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 플라잉 스퍼 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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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 플라잉 스퍼 V8
  • 닉 캐킷
  • 승인 2014.08.2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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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벤틀리가 역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한 해였다. 벤틀리는 2도어 모델인 GT, 4도어인 플라잉 스퍼, 사치스러운 뮬잔으로 구성된 평범한 라인업으로 1만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또한 2018년까지 1만5천대 판매를 기대하고 있다. 벤틀리의 누적 판매가 1만대에 이르기까지 95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낙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큰 기대를 받고 있는 SUV가 2016년에 출시될 예정이기 때문에, 벤틀리가 의도적으로 전망치를 축소했다는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다.

폭스바겐 그룹 스타일에 충실한 벤틀리는 아무것도 운에 맡겨두지 않고 있다. 크루에 있는 벤틀리 본사는 날개 달린 ‘B’ 로고가 붙은 모든 차들이 더 넓은 시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출시된 지 1년 남짓한 플라잉 스퍼를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W12 모델 아랫급으로 내놓기 위해 새롭게 손질했다. 벤틀리는 모델을 추가한 목적이 소비자들에게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지금 판매되고 있는 다른 경쟁차를 고집하는 일부 럭셔리 세단 고객을 유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벤틀리는 플라잉 스퍼가 아직 벤틀리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의 구미에 알맞도록 만들기 위해 12기통 엔진을 8기통으로 바꾸기로 했다. 아우디와 공동 개발한 트윈 터보 V8 엔진에는 엔진 상태가 완벽하다고 판단하면 각 뱅크에 있는 실린더 중 두 개씩 작동을 중단하는 기술이 기본으로 쓰였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4기통이 되기도 한다. 이런 영리한 기술 덕분에 엔트리급 모델의 공인 종합연비가 9.2km/L에 이를 수 있었다.

벤틀리에서 플라잉 스퍼가 차지하는 입지를 고려하면, 숫자보다는 그런 기술이 더해짐으로써 편리함이 더 커졌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기본 연료탱크 크기가 90L에 이르는 덕분에, 플라잉 스퍼는 이론적으로 영국 첼시에 있는 주유소에서 연료를 가득 채우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부근에 있는 주유소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주유소에 자주 드나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벤틀리라는 브랜드 성격에 더 어울리는 성격의 성능을 내기 때문이다.

잊기 전에 이야기해두자면, 가속력에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엔진은 아우디 RS6에서 우리 모두를 즐겁게 만들고 눈 깜빡할 사이에 GT에 관한 우리의 선입견을 바꾸게 만들었던 바로 그 엔진이다. 8자 모양의 배기 파이프가 돋보이고 대단히 매끄러운 ZF 8단 자동변속기와 결합된 플라잉 스퍼에서는 최고출력이 500마력, 최대토크가 1,750rpm에서 67.5kg·m에 이른다. 그러나 그처럼 원초적인 숫자들은 이 차가 내뿜는 성능의 너비와 깊이를 제대로 정당화하지 못한다.

V8 엔진에 관한 의문은 크건 작건 간에 GT에서 느꼈던 것과 아주 비슷한 어리둥절함으로 이어진다. 엄밀히 말하자면, 낡고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W12 엔진 모델을 일부러 선택하며 속물근성을 솔직히 드러낼 사람이 과연 존재할지 의문이다. V8 엔진이 놀랄 만큼 세련되거나, 대단히 좋아지거나, 화끈할 만큼 빠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세 가지 장점들이 아주 잘 어우러지도록 만들어진 것이 중요하다. 도심지를 가볍게 돌아다녀보면 엔진이 과연 존재하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흠집 하나 없이 매끄러운 차체 표면처럼, 조용히 제 역할에 충실한 엔진은 몰래 실린더 작동을 멈추었다 다시 움직이기까지 한다.

주변의 몇 가지 산만한 것들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액셀러레이터를 살짝 더 밟았을 때 혹은 필요할 때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면, 언제든 마음대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스타트렉> 속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석에 앉아 있는 듯 영광스럽고 흐뭇한 기분이 들 것이다. 플라잉 스퍼는 사람들이 기대했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이런 느낌에 생동감을 더한다. 크루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과 가죽, 광택재와 목재 다루는 능숙한 실력을 산뜻하고 고급스럽게 대변하는 듯하다. 어느 곳을 보더라도 우아하지 않을 정도로 비례가 과장되지 않은 덕분에 차 자체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다. 그러나 무게만큼은 의식 속에 깊이 각인될 정도로 육중하다. 마치 바닥이 넓적하고 팔 길이만큼 큰 잔을 들고 있는 느낌이다.

아마도 액셀러레이터를 갑자기 힘껏 밟으면 핵폭탄처럼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기어비는 W12 모델과 같지만, V8 엔진의 트윈 터보차저는 벤틀리가 더 튼튼한 토크 컨버터를 쓸 정도로 대단히 빠르게 힘을 뿜어낸다. ZF 변속기의 록업 기능이 작동하면, 풍부한 힘이 은근히 뿜어져 나오기보다는 마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는 듯 훨씬 더 가벼운 스포츠카에 가깝게 움직인다. 보도자료에는 0→시속 100km 가속에 채 5초가 걸리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2톤 하고도 절반이나 되는 무게의 덩치 큰 차가 달려 나갈 때에는 겁 없는 폭주족들이나 도전할 만한 영역에 부유층 운전자가 뛰어들어 분위기를 뒤집어놓는 광경이 떠오를 정도로 인상적인 실력을 보여준다.

이런 성능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싶기는 하지만, 지난해 본지의 시승에서 돋보였던 플라잉 스퍼의 주행 특성과 차이점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우선, 처음 쓰이는 19인치 휠이 이전보다 더 작은데도 벤틀리는 신형 플라잉 스퍼의 자동 조절식 에어 서스펜션이 도로의 요철을 매끄럽게 걸러내도록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럭셔리 세단 시장에서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모든 차에 적용하는 높은 기준으로 평가하면, 새 모델은 여전히 탑승자가 느끼지 못하도록 갑작스러운 충격을 적절하게 차단하지 못한다. V8 엔진의 힘과 더불어 네바퀴굴림 섀시와 유압 스티어링은 접지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어 차가 든든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플라잉 스퍼는 도도하기보다는 듬직하게 달려 나간다.

에어 스프링의 기본적인 충격흡수능력이 간접적인 승차감의 약점보다 돋보이는 고속도로에서만 모든 것이 제 기능을 한다. 전방이 탁 트이고 요철 같은 것들이 없는 바깥쪽 차로를 달리면, 벤틀리는 금세 운전자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어느 자리에 앉아 있든, 차의 움직임과 힘,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배기음이 두드러진다.

오직 롤스로이스와 비교할 수 있는, 모든 플라잉 스퍼에서 한결같이 볼 수 있는 14마리 분량의 소가죽과 10평방미터에 이르는 원목의 화려한 분위기와 1년밖에 되지 않은 멋진 새 디자인의 효과를 감안하면, 차의 단점을 모두 용서하는 것은 물론 대륙을 바쁘게 오가는 동안 스트레스와 피로를 푸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핵심 시장인 중국과 미국을 고려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점에서 V8 버전은 W12 모델에 전혀 손색이 없으며, 13만6천 파운드(약 2억3천930만원)라는 저렴한 값의 벤틀리 4도어 모델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거의 모든 동급 다른 차와 비교해도 격이 높아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실내가 잘 꾸며진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전반적인 품질까지 자동으로 좋아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승차감은 이따금 플라잉 스퍼가 레인지로버나 메르세데스-벤츠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다른 모든 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할 수 있지만, 벤틀리가 공략하려던 소비자들이 바로 그런 차와 브랜드를 기대했다면, 벤틀리가 플라잉 스퍼의 몫으로 기대했던 영역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좁을 것이다.

글 · 닉 캐킷

FIRST VERDICT
과거 어느 때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경쟁자들을 감안하면 아직 충분하지 않다.

SO GOOD
- 강력한 드라이브트레인
- 너무나도 멋진 실내 꾸밈새
- 화려한 선택사항 목록

NO GOOD
- 이따금씩 거친 승차감
- 시대에 뒤처진 인포테인먼트
- 화려한 만큼 높은 선택사양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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