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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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기생충
  • 신지혜
  • 승인 2019.07.0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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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 박 사장의 벤츠 S350 -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간극을, 우리 메울 수 있을까

경쾌한 발걸음으로 박 사장의 집에 도착한 백수 청년 기우는 벨을 누른다. 이렇게 멋진 동네, 멋진 집이라니. 

미대를 지망했지만 역시 백수인 동생 기정이 기가 막히게 위조해 준 증명서를 손에 들고 박 사장의 집에 들어간 기우는 증명서를 내보일 필요도 없이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에게서 합격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기정을 집안에 들일 기회마저 잡아버린다.

기정 또한 박 사장의 기사를 보고 아버지 기택을 불러들일 계략을 꾸미고 기택 또한 박 사장의 기사로 들어와서는 아내 충숙을 집안으로 들일 계획을 짠다. 그렇게 네 식구 모두가 서로 모르는 척 하면서 박 사장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까지였으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기택네 가족들은 모두 백수에서 근로자가 되었고 ‘심플한’ 박 사장네 가족들은 ‘믿음의 벨트’를 통해 괜찮은 사람들을 고용했다고 생각했으니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작은’ 속임수를 쓰고 ‘작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던 기택네 가족은 내딛지 말아야 할 한 걸음을 더 내딛고야 만다. 박 사장네 가족이 캠핑을 떠난 그 날, 비가 오던 그 날, 남의 집을 제 집인 양 들어 앉아 남의 음식을 제 것인 양 펼쳐놓고 즐기던 그 날, 기택네의 행복한 시간은 뜻하지 않은 타인과의 접점을 불러오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여간다.

 

봉준호 감독.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반향을 일으키며 찬사를 받아온 그의 신작이다. 게다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까지 거머쥐었으니 평소에 봉준호라는 이름에 별로 관심이 없던 관객들까지 눈과 귀가 끌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영화는 참 많은 감상을 자아낸다. 보는 사람마다 영화와 무척 다른 접점을 갖게 되는 영화다. 누군가에게는 잘 만들어진 블랙코미디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힘겨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누군가는 웃음을 터뜨리며 볼 수 있는 희비극일 것이고 누군가는 명치끝이 딱딱하게 굳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어쨌거나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여러 가지 감정 때문에 술 한 잔 기울일 생각이 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런 의도라면 이 영화는 성공했다.

IT 기업의 젊은 대표인 박 사장은 벤츠 S350을 소유하고 있다. 기사가 딸린 벤츠 S350은 그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계층에 속해있는지, 어떤 인물인지 알려준다.

천천히 한 번 몰아보자고 이야기를 건네면서 컵을 손에 들고 차를 타는 사람, 컵에 가득 찬 음료가 흐르지 않자 슬쩍 만족함을 얼굴에 내비치며 운전이 부드럽다고 하는 사람, 타인과의 선이 분명하길 원하는 사람.

 

깔끔하고 세련된 외모, 지적인 분위기, 윤택함이 흐르는 모습의 박 사장은 벤츠 S350이 주는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린다. 부유하고 여유 있는 계층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벤츠는 기택을 이 집으로 불러들이는 매개체가 되고, 박 사장의 소유이지만 기택의 손에 이끌려 다니며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박 사장의 또 다른 차량은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 아들의 생일을 맞아 캠핑을 떠나며 탔던 차량이다. 평소에는 박 사장이 벤츠를 타기 때문에 차고를 지키고 있지만 이렇게 박 사장 가족이 캐주얼하게 외출할 때면 레인지로버가 집을 나선다. 단단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레인지로버 또한 젊은 사업가인 박 사장의 여가를 표현하기에 충분히 잘 어울리는 차량이다. 

기택은 박 사장의 행선지대로 벤츠를 몰지만 역시 박 사장의 소유인 레인지로버는 손대지 못한다. 벤츠가 박 사장의 일상을 보여준다면 레인지로버는 박 사장의 여가, 휴식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넘을 수 없는 선, 침범하면 안 되는 영역.

매일 벤츠를 몰지만 소유하기 어려운 기택, 그의 시선과 마음속에서 벤츠 S클래스는 무엇일까. 매일 박 사장 집을 드나들며 살림살이에 손을 대지만 그것들을 소유하기 어려운 충숙, 그녀의 시선과 마음속에서 그 집과 물건들은 무엇일까. 기우와 기정의 시선과 마음 속에서 그 집과 그 가족들은 어떤 존재들일까.

과연 우리는 그 시선의 간극을 메울 수 있을까, 씁쓸한 궁금증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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