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의 후폭풍에 3자 동맹이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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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의 후폭풍에 3자 동맹이 떨고 있다
  • 제임스 앳우드(James Attwood)
  • 승인 2018.12.2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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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곤이 체포된 지금 르노와 닛산, 미쓰비시는 어떻게 될까?

 

르노-닛산-미쓰비시 동맹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3자 동맹의 실질적인 설계가이자 그룹 대표인 카를로스 곤이 금융상품거래법 위반 혐의로 일본에서 체포됐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자가 불을 당긴 뒤 닛산 측은 자체 조사를 통해 나온 증거를 검찰에 제출했고, 64세의 곤은 곧바로 구속됐다.

 

닛산의 대표이사 그레그 켈리도 같은 혐의에 연루되어 잡혀 들어갔다. 곤은 세계 자동차계의 최대 그룹으로 꼽히는 3개 메이커의 회장으로 활약해왔다. 그는 다른 어느 카메이커 총수보다 회사의 일상적인 업무를 철저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닛산에서 밀려났고 미쓰비시 이사회도 뒤를 따를 전망이다.

 

그러나 곤은 르노 회장과 CEO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르노 이사회는 운영총책 티에리 볼로레를 CEO 보좌로 임명하고, 닛산이 자체 조사로 수집한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닛산은 ‘오랜 기간에 걸쳐’ 곤과 켈리가 부실신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회사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곤은 연봉을 축소 신고했고, 회사자산을 개인적인 사업에 이용했다.

 

그는 5년에 걸쳐 연봉 중 약 3400만 달러(약 486억 원)를 축소해 신고했다. 뿐만 아니라 가족 휴가 여행비를 회사공금으로 메웠고, 산하기관이 모은 닛산기금을 세계 각지에 4개 주택을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닛산 CEO 히로토 사이카와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부정행위 혐의에 절망, 혐오와 분노를 느낀다”고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번 사건으로 르노와 닛산 관계가 악화될 위험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곤에게 그처럼 큰 권력이 집중됐던 게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개인적인 의견을 밝혔다. 그는 “앞으로 우리는 특정개인에게 의지하지 않기로 했으며, 한층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곤은 닛산 전기차 개발에 앞장섰다 

 

사이카와 닛산 CEO와 르노 이사회는 다같이 3자 동맹에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곤의 혐의에 대한 쌍방의 서로 다른 처리방식이 앞으로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을 보여줬다. 따라서 3자 동맹을 완전히 하나의 기업으로 통합하겠다는 곤의 비전은 무너지고 말았다.

 


미쉐린에서 18년을 근무한 곤은 1996년 르노에 들어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당시 경영난에 허덕이던 남아메리카 디비전을 이끄는 중책을 맡았고, 대대적인 비용절감조치를 비롯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여 기업을 회생시켰다. 이후 르노는 닛산의 대주주가 됐고, 적자의 늪에 허우적대던 닛산을 되살릴 적임자로 곤이 지목됐다.

 


곤은 카리스마, 개방성과 직언, 실무에 정통한 경영자로 유명하다. 그는 닛산에 참여하면서 무자비한 개편 작업에 착수하여 성공을 거뒀다. 여러 공장을 폐쇄하고 인력을 감축했으며, 심지어 도쿄에 있던 회사본부를 더 값싼 요코하마로 옮겼다. 게다가 그는 전기차 기술의 예리한 선봉장이기도 했다. 이는 전기차의 새로운 길을 연 닛산 리프의 믿음직한 동력이었다.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2005년 곤은 닛산과 더불어 르노의 회장 겸 CEO로 등극했다. 그때부터 업계의 통합론자로서 두 메이커의 한층 긴밀한 관계를 다지기 시작했다. 2016년 닛산이 미쓰비시 주식을 사들이자 그 회사의 회장 자리도 꿰찼다. 3개 메이커가 합쳐지자 폭스바겐과 토요타에 맞서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곤은 공통 플랫폼 정책을 꾸준하게 밀었다. 또한 르노의 닛산 흡수통합에 관심을 드러냈다. 

 


곤의 영향력은 이미 3자 동맹의 경계를 넘어섰다. 그는 다우닝가의 총리관저에서 영국총리 테리사 메이를 만났고, 영국 선덜랜드에 있는 닛산 공장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한 뒤 브렉시트 문제를 논의했다. 곤은 프랑스에서도 거물이다. 특히 르노는 주식 일부를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2016년 프랑스 정부가 다른 주주들과 합세해 그가 제시한 임금안에 반대하자, 곤은 일전을 불사했다.

 


곤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업고 르노와 닛산 동맹은 세계 자동차시장의 주역 대열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하향식 경영스타일과 돌발적인 닛산 이탈은 3자 동맹의 미래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곤의 재임기간에 르노, 닛산과 미쓰비시는 단일 지도체제하에서 분리돼 있었고, 그동안 서로 다른 기업문화로 인해 긴장감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곤의 미래에 대해 세 메이커는 이제 어떻게 반응할까? 그리고 새로운 지도체제는 어떤 식으로 방향을 잡을까? 3자 동맹, 넓게는 세계자동차시장에 던지는 의미심장한 질문이다.  

 

<곤의 중대한 순간>

1999년 곤은 닛산 CEO에 올랐다. 당시 닛산은 156억 파운드(약 22조3236억 원)의 빚에 짓눌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3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세웠다. 그 기간 동안 일본에서 2만1000명이 직장을 잃었고 5개 공장이 문을 닫았다.

 

전기차의 야망
일찍부터 곤은 전기차 기술의 선두주자였다. 르노-닛산 동맹의 전기차 기술 개발에 약 40억 파운드(약 5조7240억 원)를 투자하여 닛산 리프와 르노 조에(ZOE) 개발에 앞장섰다. 

동맹의 성장
르노는 곤의 비전을 타고 러시아에서 라다의 모기업 아브토바즈를 손아귀에 넣었다. 아울러 닛산은 미쓰비시 주식을 사들였다. 현재 르노-닛산-미쓰비시 동맹은 세계 최대 그룹으로 손꼽힌다.

영국정부 지원
곤은 영국총리 테리사 메이를 만나서 다짐을 받았다. 브렉시트 이후의 관세면제 확약을 받고 닛산은 영국 선덜랜드 공장에서 차세대 캐시카이와 엑스-트레일을 만들기로 했다.

만화의 영웅
프랑스와 일본에서 곤의 사업수완은 그와 관련한 수많은 저서에 영감을 줬다. 일본의 청년만화잡지 빅 코믹 슈페리어에 그의 일대기를 담은 만화가 연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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