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입 R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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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입 R의 귀환
  • 임재현
  • 승인 2014.11.2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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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을 향한 혼다의 정열을 담은 ‘타입 R’(Type R)이 4년간의 공백을 깨고 돌아왔다

“F1이 무엇입니까?” 1962년 5월, 당시 혼다기연공업 주식회사(혼다자동차의 정식 명칭) 기술연구소장 쿠도 요시히토에게서 F1 프로젝트를 맡아달라는 지시를 받은 사이타마 공장 품질책임자 스기우라 히데오의 첫마디였다. 쿠도가 대답했다. “나도 모른다네.”
 

▲ 혼다자동차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1906~1991년)

1948년 혼다자동차를 설립한 혼다 소이치로는 혼다 제품의 시험대이자 홍보무대로 일찌감치 모터스포츠에 주목했다. 그러나 일본 내 기반시설은 서구에 비해 크게 낙후돼 있었다. 그는 직접 서킷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1959년 부지를 매입했다. 네덜란드의 유명 서킷 디자이너 존 후겐홀츠(John Hugenholtz)에게 설계를 의뢰해 1961년 공사를 시작한 혼다의 서킷은 이듬해 완공됐다. 일본 미에현(県) 스즈카시(市)에 위치한 스즈카 서킷(Suzuka Circuit)이다.

1962년 9월에 개장한 스즈카 서킷은 일본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국제 규격 서킷이며, 일본 모터스포츠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입체교차로를 갖춘 8자 형태의 레이아웃이 특징이며, 현재 F1 일본 그랑프리를 비롯해 슈퍼GT, WTCC 등 수많은 경기가 열리고 있다.
 

▲ 혼다 최초의 승용차 S500(1963년)

1962년 자동차산업 진출 당시 혼다는 세계 최대 모터사이클 제조사였지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후발업체에 불과했다. 혼다 소이치로는 토요타, 닛산과 경쟁을 펼치기 위해서는 기술이 아니면 승부를 걸 수 없다고 판단했고, 기술력을 검증받기 위한 무대로 F1을 선택했다.
 

▲ 혼다에 F1 첫 우승 안긴 RA 272(1965년)

F1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년 만인 1964년, 혼다는 RA 271로 독일 그랑프리에 첫 출전하며 일본 업체 최초로 F1 무대에 데뷔했고, 이듬해 시즌 마지막 경기인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RA 272로 역사적인 첫 우승을 거뒀다. 출전 1년 만의 쾌거였다.

첫 우승 소감을 묻는 질문에 혼다 소이치로는 “승부의 결과가 목적이 아니라 경주 결과를 분석해 품질을 높이고, 더 안전하고 성능 좋은 자동차를 고객에게 선보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대답했다. 1965년 멕시코 그랑프리와 1967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며 돌풍을 일으킨 혼다는 1968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소속 드라이버 조 슐레서가 경기 도중 사고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F1에서 철수했다.
 

▲ 혼다 RA168E 엔진의 맥라렌 MP4/4(1988년)

혼다가 F1에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83년. 혼다는 1983년 스피리트 팀에 엔진을 공급한 것을 시작으로, 1992년까지 윌리엄스, 로터스, 맥라렌 등에 엔진을 공급했다. 당시 혼다의 엔진은 우승 티켓으로 여겨질 만큼 막강한 성능과 신뢰성을 자랑했다. 혼다 엔진을 쓴 경주차들은 1984년부터 1992년까지 총 69회 우승했다. 특히, 1988년에는 총 16경기 가운데 15경기에서 우승을 가져가며 승률 93.75%를 달성했는데,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혼다는 두 번째 F1 참전을 계기로 “세계에서 통용되는 혼다의 대표모델을 만들자”며 1984년 일본 업체 최초로 슈퍼카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5년 뒤, 1989년 2월 시카고모터쇼에서 2인승 미드십 슈퍼카 NSX를 선보였다.

양산차로는 세계 최초로 올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를 채택하고, 가변식 밸브 타이밍 기구를 적용하는 등 당대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하이테크 슈퍼카였다. 기본가격은 800만 엔(약 7천832만원)으로, 1990년 출시 당시 일본 메이커 승용차 중 가장 비싼 가격이었다.
 

▲ 최초의 타입 R 모델, NSX 타입 R(NA1‧1992년)

1992년 11월 26일, 혼다는 NSX의 성능을 강화한 NSX 타입 R을 선보였다. 혼다 최초의 타입 R 모델이다. R은 레이싱(racing)의 앞 글자로, 타입 R은 문자 그대로 서킷 주행에 특화된 유형임을 암시했다. F1에서 첫 우승을 거둔 RA 272의 차체 색상이 ‘챔피언십 화이트’(Championship White)라는 이름으로 타입 R을 대표하는 이미지 색상이 됐으며, 특별히 빨간 바탕의 혼다 엠블럼이 붙었다.

NSX 타입 R의 엔진은 기본형과 같은 C30A형 V6 3.0L DOHC VTEC 엔진이었지만, 크랭크샤프트의 균형 정밀도와 피스톤과 커넥팅로드의 무게 정밀도를 높였다. 또한, 차음재 및 편의장비를 없애 무게를 120kg 줄이고, 서스펜션 세팅을 새로 했다.
 

   
▲ 인테그라 타입 R(DC2‧1995년)


   
▲ 시빅 타입 R(EK9‧1997년)

엔진 출력을 높이는 대신 공차가 극히 적은 정밀 부품을 사용해 반응성을 향상시키고, 경량화와 섀시 강화에 주력하며, 공력성능을 강화하는 개발 콘셉트는 이후 타입 R의 공식이 됐다. 혼다는 NSX 타입 R 기술을 바탕으로 1995년 인테그라 타입 R, 1997년 시빅 타입 R과 어코드 타입 R을 차례로 선보였다.

모터스포츠에서 갈고닦은 기술을 양산차에 충실히 적용한 결과, 혼다 제품은 차종을 막론하고 스포티한 외관, 뛰어난 엔진, 훌륭한 핸들링, 높은 품질, 합리적인 가격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 흐름은 2005년 NSX의 생산종료를 기점으로 급변하게 된다.

NSX 생산종료에 이어 2006년 4월에는 일본 내 인구 구성 변화에 따른 쿠페형 승용차의 수요 감소를 이유로 인테그라를 단종시켰다. 2008년 12월에는 F1 철수를 선언했고, 2010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던 NSX 후속모델 계획도 세계금융위기로 촉발된 사업 재검토에 의해 백지화됐다. 2009년 2인승 로드스터 S2000이 단종되고, 2010년에는 시빅 타입 R이 단종되면서 혼다 라인업에서 스포츠카가 완전히 사라졌다.

2009년 6월 사장으로 취임한 이토 다카노부는 저탄소 정책을 표명했지만, NSX 후속모델 상품화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NSX의 알루미늄 차체 개발에 참여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NSX 부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2010년 11월, 혼다가 NSX 후속모델 개발에 착수했다는 정보가 흘러나왔다.
 

▲ NSX 콘셉트 Ⅱ(2013년)

혼다는 2011년 12월 차세대 슈퍼스포츠카의 디자인 방향성을 보여주는 콘셉트 카를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공개한다고 발표했고, 2012년 1월 NSX 콘셉트를 선보였다. 그리고 1년 뒤, 두 번째 NSX 콘셉트를 내놓았다. 같은 해 8월 4일 ‘혼다 인디 200’ 결승전이 펼쳐진 미국 미드 오하이오 스포츠카 코스에서 NSX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하고 시범주행을 실시했다.

▲ 시빅 타입 R 콘셉트 Ⅱ

지난 3월에는 오랜 소문 끝에 차세대 시빅 타입 R을 예고하는 콘셉트 카가 전격 공개됐다. 지난 10월 파리모터쇼에는 양산형에 더욱 가까워진 두 번째 시빅 타입 R 콘셉트가 전시됐다.

2015년은 NSX 출시 25주년‧생산종료 10주년이 되는 해다. 혼다는 내년 맥라렌에 엔진을 공급하며 5년 만에 F1 무대에 복귀한다. 지난 10월 8일 외관과 사운드가 공개된 혼다 F1 엔진은 10월 현재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완료하고, 터보차저와 에너지재생시스템을 연결한 벤치 테스트 단계에 있다. 1980년대 후반 맹위를 떨친 맥라렌-혼다의 전설이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 S660 콘셉트 (2013년)

내년에는 차세대 NSX와 시빅 타입 R, 그리고 배기량 660cc 2인승 소형 미드십 로드스터 S660의 출시가 예정돼 있어, 2015년은 혼다 스포츠카 라인업 부활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 혼다의 새로운 고성능 시대 개막을 환영한다.

글 ‧ 임재현 [오토카 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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