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 향한 시트로엥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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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 향한 시트로엥의 변신
  • 힐튼 할러웨이
  • 승인 2013.04.10 11:3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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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시트로엥 피카소 오너들이 한 벌판을 가득 채웠다. 거기서 2005 사라 피카소 디자이어 복원의 열띤 세부 토론이 벌어졌다. 과연 이런 장면이 연출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없다. 시트로엥은 영리하고 혁신적이며 얼핏 공격적인 개성으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어지간히 효율적인 유럽형 MPV에 정열을 불태우기는 어렵다.

지난 수십 년간 시트로엥의 눈부신 역사적 유산이 점차 희미해진 것은 비극(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이 아닐 수 없다. 일련의 전략적 실수와 지나치게 야심적인 기술과 다양화가 불러일으킨 업보였다. 게다가 시트로엥은 1973년의 석유위기와 뒤따른 경기후퇴에서 완전히 회복될 수 없었다. 현재 시트로엥은 제법 인기를 누리는—비록 열광적인 환영을 받지는 못하지만—모델을 거느리고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 이 브랜드가 적어도 3번 자동차산업에 실로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트락숑 아방, DS와 2CV를 생각해보라. 이들은 고효율 기술과 첨단적인 럭셔리를 담아냈다. 그밖의 수많은 모델도 미래를 내다보고 깊은 개성을 간직했다. 서스펜션에서 깜빡이 작동법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었다. 전통적인 시트로엥은 수많은 부품을 원형에서 조금씩 손질한 것들이었다. 한데 40년간 철저히 주류 메이커가 되려고 노력한 끝에 일정한 결론에 도달했다. 올해 인터내셔널 시트로엥 카 클럽 랠리가 남부 영국의 해로게이트에서 열렸다. 시트로엥의 영국지사가 나를 그 자리에 초청했다.

게다가 생산라인을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오른쪽 운전석 C6 세단을 몰고 그 자리에 나가게 됐다. 참으로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C6은 강렬하고 대담하게 시트로엥의 과거를 되살렸다. 게다가 중역형의 콘셉트를 틀어쥐고 있는 독일에 맞서려는 치열한 시도이기도 했다. C6은 1999년 제네바모터쇼에 C6 리나즈 콘셉트로 첫선을 보였다. 시계를 멈추게 한 1955 DS의 충격을 되살리려는 담대한 시도였다. 콘셉트 리나즈를 양산 C6으로 탈바꿈하는 데 거의 6년이 걸렸다.

중역형을 제작하기 위해 돈을 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사실이었다. 이처럼 콘셉트를 탈바꿈하는 과정에 놓친 것은 별로 없었다. 최고수준의 시트로엥 하이드라액티브 서스펜션을 깔고 DS와 CX의 부두 깡패형 인상을 극적으로 살렸다. 목표는 한 해 판매량 2만대였다. 그러나 한 해 생산량은 결코 8천대를 넘지 않았고, 곧 1천대를 약간 넘는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C6과 상당히 친숙하다. 장기시승차로 몇 달을 함께했기 때문. 무척 내 마음에 들었지만 프리미엄카와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차였다. 운전성능에 의해 좌우되는 이 차급에서 드라이버와 환경을 갈라놓은 독특한 모델이었다.
해로게이트로 가는 장거리 여행에서 누에고치 안에 들어있는 듯한 기분은 놀라웠다. 스티어링은 가벼웠고 아득했다. 하이드로액티브 서스펜션은 요철 이외의 감각을 거의 모두 걸러내는 탁월한 기능을 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수백 개 경로를 거쳐 그밖의 모든 감각을 차체 구조에 들여보냈다. 명문 독일 브랜드가 의도적으로 살려낸 예리하고 직접적인 운전 감각은 C6에서 아예 찾을 수 없었다.

시트로엥은 유럽의 라이벌들과 다른 특징이 있었다. 럭셔리카를 단순히 중역의 ‘업무용’으로 바꿔놨을 뿐이었다. C6을 몰고 달리다보니 휴대폰을 둘 공간도, 입을 벌리고 있는 컵홀더(대시보드에 작은 회전식 캔홀더가 있기는 하지만)도 없었다. 하지만 큼직한 재떨이는 있었다. 내게 이건 진짜 덤이었다. C6은 근본적으로 고전적인 GT. 그 전에 나온 대형 시트로엥과 르노 25 및 푸조 504와 같았다. 이들은 국토가 동서남북으로 광활한 프랑스를 힘들이지 않고 달릴 수 있게 설계했다.

지독한 줄담배 운전자를 험한 도로의 장거리 여행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치열하게 능률적인 독일 기업들이 이 회의에서 저 회의장으로 불나게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C6은 슬로푸드, 긴 휴가와 전통적으로 서두르지 않는 가족생활의 프랑스에 어울렸다. 실제로 해로게이트에서 프랑스식 가족생활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프랑스 부모와 어린 자녀들은 한 자리에서 카드놀이나 공놀이를 했다. 틀에 박힌 표현을 빌리면 이게 바로 프랑스식 생활이다.

한데 이마저 콘셉트에서 양산차로 바뀌는 과정에 프랑스의 독특한 풍미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프랑스식은 시장에서 점차 밀려나고 말았다. C5 신차발표회 당시의 광고는 “영락없는 독일형”이라고 했다. 본질적으로 프랑스적인 차를 팔려는 생뚱한 전술이었고, 시트로엥이 직면한 장벽을 뚜렷이 드러냈다. 따라서 C6이 사라지면, 차세대 C5에 이르러 하이드라액티브 서스펜션 스타일을 버릴 수밖에 없다. 시트로엥의 기술적 에센스로 받아들이고 DS가 굳힌 바로 그 서스펜션을 말이다.

장차 시트로엥은 재정적인 구원을 DS 스타일 정신에서 찾아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속살의 혁신을 화려한 디자인으로 갈아치운다는 말이다. 가장 프랑스답지 않은 방식이어서 유럽대륙에서 “비까번쩍”이라고 경멸을 당할 위험이 없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팔리는 차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시트로엥, 해로게이트에서 봤던 프랑스 정신을 담은 시트로엥은 끝났다. 이제 시트로엥은 성공 이외에 갈 길이 없다.

글: 힐튼 할러웨이(Hilton Hollo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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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de 2013-05-10 12:56:55
이런기사 좋네요. 우리나라에서도 브랜드부터 제대로 알려야 차가 팔릴지

racer425 2013-05-02 10:30:32
사실 회사 인지도만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자동차인 것 같은데..
회사 인지도가 아쉽네요. DS3.. 디자인이나 다른 측면에서 끌리는 자동차인데..
내가 싱글이었다면 당장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