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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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관점
  • 최주식
  • 승인 2019.06.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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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에 갔다. 신차 프리뷰 등 행사로 가끔 갈 때도 있지만 개발 연구진과의 좌담회 자리는 거의 20년 만이다. 그러니까 90년대 중후반에는 거의 한 두 달에 한 번 꼴로 갈 정도로 자주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신차가 나오면 신차특집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개발 스토리는 필수적인 아이템이었다. 요즘처럼 차종이 많지 않던 시절이다. 그러다보니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인터뷰 또는 분야별 개발 담당자들과 좌담회 형식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내가 속했던 매거진 단독으로 진행되었기에 질문이 섞이지 않았고 집중할 수 있었다. 엔지니어들은 별다른 제약 없이 개발 과정의 깊숙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명함을 주고받았고 나중에 기술적으로 궁금한 부분을 전화로 물으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마북리 기술연구소도 종종 찾았다. 거기서 티뷰론 수소연료전지 프로토타입을 직접 운전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티뷰론의 뒤 트렁크에 커다란 수소저장탱크를 실었는데 그 탱크가 너무 커서 놀랐다. 살짝 불안했는지도 모르겠다. 왜 하필 티뷰론이었는지 의아하지만 실험과 도전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지금 양산차로 나오고 있는 넥쏘를 보면 높은 완성도에 놀라게 된다. 당시에는 앞으로 20년이 지나도 양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 평창 동계올림픽 무렵, 넥쏘를 시승하면서 묘한 감정을 느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 대중화로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넥쏘는 그 자체로 훌륭한 자질을 갖춘, 일상에서나 장거리에서나 편안한 수소연료전지차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호에도 소개되지만 넥쏘는 2019 오토카 어워드에서 게임 체인저 상을 수상했다. 테슬라 모델 S가 배터리 전기차를 위해 한 일을 수소연료전지에 적용하는데 성공했다는 게 수상 이유다. 충전 시간이 5분 이내에 불과하고 1회 충전 항속거리가 609km로 가장 길다. 좁은 티뷰론 트렁크 가득 커다란 탱크를 실고 테스트를 거듭했던 연구원들의 노력이 맺은 결실일 것이다.

기억은 꼬리를 문다. 울산공장에도 자주 갔었다. 어떤 경우에는 공장에서 갓 나온 시승차를 받아 남해 방향으로 시승을 떠나기도 했다. 아마 아반떼 린번 엔진 모델이었을 것이다. 연비 테스트를 위해 새벽까지 비오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스타렉스로 울산공장 한 구역의 테스트 트랙을 달렸던 기억도 새롭다. 기아차가 분리돼 있던 시절 소하리공장에서 시승차를 수령하기 위해 한참을 기다리던 일이며 록스타를 시승하기 위해 아시아자동차 광주공장을 찾았던 일도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니 좋았다는 시절의 기억이란 으레 그렇듯 오래 가지 않았다. 국내 자동차업계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연구소의 벽은 높아져만 갔다. 오랜만에 남양의 범용시험장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양한 크기와 세그먼트의 프로토타입이 위장막을 씌운 채 테스트에 한창인 모습이다. 분주해 보이지만 늘 반복되는 일상의 풍경에 다름 아니다. 과거와 다른 풍경이라면 주행시험장 주변을 둘러싼 나무들의 키가 많이 자랐고 잎이 무성해졌다는 것. 더불어 개발 중인 시작차들의 가짓수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는 것. 제네시스에 이어 고성능 N 버전, 전동화 모델까지 라인업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이 엄청 복잡해지고 많아진 셈이다. 

기억과 변화는 상대적인 것. 가령, 어쩌면 내게 남양의 기억은 초대 그랜저 XG의 스티어링 휠을 잡고 고속주회로의 뱅크를 달리던 그때에 머물러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20년 만에 재개된 연구 개발진 좌담회 형식에 참석하면서 든 복잡다단한 생각의 한 편린일 뿐이다. 어떤 변화의 시작점이 될 지는 아직 알 도리가 없다.

 

월간 오토카 코리아 2019.6월호 편집장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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