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카 디자이너 프랭크 스티븐슨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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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카 디자이너 프랭크 스티븐슨을 만나다
  • 아이오토카
  • 승인 2019.01.2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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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전설 프랭크 스티븐슨이 맥라렌 전후의 생애를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ropley)에게 털어놨다. 그는 어떻게 디자인의 초점을 땅 위에서 하늘로 옮길 수 있었을까?

 

 

카 디자이너 중의 카 디자이너를 찾는다면 프랭크 스티븐슨이 첫 손에 꼽힌다. 그는 지난 30년에 걸쳐 페라리와 피아트, 미니와 마세라티를 설계했다. 영국에서는 BMW에서 부활한 미니 디자이너로 가장 유명하다. 이 차는 2001년 세상에 나와 꾸준히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이제 스티븐슨은 전혀 새로운 교통수단을 그리고 있다. ‘릴리움’(Lillium)이라는 독일 회사가 만드는 제트-전기 수직 이착륙 비행기다. 어쩌면 이 비행기는 2020년대 어느 시점이 되면 지금의 우버처럼 빌려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국 런던에서라면 히드로 공항부터 피카딜리까지의 단거리 여행에 알맞다. 스티븐슨에 따르면 ‘땅 위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여행’인 셈이다. 

 


우리는 런던 중심부에서 스티븐슨을 만났다. 사진기자가 무언가를 그리는 장면을 보여 달라고 하자 그는 인터뷰 내내 전기 시티카를 그렸다. 우리는 그가 쉬지 않고 차를 그린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스티븐슨에게 차 그리기는 레크리에이션과 창작을 합쳐놓은 작업이었다. 그 나이(60세) 또래의 다른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디자인 관리직으로 올라갔다. 따라서 연필을 잡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일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스티븐슨에게 일이라는 건 당연히 직접 창작하는 작업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 손을 더럽히려는 욕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생각도 하지 않고 그린다. 내 손이 알아서 그 작업을 하는 것 같다. 다른 다자이너들도 이렇게 한다. 그게 무엇이든 저절로 나온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피아트 500, 맥라렌 P1, 포드 에스코트 RS 코스워스, 마세라티 MC12

 

스티븐슨의 정식 디자인 교육은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아트센터 오브 디자인에서 끝났다. 이후 자동차 창작에 대한 충동이 비범한 성과를 거뒀다. 그의 히트작을 간단히 살펴보자. 포드 에스코트 RS 코스워스와 BMW의 신형 미니, 페라리 F430, 마세라티 MC12 경주차, 최신 피아트 500에 더하여 맥라렌 12C와 P1 등이 들어 있다. 그는 일생을 거의 자동차회사에 바쳤다. 그리고 2017년 말, 9년간 일한 맥라렌을 떠나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었다. “나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만드느라 오랜 세월을 보냈다.” 스티븐슨의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한 보다 좋은 방법이 있다고 믿었다.”

 


영국계 미국인인 스티븐슨은 헨리 부근의 자기 집에서 디자인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독일 뮌헨의 릴리움 본사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동시에 일주일에 이틀간 다른 자문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느 고객을 위한 가구 디자인도 포함됐다. “지금처럼 만족한 적이 없다. 디자인은 영혼의 황홀한 출구다.” 스티븐슨이 디자인에 뛰어든 것은 여러 가지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아프리카 북단 모로코의 항구도시 카사블랑카에서 노르웨이계 아버지와 스페인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래서 자동차보다는 낙타와 말의 중요성을 더 잘 알았다. 이후 스페인 남쪽 항구 말라가로 옮겼고, 아버지는 그곳에서 카 딜러를 열었다. 

 

스티븐슨의 디자인은 미니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 뒤 터키 이스탄불로 건너가 5~6년을 보낸(아버지는 미국의 항공기제작사 보잉을 위해 일했다) 그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한편 여름방학에는 말라가로 가서 아버지 딜러에 딸린 자동차 정비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즈음 재미로 자동차만 아니라 꽃과 동물을 쉬지 않고 그렸다. 또한 아버지의 작업장을 이용해 ‘자신의 첫차’ 피아트 124의 스타일을 바꿨다. 옆구리에는 핫로드 스타일의 불길도 그려 넣었다. 그 뒤 한층 비상하게 사정이 전개됐다. 스티븐슨은 카 딜러를 통해 모터크로스 레이스를 즐기던 친구를 만났다. 그 경기에 완전히 빠져든 그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일 년간 부지런히 경기장에 나갔다. 그는 모터크로스 바이크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처음에는 스페인의 주니어 경기대회에서 우승했고, 뒤이어 전국 성인 선수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그러자 혼다의 공식 워크스 모터크로스 팀이 그를 스카우트했고, 4년간 세계선수권전에서 톱10 라이더로 활약했다. 스티븐슨의 근육질 목덜미, 어깨와 팔에 그 증거가 남아 있었다.

 


“22살 때 아버지가 나를 불러 올해로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스티븐슨은 회상했다. “나는 레이스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3위와 5위, 7위에 수없이 올랐고 톱10에 당연히 들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시상대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30살에 접어들었을 때는 수많은 골절상을 입었고, 장래가 보이지 않았다. 방향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떤 교육이든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공부를 계속할 필요가 있었다. 나도 아버지가 옳다는 생각을 했다.” 이어 그는 “마침 미국 캘리포니아의 아트센터에 관한 자료를 읽은 적이 있었다. 거기서 자동차 디자인을 배울 수 있었고, 나는 스케치를 중단한 적이 없었다. 아트센터에 들어가려면 내 실력을 보여줄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자료를 가지고 응시했고, 합격했다. 운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최신 디자인은 <오토카>가 의뢰한 이 전기차다

 

1993년 스티븐슨은 수백 명의 지원자 중에서 뽑힌 30명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1986년 졸업할 때는 겨우 6명만 남았으니 얼마나 뛰어난 인재였던가! 이 6명 중에는 미래의 포르쉐 박스터 디자이너를 포함해 오리지널 크라이슬러 바이퍼 디자이너, 페라리 엔초 디자이너, 오리지널 두가티 몬스터(회사를 살린 걸작) 디자이너와 미래의 알파로메오 디자인센터 총책이 있었다. 스티븐슨이 가장 사랑하는 자기 작품을 고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가 가장 즐거웠던 프로젝트는 단연 마세라티 MC12였다. 기간이 아주 짧은데다 창의적이었고, 차가 잘 나왔다. 게다가 레이스에서 거의 무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매력적인 스토리는 1980년대 말의 미니였다. 스티븐슨은 “BMW가 로버를 사들였을 때 미니를 계속하느냐 중단하느냐를 결정해야 했다. 독일계 경영진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했다. 다만 큰 사랑을 받던 영국 아이콘을 개조하는 사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아주 신중하게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새 차 프로젝트는 2~3개 디자인팀의 경쟁을 통해 결정됐다. 그때 많은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국과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을 포함해 15개 팀을 지명했다. 우리 모두에게 차를 디자인할 기간을 1개월 줬다. 이후 일단의 전문 모델 제작진에게 5개월의 풀사이즈 모델 제작기간을 허용했다. 이때 팀 간의 연락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런 다음 게이던에 있는 지금의 영국자동차박물관 자리에서 모델을 전부 전시했고, 7명의 로버와 7명의 BMW 임원들이 작품을 평가했다”고 회상했다.

 

 

스티븐슨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의 모든 작품은 서로 크게 달랐다. “어느 디자이너는 6개월 동안 빈둥거리다 구형 미니의 덩치를 키워왔고, 또 다른 디자이너는 6개월간 줄곧 마리화나를 피워댔다.” 스티븐슨처럼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첫 달의 2주간 1959년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미니가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그려보았다. 1969년 미니, 안전에 과잉반응을 보인 끔직한 박스형인 1979년형, 다시 스포티하고 한층 정서적인 오리지널로 되돌아온 1989년형까지 모든 특성을 1999년의 디자인 제안에 담았다. 14명의 브랜드 임원들은 만장일치로 스티븐슨의 디자인을 골랐다. 이 이야기는 지금 촬영 중인 그의 일생을 다룬 다큐드라마에 고스란히 담겨 내년에 개봉한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미니 역사를 10년 단위로 구분했다. 아울러 스티븐슨의 일생을 담은 전기도 나올 예정이다.

 


흥미롭게도 스티븐슨은 이들 제품에 2009 미니 제안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80년대 말에 10년 뒤를 바라보고 구상한 미래형이었다. 스티븐슨은 지금 팔리고 있는 차와는 별로 닮지 않았다고 싱긋 웃으며 귀띔했다. 말을 바꾸면 현행 모델이 훌쩍 뛰어 미래형으로 나갈 수 있다는 암시였다. 아마 내년 언제쯤이면 프랭크 스티븐슨의 빛나는 생애를 맛볼 또 다른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스티븐슨이 가장 사랑하는 차>

 

프랭크 스티븐슨에게는 다른 모든 차를 압도한다고 믿는 카 디자인이 있을까? 인터뷰가 끝날 즈음 이 질문을 던지면서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디자인이 탄생하는 장면은 복잡하고, 카 디자이너는 동료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티븐슨은 너무나 솔직했다. “내가 보기에는 재규어 E-타입이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S1 쿠페. 완전히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만들었다. 그리고 오직 가장 뛰어난 디자인이 해낼 수 있는 길을 닦았다. 역사상 가장 관능적인 차다.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과 황홀한 비율을 갖췄다. 만일 그보다 더 밀고 나갔다면 만화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반대로 그보다 뒤로 물러났다면 밋밋했을 것이다. 이 차의 비율은 완벽하다.” 스티븐슨은 “앞으로 이와 같은 디자인이 필요하다. E-타입을 보면 당장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차는 몇몇 현대적 모델과 달리 미리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의 차는 곧잘 늘리고 사방으로 끌어당긴다. 흔히 컴퓨터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그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디자인을 할 때 어떤 것도 인간의 손을 이길 도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차세대 미니가 아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프랭크 스티븐슨은 연필로 이 오리지널 디자인을 그렸다. 종이에 가벼운 라인으로 시작하여 그가 좋아하는 부분을 점차 강조했다. 언제나 볼펜과 종이로 시작하는 그만의 작업방식이다. 이 스케치는 3.6m, 앞바퀴굴림, 전기 시티카로 2도어 해치백이다. 실내에 비해 전체 길이가 크게 압축됐고, 전기차가 디자인에 주는 패키지의 여유를 최대한 살렸다. 그는 신형 미니도, 자율자동차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본격적인 자율주행은 앞좌석을 뒤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훨씬 수직적인 윈드실드를 달아야 한다. 스티븐슨은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다른 차에 살릴 작정이다”라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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