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백석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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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백석을 읽으며
  • 최주식
  • 승인 2009.01.0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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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시인 백석의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라는 시다. 살갗을 에는 찬바람보다 마음이 더 춥다고 하는 이 겨울, 백석의 시를 읽고 있으면 따뜻한 것이 올라온다. 특히 이 시는 왠지 모르게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어떤 풍경이 떠오르며 슬며시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진다. 1930년대에 이렇게 모던하고 경쾌한 시를 썼다는 게 놀랍다. 백석의 시편들을 보고 있으려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처럼 마음을 추스리게 된다. 이 구절이 나오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란 시는 이 겨울을 나는데 힘이 될 것이다.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는 또 어떤가. ‘…이 흰 바람벽엔 /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시인 안도현이 백석의 영향을 얼마나 크게 받았나를 눈치 챌 수 있다.  

어느새 2009년 1월호를 마감했다(물론 지금은 아직 2008년의 끝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이번호의 커버스토리는 BMW의 5세대 7시리즈. 국내에서는 740Li를 시승했고, 영국에서 750Li의 시승기가 날아왔다. 그리고 디젤 모델 730d와 라이벌 벤츠 S320 CDI와의 트윈 테스트도 준비되어 특집판이 되었다. 그리고 표지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았을 것이다. 생뚱맞게 웬 비행기냐고? 놀라지 마시라. 이번호 로드 테스트의 주인공이다. 4천888회에 이르는 전통의 로드 테스트 방식 그대로 대륙간 여객기 에어버스 A380을 테스트했다. 스포츠카들이 흔히 비유하는 진정한 콕핏의 정체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여객기의 비밀들이 드러난다. 기대해도 좋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2009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짜릿한 새 모델들이 시장에 나온다. 그 89개 뉴 모델에 대한 정보를 <오토카>가 독점 공개했다. 이번호의 스페셜 이슈다. 그 속에는 자동차업계 CEO들과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의 2009년 전망도 담겨있으므로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고 분석 코너에서는 1989년 포드가 재규어를 사들인 때로부터 지금까지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의 인수 합병과 결별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보고 있으면, 그럴 줄은 몰랐겠지만 일단 사들였다가 다시 내다파는 그 과정에서 진지한 성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위기에 내몰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모두가 위기를 말하는 이때, 혁명적인 아이디어로 관심을 모으는 인물이 있다. 지난 12월호 표지에도 모습을 드러낸 고든 머레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F1 머신 디자이너로 꼽히는 그는 슈퍼카 맥라렌 F1의 아버지. 그러나 그가 구상하는 자동차는 1개 차선에 두 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초소형차. 한층 가볍고 작지만 성능은 F1 머신에 못지않은(?) 시티카. 이번호에 그 디테일한 구상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과연 침체된 자동차계에 활력을 넣어줄 수 있을 것인가? 

Happy New Year! 

월간 오토카 코리아 2009.1월호 편집장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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