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 고위직의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 에 오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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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업계 고위직의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 에 오르기까지
  • 마이크 더프(Mike Duff)
  • 승인 2019.02.2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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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홀더(Jim Holder)가 자동차계 최고의 직위에 있는 인사들을 만났다

 

마렉 라이히만(Marek Reichman) 애스턴마틴 디자인 총책

 

“내가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를 위한 차를 디자인하리라 상상이라도 했을까? 가장 황당한 꿈속에서도 그럴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애스턴마틴의 디자인 총책 마렉 라이히만이 껄껄 웃었다. 그의 말대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라이히만은 1966년 영국 중앙부의 셰필드에서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무엇보다 열정이 자신의 인생행로를 이끌었다고 믿었다. 


“자기 취미를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인생 상담사들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황당한 헛소리다. 열정을 가지고 일한다면 꿈을 이루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 일을 둘러싸고 지나치게 고매하게 굴지 않더라도 자기 직업이 소명으로 승화한다. 날마다 일터에 나가면 힘들고 지칠 수도 있지만, 자세를 바꿔 도전정신을 살리면 감동과 흥분을 맛볼 수도 있다.” 디자인을 공부한 7년 터울인 그의 형 줄리언은 라이히만에게 촉매 역할을 했다. “형은 내가 10대일 때 누구나 읽기와 쓰기를 하듯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수학시간이든 프랑스어 시간이든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교과서에도 그렸다.” 

 

라이히만이 DBS 슈퍼레제라 디자인을 지도하고 있다

 

“애스턴마틴에 입사한 뒤 모교를 찾아갔다. 내 경험을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옛 수학교사가 그대로 있었다. 수업 중에 내가 딴 짓을 한다고 그가 던진 흑판 지우개를 들먹였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는 자신이 아주 좋아하는 것을 찾아 정열적으로 파고들라고 조언했다.” 자신의 재능에 힘입어 라이히만은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 진학했다. 거기서 디자인계의 쟁쟁한 인재와 함께 공부했다. 예를 들면 토마스 인겐라트(폴스타 CEO 겸 볼보 디자인 총책)를 비롯해 스테판 질라프(벤틀리 디자인 총책), 데이비드 우드하우스(포드 전략디자인 총책)와 필 시먼즈(전직 랜드로버, 현재 중국계 하발 디자인 총책)였다. 


그의 인생행로는 랜드로버에서 BMW로, 다시 랜드로버로 이어지며 그에게 값진 교훈을 선사했다. 그가 오늘날까지 잘 쓰고 있는 핵심 기술은 대학에서 배웠다. “나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동료그룹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우리는 밀어주고 끌어주며 서로 열정을 나눴다. 금요일 밤 외출해서 흥청망청할 돈이 없었던 것도 한몫 했다. 대학시절 전공을 넘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섬유학과 세라믹을 비롯해 자동차와 연관된 학과의 학생들과 교류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다른 분야의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고 공동연구로 서로 최대한의 성과를 올릴 방안을 찾았다.

 

차를 디자인하지 않을 때는 차를 몰고 레이스에 출전한다

 

“지금 나는 비범한 재능을 지닌 디자인 팀을 이끌고 있다. 내 생활의 가장 중요한 일부를 거기 바치고 있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고, 나는 그들의 재능에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내 일상적인 노력은 그들이 재능을 살릴 시간을 주는데 모아진다.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내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뛰어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들을 인도할 따름이다. 실로 대단한 특권이다.” 라이히만의 일기를 훑어보니 그가 받는 중압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애스턴의 이사회에 옵서버로 참석하고, 세계적인 회의에 나가 연설을 한다.

 

영국디자인평의회를 지원하고 몇 개 대학에 초빙교수로 나간다. 심지어 그가 디자인한 새 차를 몰고 레이스에 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피곤한 날은 있지만 절대로 나쁜 날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앤디 파머가 이 회사의 총수로 오기 전까지 애스턴은 돛에 바람이 불지 않는 배와 같았다. 내가 할 일이라고는 암초에 부딪치지 않게 피하는 길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 돛은 바람에 한껏 부풀어 힘차게 달리고 있다. 날마다 새로운 무엇을 배우는 기회를 맞고 있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엘리자베스 힐(Elizabeth Hill) 재규어랜드로버 제품 엔지니어 총책

 

<오토카>가 주최하는 <영국 여성대상>에서 힐이 대상을 받았다

 

재규어랜드로버 제품 엔지니어 총책 엘리자베스 힐은 솔직히 털어놨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면서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대학을 마치고 여행이나 다니며 빚을 갚을 정도만 돈을 벌 일거리를 찾기로 했을 뿐, 일생의 계획은 세운 적도 없었다고.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열심히 노력했다고 할 수 없다.” 그녀의 말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어떻게 되는가를 깨닫고 상당히 실망했다. 아무튼 그게 전환점이 됐다. 그때부터 무슨 일이든 최대한 집중했다.”


당시 힐의 수학과 물리학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엔지니어링이 그녀가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마침 임시직 취업알선소에서 부품공급업체 루카스 배리티의 연료분사기 제작부에 일자리를 찾아줬다. “상당히 따분했지만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일이었다. 나는 그 기회를 최대한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최선을 다했고, 대학원 훈련과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때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자리를 굳히기로 했다.”

 

힐은 레인지로버 라인업 전체를 보살핀다

 

뒤이어 그녀는 롤스로이스의 항공우주산업 부문에서 잠시 일했다. 그때 자동차산업의 매력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다. 2002년 힐은 드디어 재규어랜드로버(JLR)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항공우주산업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자동차는 언제나 사귈 수 있는 대상이었고, 정서적 연계가 있었다. 속도가 대단한 산업이라서 정말 매력이 있었다.” 만능이었던 힐은 랜드로버의 어느 기술부서에서나 일할 수 있었다. 그는 현행 레인지로버나 레인지로버 스포츠, 디스커버리 개발에 앞장섰다. 게다가 시장에 나온 최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추가했다. 


“나는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일을 하는데 적합하다.” 힐의 말이다. “어느 기업이나 서로 다른 기술을 아울러 번창한다. 무엇이든 보다 좋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전문가들을 무척 존경한다. 하지만 나는 여러 그룹의 기술을 하나로 뭉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양한 그룹이 서로 경쟁하면서도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단합하는 장면은 실로 감동적이다. 일생의 계획을 세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열린 마음으로 새롭게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면 어느 길을 가든 상관없다.”


엘리자베스 힐은 기술공학의 강력한 지지자다. 따라서 거기서 나오는 직업상의 기회를 열렬히 환영한다. “우리는 장시간 일한다. 일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 그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제작팀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신차 발표회를 할 때가 다가온다. 그럴 때도 우리는 융통성 있게 일을 하고, 균형을 잡는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실로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는 일생의 소명이다.”

 


폴 스티븐스(Paul Stevens) HR 오윈 부가티 메이페어 브랜드 총책

 

 

앞으로 몇 주 사이에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된다고 하자. 그럴 경우 폴 스티븐스는 2019년 판매량을 ‘두 자릿수’로 올려 잡는다. 기껏 그 정도로 무슨 소란이냐고? 그러면 스티븐스가 이끄는 HR 오윈 부가티 메이페어가 어떤 메이커인지 알아보자. 이 메이커가 만드는 부가티 시론 한 대 값은 약 210만 파운드(약 30억510만 원)에서 시작한다. “고객과 접촉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들였다. 그리고 한 대를 파는데 대략 3개월에서 3년이 걸렸다. 우리를 찾아와 선뜻 한 대를 사는 고객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스티븐스가 말했다. 아무리 돈이 많은 부호라 해도 200만 파운드(약 28억6200만 원)를 내놓으려면 신중하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어느 땐가 스티븐스는 한꺼번에 30명의 고객과 흥정을 하게 됐다. 전화를 걸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고 찾아가기도 했을 뿐 아니라 행사를 열고 런던 중심부의 쇼룸을 이용하기도 했다. 혹은 어느 곳이든 고객에게 가장 알맞은 장소를 골라 시승기회도 줬다. 스티븐스는 셰프로 일하다가 슈퍼카 판매로 방향을 틀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변신이었다. 그런데 그는 호텔과 요식업을 집중 연구한 사람이다. 이들 두 분야는 고객 서비스 수준이 높기로 유명하다. 


“나는 HR 오윈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메르세데스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여 벤틀리, 롤스로이스로 올라갔고, 이제 내가 절대적인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부가티에서 뛰고 있다.” 스티븐스의 말이다. 경험이 성공의 열쇠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HR 오윈 부가티 메이페어를 고성능차 메이커가 선망하는 세계 최고판매 대상 후보로 올려놓았다. 스티븐슨은 “지식과 자신을 쌓아야 한다. 물론 우리 차에 관심을 갖는 잠재적 고객과의 접촉에 필요한 자료를 적은 블랙북을 착실히 만들어가야 한다. 상류층 고객과 접촉하는데 나이가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보다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스티븐스가 판매한 시론 한 대는 200만 파운드(약 28억6200만 원)를 넘었다

 

부가티 한 대를 팔려면 고객 주위에서 엄청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파티도 열어야 하고, 영국에서 시승행사를 열어야 한다. 혹은 프랑스 몰샤임의 부가티 본부로 그들을 안내해야 한다. “종종 자가용 제트기로 고객과 그의 가족들을 태우고 가서 공장을 보여주고 진수성찬을 대접한다. 공장의 테스트 드라이버와 함께 차를 시승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심지어 생산라인을 중지시키고, 고객이 모든 제작자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부가티를 사면 한 가족의 일원이 된다.”


“가끔 아주 어려운 요구를 받기도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무척 수월하게 접대할 수 있는 고객이 더 많다. 그들은 굳이 뭘 내세워야 할 까닭이 없고, 아주 솔직하며,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많다. 또한 다른 오너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우리 행사에 나와 서로 인사를 한 뒤 함께 흥정을 하는 경우가 많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즐겁다.” 시승한 뒤 가장 흔한 반응은 시론이 얼마나 빠른가가 아니라 운전하기가 얼마나 쉬운가에 대한 것이었다는 스티븐스의 말이 흥미로웠다. “물론 이따금 고객은 그보다 약간 날선 무엇을 원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에게 EB 110을 소개한다.”


최근 스티븐스와 그의 팀은 딱 40대가 만들어진 한정판 고성능 부가티 디보를 기존 고객에게 팔아야 하는 과제를 맡았다. 스티븐스가 비밀개막 행사(시승이 아닌)에 데려간 4명 모두가 한 대를 샀다.

 

졸리언 내시(Jolyon Nash) 맥라렌 오토모티브 판매ㆍ마케팅 수석 이사

 

고객을 제대로 찾아내는 거야 말로 내시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12억 파운드(약 1조7172억 원)를 투자하여 2025년까지 18개 새 모델을 출시하는 것이 ‘맥라렌 트랙25’ 계획이다. 간접적으로 졸리언 내시는 판매·마케팅 총책으로 수입을 올려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스트레스가 아주 큰 자리일까? 물론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 중 하나라는 의견에 내시가 침묵을 지키는 이유다. 내시는 “이보다 더 즐거운 일자리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굉장한 압박을 받고, 까다로운 이식 작업을 해야 한다. 따라서 자동차산업에 대한 강인한 정열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압감에 눌려 무너지고 만다”고 설명했다. 


정상에 도달한 내시의 행로는 결코 범상하지 않았다. 처음 그는 남아프리카의 마케팅 부문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영국 남서부 헤리퍼드셔의 가족경영 푸조 딜러로 들어갔다. 인력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때마침 1990년대 초의 금융위기가 들이닥쳤다. 내시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미캐닉을 제외한 무슨 일이든 했다. 이후 내시는 남아프리카로 돌아갔다. BMW와 폭스바겐의 마케팅에 힘을 쏟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번에는 롤스로이스의 판매·마케팅 팀을 이끌었다. 5년 뒤 그는 맥라렌에 합세했다.

 

내시는 2025년까지 18개 신형 모델을 내놓는다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프리미엄과 럭셔리 브랜드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터득하게 됐다.” 내시가 설명했다. “제품이 좋을 경우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일정한 절차를 따라 차를 팔았다. 그러나 럭셔리 시장에서는 단 한 건의 매매가 대형이다. 따라서 고객을 찾아 그들 앞에서 제품을 내놓는 게 큰일이다.” 내시는 세계적인 모터쇼와 행사를 거의 빠짐없이 찾아간다. 특히 제네바모터쇼와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를 좋아한다. 또한 해마다 몇몇 F1 그랑프리를 찾는다. 맥라렌 고객 드라이빙 데이와 자동차 이외의 고급시장 이벤트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러면 실로 놀라운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있는 곳을 믿을 수 없어서 몸을 꼬집어봐야 하는 황홀한 일이 벌어진다.” 내시가 털어놨다. 


모든 맥라렌 구성원의 핏줄에는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흐르고 있다. 내시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거나 해외에 있지 않다면 첫 회의는 으레 오전 7시 30분에 시작된다. 그런 다음 저녁까지 일하고, 대체로 팀원과 기획회의를 연다. “우리는 비교적 작은 조직이다. 단 하나의 기회에서 좀 더 큰 성과를 올리려 노력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상하의 직위가 적지만 책임은 크다. 이는 정상에서 회사 전체로 퍼져나간 기업문화다. 그런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곳은 없다”고 내시는 강조한다.

 


앤디 언스워스(Andy Unsworth) 벤틀리 차량역학 총책

 

언스워스는 동급최고의 성능을 벤틀리에 주입하는 목표를 세웠다

 

근무시간의 태반에 차를 운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앤디 언스워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관리직에 올랐다. 덕분에 그는 폭스바겐그룹 기술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거기서 영국 크루의 벤틀리가 내놓은 가장 위대한 최신 모델의 핸들링 한계를 시험한다. 언스워스는 “때로는 예산회의에 나가는 경우처럼 중대한 행사에 참가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특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나는 지금도 근무시간의 약 30%를 차안 또는 차 주변에서 보낸다. 그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게 보내려 노력할 따름이다. 범상한 일이 앞날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날이면 날마다 트랙에서 새 차를 시험할 필요는 없다. 그래야만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언스워스의 생애는 로버 그룹의 견습공에서 시작했다. 당시 그는 16살이었다. 이후 랜드로버와 BMW와 재규어(F-타입에 앞서 폐기됐던 재규어 스포츠카 개발에 참여했다) 프로젝트를 거쳐 벤틀리에 들어갔다. 그가 자기 성공의 큰 몫을 돌리는 인물이 있다. 영감을 준 롤모델이면서 지도자 크리스 포릿이다. 지난날 랜드로버와 애스턴마틴, 테슬라를 거쳐 지금은 애플에서 활약하고 있다. 

 

앞으로도 언스워스는 이렇게 할 일이 많다

 

“크리스는 자기 주위에 일단의 정열적인 인재들을 모았다. 그들이 우리가 따르고자 하는 기준을 세웠다. 우리는 지식을 서로 나눴고, 열성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으며 나날이 발전했다.” 이제 팀 리더가 된 언스워스는 그와 비슷한 기조를 세우려 노력하고 있다. 가장 큰 과제는 다이내믹스 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동시에 인정을 받고 있는 그의 역량에 발맞춰 더 큰 책무를 짊어져야 한다. 


언스워스는 “역학적 기능과 아울러 우리 팀은 전자식 안정컨트롤, 그리고 운전지원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그룹 내부만 아니라 공급업체와도 수많은 회의가 열린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 하며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실제로 하고 있는 작업을 꿰뚫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스워스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내 임무의 일부는 우리 팀이 작업할 때 최고 수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나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기획을 최종제품과 연결해야 한다.”
앞으로도 언스워스는 이렇게 할 일이 많다

 

스티브 모리스(Steve Morris) 모건 모터 컴퍼니 상무

 

모리스는 판금 견습공에서 출발하여 정상에 올랐다

 

스티브 모리스가 경영하고 있는 모건은 단순한 자동차회사가 아니라 자동차계의 아이콘이다. 모리스가 16살 때 그의 아버지는 양복을 차려 입힌 아들을 차에 태우고 회사 정문으로 달려가 일자리가 있느냐고 물었다. 모리스는 “처음에는 없다고 딱지를 놨다. 두 번째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버지가 고집이 센 건지, 또는 뭘 알고 있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몇 주 뒤 다시 찾아가자 나를 판금 견습공으로 받아들였다”고 회상했다. 

 


2013년 상무에 임명된 모리스는 정신이 아득했다. 하지만 그 자리를 굳게 지키며 ‘개선이 무슨 뜻이든 간에 개선하기 위해’ 혼신의 열정을 바쳤다. “공장의 감독이 고관절 수술을 받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그 때문에 내가 판금부를 잠시 이끌어야 했다.” 모리스의 회고담이다. “나는 몇 가지를 바꿨고, 주위에서 도와줬다. 이후 현장 감독이 돌아왔을 때 다른 관리직에 지원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나는 야심이 강했고 열심히 일했다. 그렇지만 피터와 찰스 모건의 사무실에 앉을 거라고는 꿈꿀 수도 없었다. 거기서 HFS 모건이 창립한 회사를 운영하다니, 내가 영국 총리가 되는 꿈을 꾸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 헌신적인 노력은 성과를 거뒀다.”

 

모건은 계속해서 체급 이상의 펀치력을 자랑했다

 

모리스가 자기 살을 꼬집어봤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난관이 닥친 기업을 운영하는 압박에 대해 솔직히 밝혔다. “날마다 사내를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을 만나려 애쓰고 있다. 나는 모든 직원의 이름과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는 사람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책임을 확인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따라서 그 책임은 아주 막중하다. “우리는 큰 회사가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의 수입업자가 의문이 있으면 내게 전화를 건다. 낮과 밤,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모든 생활을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일할 수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양하고 열정이 필요하다. 한 시간 전에 몇 가지 디자인에 서명했다. 10분 전에는 딜러와 사업을 논의했고, 지금은 당신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대다수 메이커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더 먼 거리를 가는 게 정상적이다.”

 


그중 어느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를 가로막는지 물었다. “아니다. 정말 놀랍다. 나는 가끔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깨우쳐줄 필요가 있다.” 모리스가 웃었다. “나는 어려웠던 기억을 쉽게 털어버린다. 그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기억하기를 좋아한다. 게다가 경이로운 날들이 있었다. 클래런 하우스에서 나는 찰스 황태자 옆에 서 있었다. 나는 그날 내 살을 꼬집어봤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내 자식들에게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말한다.”
 

 

댄 펙(Dan Peck) 로터스 차량역학 엔지니어

 

펙은 아직도 손을 떼지 않았다. 그의 작업 시간 중 절반을 운전하면서 보낸다

 

수많은 10대에게 노동경험은 일생을 뒤바꿀 기회보다 더 필요하다. 댄 펙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그는 차량역학 엔지니어로 로터스의 승차감과 핸들링의 명성을 지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펙은 “나는 물건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어딘가 들어가서 그런 일을 할 수 없을까 궁리했다. 공교롭게도 일이 잘되어 80명의 견습공 지원자 중 뽑혀 4년짜리 프로젝트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운 좋게도 공장에서 일하면서 현지 공과대학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처지라 무엇 하나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펙은 평생의 직업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운이 좋아 개번 커쇼(로터스의 유명한 차량 엔지니어링 총책)와 얼마동안 함께 일했다. 내가 여러 부서를 돌아다닐 때 그는 나의 영감이었다.” 펙의 말이다. “졸업한 뒤 차량 프로토타입 작업장에 지원했다. 프로토타입 엔진을 손질하는 일이 잘 돌아갔다. 그런데 그보다는 내가 만든 차를 몰아보는 일이 더 마음에 들었다.”

 

지금 펙은 현행과 미래의 로터스 제품 개발의 중심에 뛰어들었다. 아울러 다른 메이커의 특별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폭염과 혹한 테스트를 해야 하고, 다양한 테스트 트랙이나 잘 알려진 도로 테스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시간의 거의 절반을 차량 주행 테스트로 보낸다. 무척 마음에 드는 일이다. 신차의 성능을 최적화하는 작업을 하고, 삐그덕 털털거리지 않는지 테스트카를 시험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을 하든 우리가 하는 일의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어 기쁘다. 꾸준히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의 책상에서 테스트 트랙까지는 3분 거리다

 

“내 책상이 테스트 트랙에서 3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좋은 점이기도 하다. 모든 기술자들이 한 자리에 앉아서 토론한다. 가령 신형 댐퍼 밸브코드와 같은 부품을 시험할지를 논의한다. 그런 다음 당장 나가 시험한다. 나는 견습공 시절부터 전방위 기술교육을 받았다. 우리는 한 시간이면 댐퍼 밸브를 교체할 수 있고, 하루에 9개 세팅까지 시험할 수 있다.” “자동차산업의 기준에 따르면 로터스는 작은 회사다. 그런데 그 덕분에 나는 엄청 많은 것을 아주 빨리 배웠다. 대형회사에서는 역학담당 기사가 손질을 하려면 엔지니어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수많은 계단을 밟게 되면 하루에 한 개 세팅밖에 시험할 수 없다”고 펙이 설명했다.

 

“로터스에서 우리 목표는 최고수준의 역학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다. 좀 더 강조한다면 최고 중의 최고를 노린다. 자동차 업계는 경쟁이 치열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물론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로터스에서도 지식이 풍부한 팀의 일원이다. 오만해서는 안 되지만, 지식은 도전을 꺾을 수 있는 자신을 가져온다.” 
 


<자동차산업계 최악의 일자리>

순위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으나 먼저 떠오르는 5가지

 

핸드북 저자
아주 진지하고 대단히 중요한 직업이다. 다양한 경고와 주의사항을 둘러싸고 법적으로 정당한 자세를 지켜야 해서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고작 보닛을 여는 방법 등을 담은 내용으로 200페이지나 써야 할까? 달가운 일이 아니다. 

 

보장내용 자문역
고객들이 무상이기를 바라는 항목을 두고 수천 파운드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고역이 따른다. 그럼에도 시들해하는 고객의 기대를 끌어올려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풋내기 카디자이너
누구든 어디선가 첫출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차세대 F-타입을 설계하는 일에 일생을 걸 꿈을 꾼다고 하자. 그러면 돌아가서 도어 손잡이를 다시 손질하라고 퇴짜를 맞게 마련이다. 조금 실망스럽지 않을까?

 

서비스 자문역
전해줄 희소식이 무소식밖에 없다고 하자. 그러면 정말 어려운 일이 된다. 그리고 고객들에게 그들의 차를 손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좌절감을 부채질하는 길이다.

 

자동차공장의 능률 관리자
자동차공장은 시계처럼 움직인다. 만사가 매끈하게 돌아가도록 초 단위로 모든 작업을 조절한다. 1초를 아낄 기회를 찾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려면 공장의 다른 부분을 모두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를 밝혀내야 한다.

 

<임무에 너무 충실한 경비원>

출처불명의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인도의 재벌 라탄 타타가 2008년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사들였다. 새 오너가 된 타타는 영국 게이던을 찾아 18억 파운드(약 2조5758억 원)를 들인 자기 공장을 직접 둘러보기로 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경비원이 신분을 밝히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드라이버와 자동차를 체킹시스템에 입력했으나 타타의 기록이 없었다. 임무에 충실한 경비원은 스마트폰을 통해 타타에 관한 뉴스를 수없이 보고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저 분이 누군지 아느냐’를 되풀이하며 경비원을 몰아붙였다. 그러자 타타는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공장안에 있는 고위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땀을 흘리며 달려 나온 그 인사가 사태를 해결했다. 모범적인 신사로 통하는 타타는 떠나면서 임무에 충실한 경비원을 칭찬했다. 그리고 회사자료에 나오는 사진을 복사하여 경비실에 걸어 놨다. 그 옆에는 이런 글귀가 붙었다. “이 분은 언제든 들여보내세요.”

 

<자동차업계 최고 연봉>


최근 몇 달 사이에 자동차업계 CEO의 연봉이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닛산이 카를로스 곤의 경영실태를 내부 조사하고 그가 체포당한 뒤였다. 사법당국은 계속해서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한편 자동차회사의 경영과정에는 부정의 구멍이 수없이 뚫려 있다는 게 밝혀졌다. 회계감사를 할 때가 되어서야 비리가 세상에 드러나게 돼 있었다. 아래에 자동차업계 최고연봉자를 골라 실었다. 알고 보니 큰돈을 받는 사람은 OEM 총수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카시트와 전장품 공급업체 리어 코퍼레이션의 매슈 사이먼치니는 2017년 1150만 파운드(약 164억5650만 원)를 벌었다. 


이 숫자를 보고 숨이 막힌다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른 숫자를 살펴보기로 하자. 일런 머스크가 테슬라 주주들과 미리 합의한 목표에 도달할 때, 사이먼치니의 소득은 그 앞에서 초라해진다.
현재 머스크는 월급도 보너스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테슬라의 가치가 앞으로 10년 사이에 5000억 파운드(약 715조5000억 원)에 도달하면 머스크는 최고 20억 파운드(약 2조8620억 원)를 받게 된다. 그밖에 그는 현 시가로 420억 파운드(약 60조1020억 원)의 주식을 갖고 있다.

 

최근 보도된 CEO 수입
1. GM 메리 바라 - 1710만 파운드(약 244억7010만 원)    
2. 닛산-르노-미쓰비시 카를로스 곤 - 1300만 파운드(약 186억300만 원)    
3. 포드 짐 해킷 - 1220만 파운드(약 174억5820만 원)    
4. 포드 수석회장 빌 포드 - 1220만 파운드(약 174억5820만 원)    
5. 전직 폭스바겐그룹 마티아스 뮐러 - 890만 파운드(약 127억3590만 원)    
6. 다임러 디터 제체 - 760만 파운드(약 108억7560만 원)    
7. BMW 하랄트 크뤼거 - 740만 파운드(약 105억8940만 원)    
8. 재규어랜드로버 랄프 스페트 - 540만 파운드(약 77억2740만 원)    
9. PSA 그룹 카를로스 타바레스 - 460만 파운드(약 65억8260만 원)     
10.현대 정몽구 - 310만 파운드(약 44억361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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