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모비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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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모비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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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7.2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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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사회부 기자


1994년 서울 근교 발암교. 엄청난 폭발이 있은 뒤 간첩의 소행이라 발표된다. 하지만 명인일보 이방우 기자 앞에 나타난 후배가 커다란 가방을 남기고 사라지자 이 기자는 가방 안에 있던 디스켓에서 엄청난 의혹과 만난다. 손진기 기자 역시 발암교 사건을 취재하다가 뭔가 미심쩍은 부분을 감지한다. 두 사람은 신참 성효관 기자와 함께 특별취재팀을 구성한다. 그리고 드러날 듯 말 듯한 거대한 실체에 점차 근접해간다. 그 와중에 교통사고로 위장된 사고로 손진기 기자가 유명을 달리하고 이방우 기자는 눈물을 삼키며 사건의 종결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든다.

음모론, 할리우드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을 픽션으로 재구성한 <JFK>나 거대음모에 휩싸인 경찰들의 이야기 <LA 컨피덴셜> 또는 택시 드라이버로 위장해 살아가며 실세의 음모를 알리려는 <컨스피러시>, 실제 워터게이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대통령의 사람들>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우리 영화에서 본격적인 음모론을 다룬 영화는 이제껏 없었다. <모비딕>은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당시 서울대 앞에 민간인 사찰을 위한 위장 카페가 있었음을 밝혀낸 사실에 착안해 구성된 픽션인데 위장 카페 이름 ‘모비딕’을 영화의 제목으로 차용하고 있다. 또한 영화의 오프닝에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한 구절을 따 넣으며 규모를 알 수 없는, 형상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실체에 대해 비유적인 의문을 남긴다.

대한민국을 조작하는 검은 그림자, ‘정부 위의 정부’라 불리는, 실존하는지조차 파악되지 않은 ‘그들’. 그리고 양심의 가책으로 목숨을 걸고 자료를 갖고 도망친 내부고발자, 여기에 발로 뛰며 진실을 파헤치고자 모든 것을 건 열혈 기자가 있다. 영화는 이 세 축을 중심으로 음모와 특종과 진실을 이야기한다.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파고드는 진짜 기자들의 우직한 이야기는 그래서 관객들의 마음을 깊게 울려주며 스릴을 느끼게 한다.
 
이 영화 속에는 자동차가 많이 등장한다.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 짜여진 각본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용의자들이 납치될 때 사용되는 봉고차, 손 기자가 사고를 당할 때 갇혀버린 자동차와 함께 밀려 내려오는 트럭… 영화 속에서 자동차는 거대한 실체의 수족으로 작용한다. 순식간에 자동차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간 세 남자, 그리고 발암교 근처에 내려져 폭탄을 안은 차량에 탑승하게 된 세남자. 모두 다 ‘모비딕’의 계획에 따라 동원되고 이용되는 자동차들이다. 여기에 주목하는 자동차가 있으니 바로 막내 성효관 기자의 차, 대우 티코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국민차로 사랑을 받았던 경차, 대우 티코. 지금은 쉐보레로 이름이 완전히 바뀌어버려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대우의 티코는 당시 많은 재미있는 유머를 남기며 우리 국민들에게 친근함으로 다가왔던 차로 저개발국가의 엔트리카로 톡톡히 한 몫을 했던 자동차다.

영화 <모비딕> 속에서 보여주는 티코는 그래서일까 더욱 마음이 쓰이는데, 그 배경에는 ‘사회부 기자’라는 것이 한 몫 했음이 틀림없다. 사회부 기자는 정치부나 경제부 기자와는 다른 의미다. 더구나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할 때 사회부 기자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발로 뛰며 손으로 메모를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사회의 진실을 캐내려던 사회부 기자. 티코는 그들에게 눈물 나게 잘 어울리는 차가 아닐까. 1990년대에 찡하게 잘 어울리는 차가 아닐까. 그 작은 차에 반짝이는 눈으로 긴장한 채 옹기종기 앉아있던 손진기, 이방우, 성효관 기자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글 · 신지혜(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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