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스 F1 팀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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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스 F1 팀의 부활
  • 스티브 크로플리
  • 승인 2015.01.2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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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스는 F1에서 성적을 회복함과 동시에 엔지니어링 비즈니스의 주역이 되었다. 신임 회장인 클레어 윌리엄스와 함께 이 극적인 반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팀의 부대표인 클레어 윌리엄스를 만나, 윌리엄스 F1 팀이 이번 시즌에 어떻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윌리엄스 F1 빌딩에 찾아갔다. 우리가 처음 마주친 사람은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창립자인 프랭크 경이었다.
 

데스크 직원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 앞에, 그 유명한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그는 집무실로 올라가기 위해 승강기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행이었던 홀레트와 나는 이전에도 그를 만나본 적이 있었지만, 그만의 날카로운 눈빛과 직접적인 화법, 비범한 카리스마 앞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실제로 마주치면 놀랄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는 활기찬 말투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리가 윌리엄스를 방문한 이유를 설명하자, 그는 우리를 안내해줄 직원이 있는지 확인한 후, 성공적인 인터뷰가 되길 바란다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면서 비서와 함께 승강기를 타고 사라졌다.

2012년에 윌리엄스의 이사회에서 스스로 물러난 프랭크 경이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질문하려던 내게, 그는 그 대답을 몸소 보여준 것이었다. 답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그는 윌리엄스의 기조를 세운 창립자이자 그 열정을 지키는 수장으로서 그 역할을 계속하고 있던 것이다. 이후에 클레어 윌리엄스가 우리에게 말해준 것처럼, 그는 그 자체로 거대하고 영원한 윌리엄스의 보석과 같은 존재였다.
 

나를 포함한 두 명의 기자와 한 명의 사진기자로 이루어진 우리 일행은 위층으로 올라가서 긴 복도를 지나, 직사각형의 테이블이 놓인 흰색 회의실로 들어가서 클레어 윌리엄스를 기다렸다.

1~2분 후, 클레어 윌리엄스가 그룹 CEO인 마이크 오드리스콜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왔다. 재규어의 경영진으로서 명성을 떨쳤던 마이크는 이제 클레어와 함께 F1 팀과 신설 엔지니어링 부문을 포함한 전체적인 윌리엄스 그룹의 운영을 맡고 있다. 서로 반갑게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나는 형식적인 인터뷰의 지루함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다. 지난 18개월 동안 여러 신문사들과의 인터뷰를 경험한 클레어는, 여자로서 F1 팀을 운영하는 것이 어떠하냐는 식의 고루하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또다시 받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질문은 하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인터뷰는 한 소녀의 특별한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두 명의 형제들과 함께 자란 어린 소녀는 레이싱에 평생을 바친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86년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해 프랭크 경은 목숨까지 잃을 뻔했고, 현재까지도 휠체어에 의지해야할 만큼 큰 부상을 입었으며, 클레어 역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열 살이었던 클레어는 ‘강인함과 인내심’을 갖춘 그녀의 훌륭한 어머니, 버지니아 부인 덕분에, 헝거포드 근교의 윌트셔 지역에 위치했던 그녀의 가정이 ‘비교적 안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했었다고 회상한다. F1 팀을 가까이서 경험하고, 방학 기간에는 F1 팀에서 일하기도 했던 어린 시절은 굉장히 즐거웠다. 하지만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F1 팀에서 공식적인 직업을 갖게 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그에 대한 불만도 없었고,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다. 스스로 나의 직업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평범한 학생으로서 학창 시절을 보낸 후, 정치학에 흥미를 느껴 뉴캐슬대학교에서 전공으로 공부하기도 했지만, 이에 대해 그녀는 그때까지 특별한 진로를 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전형적인 코스였다고 설명했다. 1999년에 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녀는 실버스톤 홍보 담당자로 3년간 근무했지만 2002년에 정리해고 됐고, 이후 다시 윌리엄스로 돌아온 그녀는 팀 내의 비공식적인 잡무를 맡아 처리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성공적인 F1 팀의 신인 감독과는 왠지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20대 후반부터 클레어의 진로를 확실하게 정해주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 순간마다 동기를 부여받았다고 회상했는데, 윌리엄스가 BMW 엔진으로 출전하여 네 번의 우승밖에 거두지 못했던 2003년 시즌이 잠자고 있던 그녀의 승부욕을 깨웠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슈퍼마켓에서는 항상 제일 먼저 계산대로 달려가곤 한다.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았던 당시에는 내가 책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다. 윌리엄스도 티렐처럼 곧 F1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소리가 너무나도 듣기 싫었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윌리엄스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팀들 중 하나로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부모님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는지 어렸을 때부터 줄곧 지켜봐왔기 때문에, 그분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 같다.”

클레어의 ‘전성기’는 2010년, 마케팅 책임자인 짐 라이트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그는 당시 팀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가 사임했으니 그 일을 클레어가 맡아주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버지와 미리 상의한 일인지 물었더니 아직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께 말씀드리면 안 된다고 하실 게 분명하다고 했고, 실제로 아버지는 짐과의 통화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짐은 아버지를 설득시킬 자신이 있다고 했고, 이 주 정도 후에 설득에 성공했다.”
 

이렇게 시작된 클레어의 업무는 팀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던 그녀에겐 굉장히 수월했다. 그러나 그녀의 경력이 시작되면서 팀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위기를 맞고 있었다. 2011년에 그녀가 마케팅 책임자가 되었을 때, 팀은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에서 9위라는 낮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윌리엄스가 프랑크푸르트 주식 시장에 상장되고, 클레어가 가족 대표로서 프랭크 경을 대신하여 이사회에 이름을 올린 2012년, 윌리엄스 팀은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파스토르 말도나도가 뜻밖의 우승을 거두며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8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렇듯 연이은 위기 중에서도 가장 위태로웠던 시기는 클레어가 팀의 부대표이자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및 여타 홍보 업무의 책임자로 위임됐던 2013 시즌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처참했다. 몇 해 전부터 우리는 인재들을 영입하여 팀의 기량을 향상시키려 노력해왔다. 600명 이상의 인원으로 이루어진 팀을 한 가지 목표로만 이끌어 나간다면, 결코 팀의 발전을 이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쓰라린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2013년부터 그룹 전체의 개혁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회의 몇 번으로 변화가 즉각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3~4개월 즈음에는 현재까지도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여러 계획들이 완성됐다. 향상된 기량을 선보여주길 기대했던 2013년 머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지난 시즌의 첫 경기였던 호주 그랑프리 때부터 깨달았는데, 아직 18번의 힘든 레이스가 남아 있고, 2014년까지는 확실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인 팀원들에게 가족을 떠나 1년 내내 레이스에만 집중하도록 요구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그 시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좌절감이었다.”
 

클레어의 말에 따르면 문제의 핵심은 기술적인 리더십이었다. 팀 내에는 언제나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낸 유능한 인재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운영 체제였다.

“수장인 프랭크와 패트릭 헤드를 중심으로 기술 감독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던 수직적인 기존의 운영 방식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팻 시몬즈를 기술책임자로 임명했고, 그를 중심으로 각 부서를 지휘할 수 있는 대표를 임명하여 운영 방식을 개편했다.”

혁신적인 또 다른 결정은 2014년부터 엔진 공급 업체를 르노에서 메르세데스로 변경한 것이었다. 현재로서는 명백히 당연한 판단이었다고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힘든 결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르노는 윌리엄스와 오래전부터 성공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던 데다, 그 결정을 내린 시점이 세 번의 우승을 거둔 르노에 비해 메르세데스가 열세 번의 우승을 기록하면서 그 우월함을 만천하에 확실히 증명한 시기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윌리엄스는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에서 3위에 올라 있고, 시즌 중반의 오스트리아 경기에서 발테리 보타스가 첫 포디엄을 선사한 이후로 다섯 배가 넘는 포디엄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그로브의 팀 본부에서는 팀원들이 다시금 미소를 되찾았지만, 이제 팀의 발전을 위해 훨씬 더 중요한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클레어는 “지난 시즌에는 누군가가 타이어 워머를 잘못 씌워서 피트스톱에서 2초 정도를 지체했다고 해도 팀 성적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고 이미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30분 정도였던 인터뷰에서 윌리엄스의 부활이라는 이 중대한 사안을 신임 감독답지 않게 사실에만 입각하여 침착한 어조로 설명해준 클레어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아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당신을 두렵게 하지는 않는가? 아무리 환상적으로 모든 일을 잘 처리해도 여전히 실패 가능성이 존재하는 F1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그녀는 나의 이런 질문에 윌리엄스의 신조를 인용해 대답했다.

“나는 항상 레이스 팀이 오케스트라와 같다고 생각한다. 재능과 리더십을 갖춘 팀원들이 협력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F1의 기술을 판매하다
F1의 기술들을 더 넓은 엔지니어링 및 에너지 시장으로 전파하기 위하여 그로브에 신설된 지사, 윌리엄스 어드밴스드 엔지니어링(WAE)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그들의 사업이 모터 레이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150명의 엔지니어가 소속된 WAE가 처음 그로브에 세워질 때, 그 목적은 재규어 C-X75 하이브리드 슈퍼카의 한정 생산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중단된 이후, 운영진은 이 기술팀을 그대로 두고, 다른 프로젝트에 배치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애스턴 마틴의 유명한 엔지니어이자, TWR과 HSV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매니징 디렉터, 크레이그 윌슨은 초창기인 1월부터 그로브에서 이 사업을 구축해왔다. 그는 WAE가 이미 에너지 저장 시장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마이크로그리드를 위한 대형 플라이휠 기반장치를 개발 중에 있어, 소문을 들은 신규 고객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대부분 기밀 사항이지만, 경량화, 복합소재, 공기역학, 전화(電化) 관련 군용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에 있다. 또, 유명 접이식 자전거 회사의 전기 추진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맡고 있다. 윌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수익을 냈다. 사업은 활발히 확장되고 있으며, 부수적인 소득도 있다. 우리의 폭넓은 활동은 산업의 동향을 파악하기 쉬워, F1 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윌리엄스 F1 팀 부활의 주역, 팻 시몬즈
지난 10년간, 윌리엄스 F1 팀은 경쟁력에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팻 시몬즈이다. 그는 팀의 기술책임자로 임명되어 문제 해결의 상당부분에 관여했다.

작년, 그가 그로브에 도착할 때까지 팀은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에서 9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지금은 3위이며,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몬즈는 “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팀을 관찰했을 때, 팀에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팀에 합류하고 보니 문제는 시설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윈드 터널은 10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훌륭하다. 핵심 기술들도 1급이다. 하지만 IT시스템은 구식이었고, 업무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엔지니어들은 노력과 성과를 혼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부품을 수없이 만들어내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다시 옛날 부품을 사용하곤 했다.”

 

시몬즈는 간소화를 선호하면서도, 자동차 개발 단계에서의 엔지니어링은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이 차에 이익이 되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올해 초, 호주로 떠나면서 우리는 단순히 머신을 빠르게 만드는 부품들만을 장착했다. 그건 예전부터 지켜온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의 성장률이 다른 어느 팀보다 높았다. 우리는 이를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기술책임자가 뚜렷한 목표를 가지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시몬즈는 다르다. 그의 말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2016년 챔피언십에서 강력한 우승후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2015년이 그 리허설이 되기를 원한다. 두 시즌 모두를 위해 각각 새 머신을 준비할 것이며, 그때까지 몇 번의 우승을 추가하길 원한다. 여기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승리를 갈망한다. 2인자는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F1에서 33년을 보내면서, 이겼던 경기는 전부 기억하지 못하지만, 진 경기는 전부 기억하고 있다.”

글 · 스티브 크로플리 (Steve Cropley)
사진 · 스탠 파피오르 (Stan Pap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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