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라스트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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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라스트 미션
  • 신지혜
  • 승인 2019.05.1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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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미션 : 얼 스톤의 차 포드 F-100과 링컨 마크 LT

아흔이 가까운 나이가 된 그는 전형적이고 평범한 미국 백인의 삶을 살아왔다. 인종차별이 심하던 때에 청년기를 보냈고 젊은 나이에 한국전에 참전했으며 아내와 딸 하나를 둔 가장으로 살았고 직접 가꾸고 기른 꽃을 판매하고 배달하며 전국을 누볐으니 말이다. 

 


그 이면을 더 들여다보면, 얼은 자신이 가꾸는 꽃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워서 정작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아내와 딸을 등한시한 사람이었다. 직접 포드 F-100을 몰고 전국을 누비며 배달을 하느라 정작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은 턱없이 적었다. 타인들에겐 매력적이고 유머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가족들에겐 늘 바쁘고 일만 하는 모습만 보여준 사람. 그의 이름은 얼 스톤이다. 

 

 

인터넷 주문과 배달이 상용화되면서 그의 사업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농장을 정리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얼은 아흔 가까운 나이가 되어 있었다. 열심히 일을 하며 평생을 보냈을 뿐인데 곁에 있어야 할 가족은 없다. 속도위반 딱지 한 번 끊은 적 없이 성실하게 살았고 그 누구와도 잘 지내왔으며 재향군인회와 각종 지역사회 모임에서 인기가 있는 그이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없다. 

 

 

그런 얼에게 누군가 일을 제안하고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의뢰받은 배달에 나선다. 수 십년 간 자신의 분신처럼 전국각지로 꽃을 날랐던 포드 픽업트럭 F-100과 함께. 생각보다 쏠쏠한 배달비에 얼은 계속해서 일을 하게 된다. 그것이 마약밀매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얼은 그저 자신의 일에 충실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재향군인회를 유지시키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자금을 대며 낡디 낡은 포드 트럭을 단단하고 튼튼한 외관을 가진 링컨 마크 LT로 바꾼다. 

 

 

실제 있었던 노인 마약운반책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영화이다. 명배우이자 명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 실존 인물에 자신만의 마음을 얹어 ‘라스트 미션’이라는 뭉클한 영화를 만들었다. 얼 스톤. 단순히 보자면 그는 마약운반책이다. 바람직한 일, 평범한 일을 했다고는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의 삶과 그의 생활과 그의 마음을 따라온 관객들은 왠지 그에게서 시선을,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 

 

 

흑인을 ‘니그로’라 부르지만 그의 몸짓에는 인종차별의 모습이 없다. 그들은 그저 타이어가 펑크 나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일 뿐이다. 젊은 사람들을 향해 너희 세대는 왜 그래, 라고 말을 던지지만 그의 표정에는 세대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무엇이 없다. 그들은 그저 다른 생각을 갖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웃일 뿐이다. 

 

 

얼과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포드 픽업트럭은 아마도 그의 새로운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떨어져야 하는 것이 못내 마뜩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는 지나가버린 시간일 뿐. 얼의 과거를 잔뜩 싣고 있는 포드 트럭은 이제 얼과 헤어져야 한다. 얼과 새롭게 팀을 이룬 링컨 마크 LT는 얼의 이전 시간을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 링컨 픽업에게 얼은 마약을 실어 나르는 노인일 뿐이니.

 

어쨌거나 두 차량은 얼의 일거수일투족과 함께하면서 배달이라는 임무를 공유한다. 배달의 내용과 시간들은 다르지만 말이다. 포드에서 링컨으로 차의 세대교체를 이루면서 얼 스톤은 생각한다. 자신은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지금 남은 것은 무엇인지, 놓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스스로 깨닫는다. 성실함의 방향과 열심이라는 내용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그래서 그는 아직 시간이 있는 젊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은 아마도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약을 가득 실은 채 가던 길을 멈추고 아내에게 돌아와 임종을 지킨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자신이 유죄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그는 다시 딸과 손녀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시간이 너무 바빠서 저마다의 포드를 몰고 정신없이 배달을 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나의 삶이 누구와 함께였는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허탈해진다면 그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얼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자.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그의 말은 분명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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