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블링 링 - 포르쉐 카레라 S 카브리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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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블링 링 - 포르쉐 카레라 S 카브리올레
  • 아이오토카
  • 승인 2013.10.2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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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화장을 하고 패셔너블하게 차려입은 채 카메라를 보고 순진한 얼굴로 소녀는 말한다. “그게 무슨 짓인 줄도 모르고 친구 따라 한 거예요.” 유명하고 부유한 할리우드 배우들이 몰려 사는 캘리포니아. 그곳에 사는 레베카와 친구들은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10대 소년소녀들인 그들은 이미 옷 입는 것이나 화장법이 어른 못지않다.

아니 웬만한 어른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근사하다.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다. 사회에 큰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파격을 계획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도둑질은 글자 그대로 ‘그냥 그렇게’ 시작되었다.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마크는 학교를 옮기고 그곳에서 레베카와 친해진다. 그리고 대화 중에 마크는 친구네가 여행을 가서 집이 비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레베카는 마크에게 함께 그 친구네 빈 집에 가보자고 한다.

마치 자신의 집에 온 듯 손에 닿는, 시선이 가닿는 물건들을 슬쩍슬쩍 집어대는 레베카를 보며 마크는 신기해하는데 그 집에서 그 둘은 급기야 자동차까지 몰고 나온다. 포르쉐 카레라 S 카브리올레.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 카레라 S 카브리올레는 이렇게 사건의 시작이 된다. 하나의 절도는 수많은 절도가 되고 한 대의 카레라 S 카브리올레는 다른 수많은 물건들이 된다. 이후 그들은 물건을 훔쳐 차로 나르면서 즐거워하고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른다. 결국 영화 속에서 자동차는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도구가 되며 그들의 범죄에 이용되는 도구가 되며 결국 덜미가 잡혀 호송되는 경찰차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된다.

감시사회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현대의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수많은 시선에 노출되고 있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CCTV, 방범카메라, 교통단속카메라, 시도 때도 없이 들고 찍는 폰카메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 그건 비단 파파라치에게 시달리는 연예인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당신 자신도 누군가의 카메라에 주연으로 조연으로 엑스트라로 수없이 출연했을 것이다.

당신이 인지했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숱한 카메라가 있는데도 아니, 그 카메라에 얼굴이 찍히고 그것이 덜미가 되는데도 말끔한 얼굴을 들고 남의 집에 들어가 스스럼없이 손을 대는 레베카와 아이들. 난감하다.

포르쉐 카레라 S 카브리올레. 그런 차가 주차되어 있는 캘리포니아의 부유하고 넓은 집.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 그런 동네에 사는, 부족할 것 없는 그 아이들은, 그러나 남의 집에 들어가 명품과 보석을 들고 나온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모르고 한 거라고, 큰 교훈을 얻었다고, 나중에 대중을 이끌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아아, 이 아이들이 21세기의 얼굴이라니… 모든 것이 가볍고 모든 것이 쉽고 모든 것이 단순한 이 아이들의 생각과 태도를 떠올리니 인류가 쌓아온 규칙과 질서와 예의와 가치가 일순간에 뒤죽박죽 되어버린다. 마크와 레베카가 처음 훔쳐낸 카레라 S가 아른거린다. 그 때 그 아이들이 카레라 S를 몰고 나오지 않았다면, 물건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면… 만약 그랬다면 이들의 얼굴이 달라졌을까?

글: 신지혜(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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