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톤 세나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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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톤 세나를 추모하며
  • Damien Smith
  • 승인 2019.05.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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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ing Lines / 아일톤 세나를 추모하며
최면에 걸린 듯한 경주: 1988년, 비에 젖은 실버스톤 서킷을 달리는 아일톤 세나
최면에 걸린 듯한 경주: 1988년, 비에 젖은 실버스톤 서킷을 달리는 아일톤 세나

 

자동차 경주 팬들은 ‘케네디 암살 순간’과 같은 그들만의 기억이 있다. 25년 전 오늘, 1994년 5월 1일, 아일톤 세나가 세상을 떠났다. 여러분은 그때 어디에 있었을까?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때 학생으로 가족 행사 때문에 집에 가 있었다. 햇빛이 내리쬐는 이탈리아 이몰라(Imola)에서 열린 포뮬러 원(F1)은 금요일 경주차가 날아가는 사고에서 루벤스 바리켈로(Rubens Barrichello)가 가까스로 빠져나올 때부터 이미 꼬이고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심텍(Simtek) 팀의 경주차가 벽에 거의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신예 롤란드 라첸버거(Roland Ratzenberger)가 목숨을 잃는 끔찍한 상황이 있었다. 이 일은 1982년 이후 F1 그랑프리에서 생긴 첫 사망 사고였다. 이땐 이 같은 일이 또 벌어지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결승 당일에는 서킷에 짙은 먹구름 같은 우울함이 드리웠다. 그리고 출발 때, 충돌로 생긴 파편이 관중 속으로 날아가 작은 부상들을 입혔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탐부렐로(Tamburello) 코너에서 윌리엄즈(Williams) 팀의 경주차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코스를 튀어나가 벽에 부딪치면서, 당대 가장 위대하고 가장 유명했던 레이서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나는 TV에서 그 사고를 봤고, 교회 봉사를 위해 자리를 떠야 했다.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봉사가 끝난 뒤, 나는 차에서 라디오 채널을 돌려 봤지만(당시에는 휴대전화나 인터넷 같은 것이 없었다) 오후 여섯 시가 넘어서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날 대학으로 돌아갔을 때, 친구들은 나를 마치 가족을 떠나보내고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대해줬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세나는 여전히 F1의 전설로 남아 있다. 마치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록 스타처럼, 그 또한 신격화됐다. 그러나 그를 알았던 사람들, 그를 지켜봤던 우리 같은 팬들에게 세나는 성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대다수 영국 팬들에게 세나는 영웅이기보단 지나치게 냉정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악당’의 역할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영국 그랑프리였다. 나는 종일 쏟아지는 빗속에서 스토우(Stowe) 코너에 비참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경이로운 맥라렌 MP4-4 경주차를 모는 세나의 넋을 빼놓는 독주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의 경주차가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그때 내가 본 광경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그 뒤로도 사랑에 빠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1990년 스즈카 서킷 첫 번째 코너에서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에게 했던 ‘프로다운 반칙’은 경주차를 몰면서 저지른 가장 부도덕한 행동으로 남아 있다. 다만 1994년이 될 때까지,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 같은 세나의 기운은 그가 펼치는 경주를 압도했다.

그가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고, 그를 잃은 뒤로 F1은 완벽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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