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라우다에 대한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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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라우다에 대한 회상
  • 데미안 스미스(Damien Smith)
  • 승인 2019.07.0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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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ing Lines / 니키 라우다에 대한 회상

타이거 우즈는 지난달 11년 만에 메이저골프 대회인 마스터즈에서 우승하며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이렇게 화려하고 위대한 복귀는 스포츠 정신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아주 다른 상황에서의 실패를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극복한 니키 라우다한테는 관심이 덜한 듯하다.

그는 1976년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기적처럼 복귀했지만 세상은 니키 라우다 대신 냉정함을 갖춘 판지오, 모스, 클라크, 스튜어트를 천재적인 F1 게임 체인저로 평가하며 집중 조명했다. 베르그베르크(Bergwerk) 코너에서 불길에 휩싸여 얼굴 반쪽과 한쪽 귀 대부분이 녹아내리는 화상을 입었지만 그의 생명을 더 위협한 것은 폐에 가득 찬 유독가스였다. 그러나 6주도 채 지나지 않아 복귀해 이탈리아 몬자에서 4위에 올랐다.

그는 땀을 흘리며 화상이 아직 다 아물지 않아 피로 물든 바라클라바를 거침없이 벗었다. 영웅이라 불러 마땅한 그에게 이러한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그가 해야 할 일,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향해 달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첫 번째 시련에서 얻은 냉정한 실용주의는 두 번째 시련을 극복하는 핵심 요소였다. 니키 라우다는 1979년 중반 갑자기 F1 은퇴를 선언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1982년에 맥라렌과 계약했다. 그가 F1을 그리워한다는 소식은 당시 맥라렌을 이끌던 론 데니스한테 흘러 들어갔고, 그는 새롭게 정비한 팀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인식시키고자 빠르게 움직였다. 이는 론 데니스가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다.

그러나 F1은 니키 라우다가 은퇴하고 2년 반 동안 크게 변했고, 그도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가장 빠른 드라이버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시즌 3번째로 열린 미국 그랑프리 롱비치 서킷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1984년에 새로운 게임 체인저인 알랭 프로스트가 맥라렌에 합류하자 불길한 조짐이 보였다. 니키 라우다는 알랭 프로스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환상적인 포르쉐 터보 엔진을 얹고 존 버나드가 매만진 MP4/2의 속도를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시즌을 보냈고 3번째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당시 알랭 프로스트와의 점수 차이는 0.5점으로,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극적인 기록으로 남아있다. 알랭 프로스트도 니키 라우다와 같이 경쟁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게 그들이 보여준 우정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지난달 7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니키 라우다는 스포츠계의 거물이 됐다. 무엇보다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는 강인하고 뼛속까지 정직했으며(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도)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니키 라우다는 영원히 최고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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