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지상에 잠시 착륙한 우주선처럼. 이제 숨을 고르고 느린 걸음으로 시간여행을 할 터이다. 대각선으로 길 건너 자리한 포르쉐 공장에서는 7세대 신형 991들이 생산되고 있다. 지근거리에서 과거의 911들이 그것을 지켜보며 영광의 시간들을 반추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에 따라 포르쉐 클래식(Porsche Classic)은 공랭식 포르쉐 911 전 차종을 대상으로 교체 부품 구입부터 완전한 복원 작업에 이르는 광대한 범위의 제조사 기술 지원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포르쉐의 독창성과 진본성을 유지하는 것. 현재 주문이 가능한 재고 부품의 수만도 3만5천 개가 넘는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주문이 가능하고, 국제 무역 중계상을 통해 700개 포르쉐 센터로 공급된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올라가면 포르쉐 역사로 향하는 타임머신 문이 열린다. 맨 처음 만나는 모델은 1939년 타입 64(Type 64)의 알루미늄 보디.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가 만든 최초의 포르쉐다. 스피드에 대한 열정을 담은 에어로 다이내믹 스타일은 이후 모든 포르쉐의 고유한 유전자가 된다. 타입 64는 당시 최고시속 130km를 냈다.
초대 911부터 현행 7세대 991까지 전시장을 채운 40대의 911들은 시간을 초월해 어떻게 그들이 당대의 전설이 되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이기도 한 포르쉐 911은 스포티함과 일상적인 실용성, 전통과 혁신, 차별성과 사회적 수용성, 디자인과 기능성 등 서로 상반된 개념들을 하나로 융합했다.
자동차역사상 이토록 오랫동안 모델의 연속성을 이어온 차는 극히 드물다. 911은 오늘날 모든 스포츠카의 기준일 뿐 아니라 포르쉐 시리즈 내에서도 하나의 척도를 이루고 있다. 포르쉐의 모델이 다양화되고 있지만 언제나 그 중심에 911이 있고, 911의 감성이 모든 시리즈에 녹아 있는 것이다.
포르쉐 356의 후속모델인 911은 출시부터 스포츠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초대 911은 1963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타입 901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지만, 1964년 출시를 앞두고 911로 개명됐다. 이 차는 공랭식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을 얹고 130마력을 뿜어냈으며 당시로서는 매우 빠른 최고시속 210km를 냈다.
이듬해에는 조금 덜 빠른 속도로 운전하길 원하는 운전자들을 위해 4기통 엔진을 얹은 보급형 포르쉐 912를 내놓았다. 1966년에는 911 S가 등장했다. 160마력을 자랑하는 이 차는 911 최초로 훅스(Fuchs) 디자인의 알로이 휠을 달았다. 1966년 말 시장에 나온 911 타르가는 인상적인 스테인레스 스틸 롤 바를 달아 스타일뿐 아니라 ‘매우 안전한 컨버터블’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포르쉐 911은 엔진 배기량을 1969년 2.2L에서 1971년에 2.4L로 키우며 점점 더 강력해져 갔다. 1972년 출시된 911 카레라 RS 2.7은 1,000kg에 불과한 중량으로 210마력을 뿜어내 그야말로 적수가 없었다. 양산차로는 세계 최초로 리어 스포일러인 덕테일(ducktail)을 달아 강력한 이미지를 더했다.
포르쉐 기술자들은 첫 번째 911이 탄생한 지 10년 후, 911을 대대적으로 개량했다. G-모델로 알려진 새로운 911은 1973년부터 1989년까지 생산되며 911 시리즈 가운데 최장수를 누렸다. 이 차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인상적인 벨로우즈 스타일의 범퍼로, 새로운 미국 충돌 테스트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이루어진 혁신의 결과물이다.
3점식 안전벨트를 기본으로 달고 헤드레스트 일체형 시트도 탑승자 안전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1974년에는 911 역사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3.0L 260마력 엔진과 인상적인 리어 스포일러로 무장한 최초의 911 터보가 출시된 것이다. 럭셔리와 고성능을 독특하게 조합한 ‘터보’는 포르쉐 브랜드의 대명사가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있던 1988년, 포르쉐는 911 카레라 4(타입 964)를 발표했다. 생산된 지 15년째를 맞이한 911은 85%의 부품을 새롭게 설계해 오래도록 경쟁력을 지닐 현대적인 자동차로 거듭났다. 공랭식 수평대향 3.6L 엔진은 최고출력 250마력을 냈다. 964와 이전 모델과의 가장 큰 외관상의 차이는 공기역학적인 폴리우레탄 범퍼와 전동 개폐식 리어 스포일러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학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두 차종의 공통점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계자의 목표는 스포티한 성능은 물론, 편안한 운전환경을 통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덕분에 운전자는 ABS, 팁트로닉 자동변속기, 파워 스티어링, 에어백 등의 혜택을 누리게 됐다.
1990년부터는 쿠페, 컨버터블, 타르가 모델에 이어 964 터보도 주문이 가능했다. 초기에는 입증된 성능의 수평대향 3.3L 엔진을 적용했지만, 1992년부터 터보는 3.6L 360마력 엔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911 카레라 RS, 911 터보 S, 911 카레라 2 스피드스터는 자동차 수집가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모델로 꼽힌다.
내부적으로 코드네임 993으로 불리는 이 911은 지금도 많은 포르쉐 운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라인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일체형 범퍼로 조화로운 인상을 강조했고, 헤드램프 모양을 원형에서 PES(Poly-Ellipsoid)라는 형태로 바꿔 전방부를 기존 모델보다 더 납작하게 설계했다.
993은 잘 다듬어진 신뢰할 수 있는 차로 인정받으며, 911 최초로 새로 설계된 알루미늄 섀시를 채택해 뛰어난 민첩성도 자랑했다. 또한 터보 버전 최초로 트윈터보 엔진을 얹어 1995년 ‘세계에서 가장 공해가 적은 양산 엔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4WD 터보 모델은 자동차 제조사 가운데 혁신적인 중공 스포크(hollow-spoke) 알로이 휠(스포크 내부가 비어 있는 휠) 역시 최초로 도입했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생산된 타입 996은 911 역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이룬 모델로, 전통적인 911의 특징을 희생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완전히 새로운 911로의 변신을 꾀했다. 완전히 달라진 이 새로운 세대의 911은 최초로 수랭식 수평대향 엔진을 얹었다.
4밸브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911은 300마력을 내며, 유해 배기가스 수치, 소음 및 연비 면에서도 선구적이었다. 이 차는 911의 전통적인 라인을 새롭게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0.3의 뛰어난 공기저항계수(cw)를 기록했다. 996의 전반적인 윤곽은 박스터와 많은 부품을 공유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유사성을 보였다.
포르쉐는 996을 베이스로 여러 종류의 가지치기 모델을 선보이며 전례 없는 제품 공세를 펼쳤다. 모델 범위에서 가장 주목할 차종은 1999년 시판된 911 GT3로, 카레라 RS의 전통을 계승했다. 그리고 2000년 가을에는 세라믹 브레이크를 기본으로 단 911 GT2도 태어났다.
2004년 7월 포르쉐는 마침내 코드네임 997로 불리는 차세대 911 모델인 911 카레라와 911 카레라 S를 출시했다. 997은 911의 전통적 디자인으로 회귀하여 전면부에 별도의 등화장치가 추가된 타원형의 투명유리로 덮인 프론트 헤드라이트를 되찾았다. 이 차는 디자인은 물론 성능 역시 인상적이었다.
카레라의 수평대향 3.6L 엔진은 325마력을 자랑했고, 새로 개발된 카레라 S의 3.8L 엔진은 355마력 이상의 힘을 뿜어냈다. 구동장치도 대폭 손을 보았다. 카레라 S의 경우에는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 Porsche Active Suspension Management)를 기본으로 갖추었다. 2006년 포르쉐가 선보인 911 터보는 양산차 최초로 가변 터빈 지오메트리 방식의 터보차저를 휘발유 엔진에 결합했다.
991이라는 코드네임이 붙여진 이 7세대는 911 역사상 가장 큰 기술적 도약을 실현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스포츠카 클래스에서 벤치마킹이 되어온 911은 성능과 효율성의 기준을 한 단계 더 높인 세대로 거듭났다. 새롭게 설계된 섀시는 개선된 휠베이스와 넓어진 트레드, 더욱 강건해진 타이어를 달았다.
인체공학적으로 최적화된 인테리어 역시 더욱 스포티하고 편안해졌다. 공학적으로 991은 더 적은 연료로 더 강력한 파워를 제공하는 ‘포르쉐 인텔리전트 퍼포먼스’(Porsche Intelligent Performance) 철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7세대로 접어들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911만의 특징은 그대로다. 낮고 늘씬한 실루엣, 탄탄한 표면, 정밀하게 성형된 디테일로 디자인 측면에서도 911의 미학을 한층 발전시켰다는 평가다. 911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