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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포크주 이스트 앵글리아의 꼬부랑 시골길은 조용하지만 비가 잦다. 때문에 우리 비교시승에는 아주 좋은 무대였다. 적어도 이 시승의 주역 엘리스는 바로 이 루트에서 개발 작업을 거듭했었다. 이 구간은 구덩이와 돌출부, 높은 울타리가 막고 있는 전방불명의 코너로 짧은 직선도로와 진흙탕 노면이 아주 절묘하게 뒤엉켜있다. 차체가 컴팩트하고 안정되고 조종력이 높지 않으면 소화하기란 무척 어렵다. 따라서 반응과 댐핑이 뛰어나고 어느 순간이든 얼마만한 그립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로터스 엘리스가 아닌 다른 차는 영 가망이 없어 보였다.
당연히 엘리스는 아주 민첩하다. 수많은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이 엘리스는 중·고속 코너링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중립라인을 따라간다. 액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시키는 대로 정점을 잘 감아 돌았다. 아무리 힘차게 몰아붙여도 결코 오싹한 오버스티어 슬라이드를 일으키지 않았다. 훨씬 넓어진 뒤 타이어와 오픈 디퍼렌셜 덕택.
다른 경우라면 이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지 모른다. 로터스에 비해 확실히 찻값보다 더 넉넉한 파워, 성능과 덩치를 갖췄다. 하지만 이번 시승에서는 지나치게 투박한 도구. 따라서 4대 라이벌 중 가장 먼저 탈락했다.
로터스는 운전대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요한 장점이 드러났다. 그와는 달리 마쓰다 MX-5의 놀라운 자질을 알아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이들 두 모델은 아주 밀접한 인연이 있었다. 로터스의 오리지널 엘란이 나오지 않았다면, 마쓰다는 MX-5의 영감을 얻지 못했을 터이다. 그리고 오늘 엘란이 태어난 지 거의 반세기 뒤 엘리스가 로터스 라인업에서 엘란의 자리를 차지했다. 따라서 이 만남은 마치 오랫동안 잊혀졌던 사촌의 재회와도 같았다. 서로 직계 혈통은 아니지만.
마쓰다의 콕핏이 로터스보다 빡빡하다니 놀랍다. 일본 로드스터는 길이가 자그마치 200mm나 더 길다. 그럼에도 MX-5에 들어가면 머리가 천장에, 두 무릎은 트랜스미션 터널과 대시보드에 좀더 가깝다.
마쓰다는 그냥 몰아붙이고 재미를 보는 단순하고 허세가 없는 차로 점수를 땄다. 컴팩트한 차체 밸런스는 꼬부랑 B도로에서 편안했다. 넉넉한 서스펜션 유격을 갖춰 제법 부드럽게 조율한 섀시가 여기서 말을 잘 들었다. 엘리스만큼 정확하게 코너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MX-5를 힘차게 코너로 몰아넣을 때 끝없는 재미를 볼 수 있었다. 강력 엔진은 요란하게 7,000rpm으로 치솟았다. 뒷바퀴굴림 섀시는 발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 차는 세차게 마음 놓고 몰아붙일 수 있었다. 성능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낼 수 있었고, 찻값을 톡톡히 해냈다. 다만 로터스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갔다.
지금까지는 ‘값비싸고 힘이 달리는’ 엘리스가 잘 해냈다. 323마력 V6을 자랑하는 370Z를 이 험악한 도로에서 쉽게 따돌렸다. 뿐만 아니라 영국 시골길에서 인정받은 소수에 끼는 MX-5를 멀리 따돌렸다. 적어도 일부나마 엘리스의 비싼 값을 해냈다. 한데 이제 한층 어려운 상대가 정면대결을 외치고 나섰다.
시로코 R은 출시 후 <오토카>에서 이토록 따뜻한 대접을 받는 적이 없었다. 우리가 포드 포커스 RS을 제치고 추천한 오직 하나밖에 없는 고속 앞바퀴굴림. 르노 메간느 250 컵을 앞서 추천하고 싶은 차다. 게다가 이번 요철이 심하고 전방시야가 나쁜 빗길에서 로터스와 맞먹는 역동적 완전성과 정교한 기교를 뽐냈다. 그에 못지않게 침착하고 안정됐고, 못지않게 정확하고 자신 있게 고속 범프를 타넘고 미끄러운 코너를 돌파했다. 운전의 스릴이 그토록 순수하지 않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어느 모로나 그만큼 유능했다. 게다가 직선코스 성능에서 시로코를 따를 라이벌이 없었다. 엘리스를 몰고 연속 코너를 따라갈 수는 있고, 상당한 수준까지 코너마다 대등한 속도를 낼 수는 있다. 그리고 기어를 정확히 잡고 로터스의 빈약한 토크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나 듬직한 푸른 폭스바겐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문제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면 로터스가 답이다. 상당히 느리다는 사실을 알고, 실생활에서 그만큼 인상적이지 않고 가격은 좀 더 싸고 쓸모가 적기는 하다. 하지만 훨씬 풍부하고 직접적인 운전경험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영국은 시장에서 가장 살갑고 매력적인 3만 파운드(약 5천370만원) 이하의 순종 스포츠카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시승에서 나온 증거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3만 파운드 이하의 최고 스포츠카는 포르투갈에서 나오는 독일제. 탁 까놓고 말해 시로코 R은 놀라운 성능과 안전·정확한 핸들링, 폭스바겐의 트레이드마크 미덕·탁월한 제작품질, 정상급 세련미와 넉넉한 4인승 공간을 아울렀다. 뿌리치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조합이다. 신형 엘리스가 아직도 경이적인 노리개지만, 이 가격에 엘리스를 선택하면 중대한 타협을 해야 한다. 성능의 질보다는 양이 앞선다. 폭스바겐을 사라. 그러면 성능의 질과 양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
글ㆍ맷 선더스(MATT SAUNDERS)
FACT FILE
LOTUS ELISE
가격 £27,495(약 4천920만원)
0→시속 100km 가속 6.5초
최고시속 204.4km
연비 15.9km/L
CO₂ 배출량 149g/km
무게 876kg
엔진 4기통, 1596cc, 휘발유
구조 미드, 가로, 뒷바퀴굴림
최고출력 136마력/6800rpm
최대토크 16.3kg·m/4400rpm
무게당 출력 155마력/톤
리터당 출력 85마력/L
압축비 10.7:1
변속기 6단 수동
길이 3785mm
넓이 1719mm
높이 1117mm
휠베이스 2300mm
연료탱크 44L
주행가능거리 693.6km
트렁크 용량 112L
앞 서스펜션 어니퀄 렝스 위시본, 코일스프링, 안티롤바
뒤 서스펜션 어니퀄 렝스 위시본, 코일스프링
브레이크 282mm V디스크
휠 5.5J×16in (앞), 7.5J×17in (뒤), 알로이
타이어 175/55 R16 (앞), 225/45 R17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