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속으로 사라진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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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속으로 사라진 대우
  • 최주식
  • 승인 2011.03.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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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가 ‘과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특히 그 존재가 영광스럽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 서기 68년 네로의 죽음 이후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등 단명에 스러져간 로마 황제들이 그랬듯이. GM대우도 이제 빠르게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GM대우의 소형차 ‘젠트라’의 후속모델로 선보인 ‘쉐보레 아베오’에게 누구도 젠트라의 기억을 묻지 않는다. 프론트 그릴 사이에 선명하게 자리한 쉐보레 엠블럼, 금빛 나비넥타이들의 물결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우리 도로에 스며들고 있다. 

쉐보레 신차 시승회에 참가했을 때 그 금빛 나비넥타이들의 꽁무니를 쫓아가며 든 생각 하나는 “이제 쉐보레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하는 것이었다. 비교적 저렴한 값으로 수입차를 탄다는 기분이 들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한국GM이 노리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은 GM대우가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한데 대해 “한국 소비자들은 GM대우차를 구입하고 쉐보레 엠블럼을 따로 돈을 주고 구입해 단다”는 것을 그 이유중 하나로 들었기 때문이다. 일부의 사례를 확대한 것이겠지만 왠지 뒷맛은 씁쓸했다. 브랜드란 그것을 내세우고 자랑스러워할 때 그 가치가 빛나는 법. 스스로 지키고 후대에게 물려줄 의지가 없는 브랜드의 장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과거’가 된 ‘대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알기로 대우자동차는 창업 이후 회사의 역사를 기록한 사사(社史)가 없었다. 그리고 끝내 사사를 편찬할 기회조차 마찬가지로 사라지고 말았다. 로얄 프린스, 로얄 XQ, 수퍼 살롱, 르망, 씨에로, 에스페로, 프린스, 티코, 프린스, 브로엄, 아카디아,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마티즈, 매그너스, 레조 등 대우에서 만든 또는 대우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수많은 자동차 모델들은 또 어떤가(거슬러 올라가면 새한 시절의 제미니, 맵시, 맵시나 등도 포함시켜야 하겠지만). 자동차 박물관이 없으니, 대우차의 발자취는 이제 봄이 오면 겨울 산등성이를 덮었던 눈이 녹듯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어디에서건 대우차를 위한 진혼곡은 들리지 않는다. 패자의 기록이라고 모두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사를 중・고등학교 필수 이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논란이 뜨겁다. 그렇다면 그동안은 기본 교과가 아니었다는 말인데, 상식적으로 이게 이상한 일 아닌가. 이상한 일은, 그것이 반복되고 일상화될 때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된다. 요즘 이상하게도 이상한 일이 너무 많다…. 

자동차 역사는, 그것이 이미 100년을 넘은 유럽(최근 메르세데스 벤츠는 125주년을 맞았다)이나 미국의 전유물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모터리제이션의 흐름이나 산업규모 등을 볼 때 우리 자동차 역사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연구해야 할 단계가 아닐까. ‘자동차산업연구소’라는 이름은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봤지만 ‘자동차역사연구소’는 아직 없는 듯하다. 말이 나온 김에 ‘한국자동차역사연구소’의 발족을 제안해본다. 여기에는 물론 세계자동차역사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역학관계를 통해 오늘과 어제의 우리 자동차를 이해하고, 그것이 내일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아무도 울어주지 않는 ‘대우자동차의 죽음’을 보며 든 ‘이상한’ 생각이다. 그런데 세계 5대 자동차회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현대기아자동차에도 아직 자동차 박물관이 없다. 참 이상한 일이다. 

월간 오토카 코리아 2011.3월호 편집장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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