를 만나면 반가워지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어떻든 우리 일상생활에서 전자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도 그중 하나인데, 점점 여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생각하는 운전’이랑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어쩌다 한 번 길을 놓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도무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아는 길이라 생각하고 가다가, 겨우 차를 세우고 글로브 박스 속에 넣어둔 내비게이션을 꺼내 달고서야 행선지를 찾아가는 일이 있었지요. 역설적이지만 내비게이션 탓을 하면서도 또 그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번 4월호는 제네바 모터쇼에서 날아온 자동차업계의 봄소식들이 프론트를 장식합니다. 사브의 소형차 9-1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컨셉트카부터 현대 i30을 기반으로 한 7인승 MPV, 인피니티 FX50, 란치아 델타, 토요타 iQ 그리고 여전한 스파이커 C8, 코닉세그 CCX, 알파 8C 스파이더 등 슈퍼카 소식도 만날 수 있습니다. 모터쇼에서 관심을 끄는 또 하나는 각 브랜드 CEO들의 코멘트 한마디에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의 실체에 좀 더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죠. 르노닛산 CEO 카를로스 곤은 크라이슬러 인수를 부인하면서 같이 늪에 빠질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한국 브랜드의 CEO들은 세계적인 모터쇼에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번 로드 테스트는 현대 i10이 주인공입니다. 우선 i30의 동생이라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데, 그만큼 i30이 유럽 시장에서 이룬 성과가 커 보입니다. 최근 화제의 국산차, 현대 제네시스와 쌍용 체어맨 W를 타보았습니다. 향상된 동력성능만큼 보디워크를 조율한 솜씨가 한 단계 성숙해진 차 만들기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적인 주행이라면 뛰어난 성능이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에서 신선한 인상을 주지 못한데다 고급 오디오 등 지나치게 비싼 편의장비, 옵션을 선택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차 값 등은 그러한 기술적 성과들을 반감시키는 듯 했습니다. 어차피 장사이긴 하지만 이제는 차 만들기의 철학을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현대 제네시스가 미국 시장에서 어떻게 마케팅을 할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토요타의 렉서스 브랜드처럼 현대도 고급 브랜드를 만든다는 전략은 오랫동안 표류해왔지요. 만약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제네시스가 좋은 전기가 되었을 텐데요. 이번에도 역시 10년 이상 장기무상보증수리기간을 무기로 내세우는 전략인가요? 

월간 오토카 코리아 2008.4월호 편집장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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