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세상의 모든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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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세상의 모든 계절>
  • 아이오토카
  • 승인 2011.05.17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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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의 내면과 닮은 오펠 코르사

언제나 덜렁대고 정신없고 술과 담배를 좋아 하고 인생의 외로움 속에서 사는 메리는 톰과 제리의 집에 수시로 찾아와 그들에게서 식사대접을 받고 가족의 온기를 느끼며 살아간다. 아들 조이가 여자친구 케이트를 데려오고 명랑하고 밝고 지적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케이트는 톰과 제리의 마음에 쏙 든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불쑥 이들 가족을 방문한 메리가 케이트를 보더니 샐쭉해지고 그녀의 행동으로 조이를 비롯한 가족들이 ‘이모’처럼 여기던 메리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톰과 제리의 가족에게 얹혀있던, 그들의 주위를 빙빙 돌던 메리라는 조각은 툭 떨어져나간다. 아내와 사별한 형 로니가 머물게 되고 조이와 케이트가 오기로 한 날, 하필 마음을 걷잡을 수없던 메리는 헝클어진 상태로 그 집을 찾는데 인정상 그녀를 물리칠 수 없던 그들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지만 그녀의 존재는 물에 뜬 기름과도 같다. 추운 겨울 같은 메리의 마음. 그 싸늘함과 쓸쓸함이란…

영국 리얼리즘의 거장으로 꼽히는 마이크 리 감독은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day)>에 우리의 삶을 담아버렸다. 어쩌면 마이크 리가 제시한 ‘이 정도’의 인물들이 아마도 우리의 관계 정도가 아닐까. 오랜 시간 연을 맺고 집에 드나들지만 가족은 아닌, 가족과는 다른, 가족은 될 수 없는 누군가.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그래서 오래된 와인처럼 편안하고 풍미가 좋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어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공유된 기억을 나눌 수 있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어져있는 누군가. 그리고 ‘형제’라는 이름을 가진, 어릴 때의 삶과 기억 속에는 항상 존재하지만 어른이 되어 각자의 길을 찾고 난 이후의 삶과 기억에는 간간이 등장하게 되는, 남처럼 살지만 남은 아니고, 가족이긴 하지만 가족은 아닌 누군가…

톰과 제리의 선택은 질서와 아름다움의 표본이다. 그들이 지내온 시간 속에서의 선택들은 그래서, 반성은 있을 수 있어도 후회는 없다. 그것은 두 사람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모든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고 그들이 모는 차에서도 드러난다. 볼보 V70 2.5T. 외양부터 믿음직하고 군더더기 없는 이 차는 꽤 오래 부부와 함께 해온 나날이 느껴지는데 허례가 없는 그들처럼 볼보 또한 집과 농장을 오가며 노동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형의 집에서 형을 데려오는 인간애를 드러내주며 용도 외에 다른 의도가 없는 건실함의 표상이다.

메리의 선택은 무질서와 아름답지 못함의 한예이다. 젊은 날 자신이 선택했던 남자는 유부남이었고 나이든 지금 마음이 향해있는 남자는 20년의 시간 속에서 조카처럼 커 온 조이이며 자신이 선택해서 산 차는 엉망이고 사소한 것, 소소한 것에도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고(그 대상은 결국 제리와 톰이다) 자신의 존재가 지인들 사이에 박혀있는 돌과 같음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언제나 불쑥불쑥 나타나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메리의 차 역시 끊임없는 핑계거리가 된다. 차를 살까 말까 부부에게 의논하는 화제가 되고 어느 날 갑자기 구입한 중고 오펠 코르사(opel corsa)는 잦은 고장으로 도움을 받을 이유가 되고 배기량조차 모르는 메리에게 ‘1.4라고 적혀있으니 1,400cc’라고 가르쳐주는 톰의 친절의 동기가 된다. 빨간 외양의 낡은 소형차인 코르사는 어딘가 세련되지 못하지만 아직도 자신은 괜찮다고 여기는 듯한 메리와 참 닮아있고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나 속은 자주 고장 나는 코르사는 메리의 내면과도 참 닮아있다.

톰과 제리의 관계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중심에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관계들 속에서 모범처럼 빛나고 있다. 그래서 모범답안이 비춰볼 때 절대적으로 틀려버린 문제의 답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메리의 모습이 그토 록 쓸쓸하고 저린 것인지도 모른다.

글 · 신지혜 (아나운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오펠 코르사 현행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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