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미스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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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미스 스티븐스
  • 신지혜
  • 승인 2019.06.0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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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스티븐스 : 3일의 여정을 함께 한 볼보 850 에스테이트

레이첼 스티븐스는 작은 도시의 고등학교 영어교사다. 차분하고 똑똑한 인상을 가진 레이첼은 우연한 기회에 고등학교 연극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인솔하게 된다. 성실하고 적극적인 소녀 마고, 어딘가 까칠해 보이는 소년 빌리 그리고 귀엽고 다정한 소년 샘.


학생들에게 이 대회는 꽤나 중요하다. 더 이상 연극반을 지원하지 않으려는 학교에 수상실적을 알리면 조금이나마 연극반 존속에 도움이 될까 싶어 자비를 들여 참가하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겐 무엇보다 인솔교사가 절실했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이 ‘작은 일’을 스티븐스 선생님이 흔쾌히 맡게 되고 그렇게 네 사람은 연극대회 참가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3일의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네 사람이 함께 타고 갈 차는 레이첼 스티븐스의 낡은 볼보, 850 에스테이트로 불리는 파란색 왜건이다. 낡디 낡은 차가 과연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 줄 것인지, 돌아오는 길은 괜찮을지 살짝 걱정이 될 만큼 오래된 차. 하지만 이들은 고등학생이 아닌가. 아무런 걱정도, 편견도 없이 볼보 850에 올라타 곧 이 차와 친해진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네 사람이지만 이들은 서로 서먹하다. 레이첼이야 선생님이니 아이들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사실 빌리와 마고, 샘도 친한 사이여서 함께 대회에 나가게 된 것은 아니다. 같은 반 아이, 같은 연극대회에 참여하는 아이 정도의 친근감이 있을 뿐. 당연히 살갑고 깊은 대화보다는 가벼운 이야기가 오갈 뿐이고 그 공백을 메워주는 건 볼보 850 안을 채우는 음악이다. 


옛 노래들. 아마도 레이첼은 어머니가 즐겨듣던 음악을 듣는 것 같다. 레이첼의 낡은 파란 색 볼보 왜건이 어머니의 것이었듯 말이다. 어쨌거나 볼보 내부를 채우는 노래들은 레이첼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하고, 예리하고 민감한 정서를 갖고 있는 빌리는 노래를 통해 자신과 닮은 레이첼을 알아보게 된다.


큰 사건이나 굴곡이 없어도 이렇게 마음에 스며드는 알싸한 슬픔과 그 슬픔을 서로 알아볼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감각, 그리고 그걸 알아차리고 서로를 위로하고 감싸 안을 수 있는 순수하고도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이 영화는, 정말 좋다. 


영화는 빌리와 레이첼의 마음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마고와 샘의 존재 또한 결코 잊지 않는다. 엄청난 이야기들이 풀려나오지도 않는데 우린 영화의 엔딩과 함께 그들의 몇몇 단면을 알게 되고 그 지점에서 파생되는 많은 면면들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면서 뭉클함과 위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알싸하고 이렇게 따사롭고 이렇게 위로를 주는 영화라니!

빼먹을 수 없는 이 영화의 장점은 역시 배우들의 연기다. 브로드웨이 연극과 TV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내공을 쌓아온 레이첼 역의 릴리 레이브가 있고, 아역배우로 시작해 떠오르는 스타로 꼽히는 릴리 라인하트가 마고 역을 맡았다.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매력을 펼쳐 보인 샘 역의 앤서니 퀸틀은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무한한 매력과 다재다능함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티모시 샬라메가 있다. 티미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깊은 연기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도무지 돌릴 수 없게 만든다. 티미의 연기는 심연 어딘가부터 끌어올려져 순식간에 적당한 무게와 질감과 형태로 빚어지는 듯하다. 


영화 속 또 하나의 조연은 단연 볼보 850 에스테이트. 레이첼과 학생들이 연극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기꺼이 동행해준 볼보는 그 내부에 울려 퍼지는 노래들과 함께 네 사람의 거리를 살짝 좁혀주고 길 중간 중간에 멈춰 서서 빌리의 마음이 쉴 수 있도록 해주며 마고와 샘이 자신과 서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연극대회를 마친 네 사람이 갈 때보다 훨씬 더 서로 편안해지고 따스해진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낡은 파란색 볼보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관통하면서 레이첼과 빌리가 서로에게 투영된 존재임을 넌지시 알려주는 아메리카(America)의 노래 ‘sister golden hair’. 그 노래를 품고 달리던 볼보와 함께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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