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버린 푸조, 뉴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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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버린 푸조, 뉴 508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5.01.1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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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적으로 바뀐 디자인이 전부라 생각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주행 질감이 마치 후속 모델인 듯 큰 차이가 났다. 푸조의 방향이 송두리째 바뀌는 순간이다

요즘 모델의 페이스리프트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보기는 힘들다. 모델 생명 주기가 늘어나고, 전 모델을 관통하는 브랜드 디자인 언어가 중요해진 지금은 섣부른 변화보다는 기존 모델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만들기 마련이다.

허나 푸조 508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뉴 508’은 달랐다. 전면부 디자인을 완전히 바꾼 것도 모자라 주행감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새로움을 뜻하는 ‘뉴’(New)라는 영단어가 어울리는 모양새다.
 

직선을 살려 날카로운 존재감을 살린 앞부분 디자인은 올해 베이징모터쇼에서 선보였던 콘셉트 ‘이그졸트’(Exalt)의 모습이 묻어난다. 이그졸트는 2012년 선보였었던 오닉스 콘셉트를 더욱 양산차에 가까운 형태로 다듬은 콘셉트였다. 508의 디자인이 결정된 상태에서 이그졸트를 내놓고 시장 분위기를 살폈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뀐다. 이그졸트의 멋진 자태를 그대로 담아낼 차는 기함인 508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디자인의 헤드램프는 LED 방식이다. 네모난 램프의 디자인과 밝기 모두 마음에 든다. 다만 완전히 LED를 적용하긴 했지만 규격까지 적은 디자인 센스는 약간 마음에 걸린다. 좋은 것을 달아도 자연스럽게 꾸며야 하는 법. 허나 풀 LED를 장착한 자신들이 대견했나보다. 자랑하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508이 푸조의 기함치고는 작단 생각이 들지 모른다. 단단히 응축된 디자인에 착각할지 모른다. 허나 길이 4,830mm, 너비 1,830mm, 높이 1,480mm, 휠베이스 2,815mm다. 실용적인 크기라는 생각이다. 작은 차를 주로 타고, 합리적인 차를 높게 평가하는 유럽, 프랑스의 기준에서는 충분할 것이다. 큰 차가 아니면 뒷좌석 공간이 부족할 것 같다는 편견은 접어도 좋겠다. 앞좌석을 여유롭게 잡아도 뒷좌석 다리 공간은 적당히 여유로웠다. 그리고 머리 공간을 살린 설계로 키 180cm 성인 남성이 정자세로 앉아도 편안했다.
 

실내의 변화는 크지 않다. 가로로 쭉 뻗은 대시보드와 사용할 기능만 몰아놓은 간결한 구성이다. 기본적인 레이아웃을 유지하되 내비게이션 모니터를 센터페시아 제일 위에 달았다. 기존 모델의 경우 센터페시아 가운데에 모니터를 달아 시선을 뺏는 일이 많았다. 이제 시인성을 더 확보한 셈이다. 눌러서 펼쳐 쓰는 컵홀더도 그대로다. 큰 컵을 끼웠을 때 모니터가 살짝 가려지는 때가 있다. HUD 역할을 대신하는 대시보드 위의 조그만 속도계는 시인성이 좋지만 추가 기능은 없다.
 

뒷좌석으로 옮겨 가보면 특별한 편의장비를 찾아볼 수 없다. 오디오를 조절할 인터페이스 기능도 없다. 하지만 4자리 모두 각각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에어컨과 수동으로 당겨쓰는 차양막을 달았다. 이 차의 존재가치가 명확해진다. 합리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이 중에서도, 조금 더 고급스럽고 편안한 차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다. 사치스럽지 않되,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능을 합리적으로 단 모양새다.
 

엔진 라인업도 그렇다. 직렬 4기통 1.6L 디젤 엔진과 2.0L 디젤 엔진의 두 가지 조합을 갖췄다. 1.6L 엔진의 경우 최고출력은 112마력에 불과하지만, 공차중량이 1,420kg로 적당해 가볍게 달려 나간다. 국내 사양에서는 에코와 악티브에 적용되는 엔진이다. 시승차인 알뤼르는 직렬 4기통 2.0L 디젤 엔진을 단다. 최고 동급의 모델에만 2.0L 엔진을 달아준 셈이다. 가벼운 싱글 클러치 자동변속기 대신 전통적인 토크 컨버터방식의 자동변속기를 달며 공차중량은 1,550kg로 늘어났지만, 넉넉한 출력으로 여유롭게 달린다.

2.0L 엔진의 최고출력은 163마력으로 3,750rpm에서, 최대토크는 34.6kg·m으로 2,000rpm에서 나온다. 변속기는 자동 6단이다. 앞서 이야기한 1.6L 엔진 모델과 주행 질감 차이가 크다. 연비는 1.6L 디젤과 MCP의 조합이 앞서지만, 넉넉한 힘을 내는 2.0L 엔진과 자동변속기의 조합은 더욱 여유롭다. 공인연비는 복합 14.8km/L에 고속도로 18.4km/L지만, 고속주행에서는 공인연비를 크게 넘어선다.
 

엔진은 넉넉한 힘을 내지만, 가속감은 약간 느긋하다. 연비를 중시한 기어비 덕분이다. 각 단의 범위가 넓게 느껴졌다. 시속 110km를 유지할 때 엔진회전수는 약 1,750rpm이다. 회전 질감 또한 기존과 달랐다. 길들이기조차 겪지 않은 신차이기에 달리 느꼈을 수도 있지만, 초반에 두툼한 토크를 내는 것보다는, 토크를 유지하며 균일하게 회전수를 올리는 쪽이다.

수동 모드로 바꿔 엔진회전수를 조절하며 적극적으로 주행에 나섰다. 최대 4,500rpm까지 회전하는 엔진이지만, 토크를 끌어내며 탄력적인 달리기를 즐기려면 엔진회전수를 중간 대역으로 유지하며 달리는 것이 좋다. 고회전으로 넘어갈수록 힘이 빠지는데, 4,000rpm을 넘겼을 때 그런 성향이 강했다.
 

제동성능 또한 적당한 편이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힘에 따라 제동력을 천천히 키워나간다.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쥐어짜듯 밟아도 빠르게 속도를 줄인다. 미끄러트려 볼 심산으로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니, ABS가 개입해 더 빠르게 차를 붙들어 세운다. 빠르게 멈춰서니 비상등이 자동으로 점멸하는데, 제동이 더 급박해질수록 점멸 간격도 더 빨라진다. 긴장할 때 더 빨리 뛰는 심장과 같은 모습이랄까.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변해버린 주행 질감이다. 이전의 508은 물렁이는 서스펜션으로 코너를 돌아나가는 맛이 있었다. 서스펜션은 위아래로 낭창거릴지언정, 코너를 돌아나갈 때면 차체를 숙이며 타이어를 노면에 꾹 눌러댔다. 적극적으로 코너를 기울여가며 달릴 때면, 단단한 승차감을 자랑하는 차들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탄력적인 움직임이 매력적이었다. 익숙해질수록 코너를 잘라먹는 맛이 있었다. 단단함과 유연함 사이에서 오묘한 균형을 찾은 느낌이었다. 유연하다 못해 헐겁게 느껴지는 서스펜션과는 차원이 달랐다.
 

허나 508 페이스리프트는 새로운 서스펜션 세팅을 택했다. 단순한 페이스리프트가 아닌 이유다. 승차감과 핸들링 모두 묵직해졌다.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서스펜션의 상하 움직임이 줄었고, 움직임 또한 빡빡해졌다. 더 이상 코너를 돌 때 기울이며 돌지 않는다. 속도를 높여 고속으로 달릴 때도 차분해졌다. 하지만 푸조 특유의 감각은 남아 있다. 단단하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살짝 떠 있는 느낌이 든다. 노면의 충격을 받아 부드럽게 걸러낸다. 새롭게 바뀐 서스펜션 세팅은 기존의 드라마틱한 느낌이 줄었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을 것이다.

기존의 특징을 지워야 할 정도로 푸조는 간절한가? PSA는 상위 시장을 향해 도약을 준비 중이다. 2012년 2월에는 세계 최초로 디젤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적용해, 이를 기반으로 인기를 끌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푸조 508 페이스리프트는 국내에는 들여오지 않았지만, 하이브리드 모델도 추가했다. 앞바퀴를 엔진으로, 뒷바퀴를 모터로 굴리는 네바퀴굴림 구동계다. 리어 액슬에 모터를 싣기 위해 구조 또한 크게 바꿨다. 그 영향 또한 컸다고 본다.
 

508은 분명 매력적인 차다. 가격을 비교한다면 에코 3천990만원, 악티브 4천190만원, 알뤼르가 4천490만원이다. 왜건형 모델인 508 SW도 있다. 악티브가 4천290만원, 알뤼르가 4천690만원이다. 세단 모델과 왜건 모델의 기술 제원은 같다. 대부분의 편의장비를 기본으로 달았기에 편의장비 차이도 크지 않다. 세단과 왜건의 가격 차이만큼 파노라마 루프를 달아주고, 블라인드 스팟 모니터를 기본으로 달아주는 정도다.

508과 비슷한 가격의 차들을 살펴보면 프리미엄 브랜드의 콤팩트 모델들과, 폭스바겐 파사트, 볼보 S60이 있다. 프리미엄 콤팩트에 비해서는 합리적인 부분에서 우위를 점하지만, 폭스바겐과 볼보와는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다. 여기서 푸조는 성능과 효율성 좋은 디젤 엔진으로 승부를 건다. 단단해진 주행감각은 독일 라이벌들과 비교할 정도다.
 

가치를 비교해보면 508 알뤼르와 508 SW 악티브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508 알뤼르에만 달리는 LED 헤드램프와 여유롭고 편안한 주행감각은 분명 한 수 앞선다. 하지만 508 SW 악티브는 연비 좋은 1.6L 디젤 엔진과 수동 감각이 살아 있는 MCP 변속기의 조합, 왜건이라는 특별한 조건을 갖췄다. 파노라마 루프도 단다. 그리고 가격이 더 싸다. 편안함과 실속 사이의 고민이다.

508 페이스리프트는 분명 한결 나아진 차다. 아쉬운 부분을 보완했고, 새로운 주행감각을 입혔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것이다. 하지만 푸조만의 고유한 감각이 흐릿해진 부분도 있다. 이제 지켜볼 것은 새로운 푸조 감각이 앞으로도 쭉 이어지느냐다. 전통주의자의 눈에서 본다면 좋아하던 부분이 사라진 것이 아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개선을 향한 진보는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새로운 방향을 찾은 푸조가 꾸준히 발전하길 바랄 뿐이다.

글 · 안민희 에디터
사진 · 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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