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뒷좌석에 앉으시면 어머니의 입에서는 주변을 달리는 다른 차들의 주행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교통흐름을 따르지 못하는 차들에 대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거칠고 난폭하게 운전하는, 정석대로 운전하지 않는 차들에 대한 불평이다. “저 차는 도대체 깜빡이를 켤 줄을 모르는구나” “뭐가 급하다고 저렇게 쏜살같이 달리나 몰라. 죽으려고 환장을 했지” 대개 이런 식이다.
이런 얘기들과 함께 자주 하시는 말씀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좋은 차를 타면 좀 점잖게 몰아야지. 차가 아깝다” 난폭운전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하지만 비판의 화살이 향하는 목표와 방식은 분명히 다르다. 이런 말씀의 밑바탕에는 ‘좋은 차는 차의 격에 맞게 몰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어머니 기준의 ‘좋은 차’는 준대형급 이상의 국산 세단이나 수입 세단이다. 즉, 비싼 차가 좋은 차다. 넓게 보면 어머니의 말씀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적인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싼 차, 즉 좋은 차를 타는 사람이라면 남들 보기에도 모범이 되는 운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주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국산 대형차나 수입차를 탈 수 있는 사람이 소수의 특권층으로 한정되었던 시기에는 그런 생각이 옳았다. 하지만 지난 20여년 사이에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이미 국산차와 수입차의 가격대 차이는 이전만큼 뚜렷하지 않다. 또한 국산차를 살 수 있으면서도 수입차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경제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수입차를 구입해 유지할 수 있지만, 경제력이 사회적 지위와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평범한 사람도 돈만 있으면 국산 대형차나 수입차를 사서 굴릴 수 있는 것이 요즘의 자동차 시장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차는 차일 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이댈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와 차를 모는 사람은 다르기 때문이다. 무슨 차를 타든, 중요한 것은 일반도로 위에서 남들에게 욕먹을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글 · 류청희(자동차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