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CLS 슈팅 브레이크, 이름만 멋진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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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CLS 슈팅 브레이크, 이름만 멋진 게 아니야
  • 이경섭
  • 승인 2013.03.13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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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이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했다더니 우리가 꼭 그 짝이다. 왜건을 왜건이라 부르지 못하니 실로 답답하다. 전 세계에서 우리처럼 왜건을 천대하는 국민도 없을 거다. 유럽만 해도 해치백이며 왜건이 거리에 넘치고 발에 차인다. 프리미엄 브랜드도 세단보다 왜건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우리는 왜건을 천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짐차라는 이유에서다. 똑같은 성능에 짐 공간을 늘렸으니 얼씨구나 고맙다고 해야 정상인데 짐이나 싣지 사람 탈 차 아니라며 무시해온 게 우리다.

아반떼 투어링, 누비라 스패건 같은 이름을 기억하는가? 혹시나 하고 나왔다가 역시나 하고 역사 뒤편으로 조용히 사라진 불쌍한 국산 해치백들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국산차는 물론이려니와 수입차는 본토에 짱짱한 왜건을 두고도 언감생심 가져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겨우 발끝을 들이밀어 본 폭스바겐 파사트 바리안트나 푸조 508SW 같은 괜찮은 차들도 여지없이 홀대를 당했다. 그러나 이건 어제까지의 일이다. 오늘은 달라졌다.

무려 ‘벤츠 왜건’이다. 그런데 이 이름으로는 절대 부르지 말기로 하자. 왜건은 역시 수입차 브랜드가 가장 무서워하는 네이밍이니까. 고유의 이름이 있다. 슈팅 브레이크(Shooting Brake). 슈팅은 사냥을 뜻하고 브레이크는 영국에서 큰 4륜마차를 이르는 말이니 뜻이야 자명하다. 귀족들이 사냥을 갈 때 타고 가는 마차라는 얘기다. 유래도 이름만큼이나 폼 난다. 귀족의 사냥용 차라니… 이 차를 사면 동창 모임에서 으스댈 스토리가 생긴단 얘기다.

사냥 갈 땐 장총도 실어야 하고 사냥개도 태워야 하며 먹을 것이며 가재도구를 바리바리 싸들고 갈 테니 짐 공간이 넓어야 했겠지. 혹시나 여우나 멧돼지를 잡으면 차에 싣고 돌아와야 하고 말이지. 메르세데스 벤츠 엠블럼을 단 ‘사냥용 마차’는 아닌 게 아니라 해치를 열고 뒷좌석을 앞으로 눕히면 운 좋게 엘크 한 마리쯤 사냥해도 별 고민 없이 집어넣을 만큼 넓은 화물 공간이 펼쳐진다. 시트 폴딩 레버는 트렁크 안쪽 테일램프 뒤편에 있어서 한 손으로 당기면 시트가 납죽 엎드린다. 실용성만으로는 벤츠 중에 단연 갑이다.

실용성도 실용성이지만 귀족들은 ‘뽀대’를 따진다는 점에서 디자인도 모른 척해선 안 된다. 왜건이면 꽁무니가 두툼해서 둔탁하게 보여야 정상일 것 같은데 슈팅 브레이크는 실루엣이 상당히 멋지다. 기다란 보닛에서 지붕을 거쳐 해치 뒤쪽으로 흐르는 선이 매끈하다. 뽑아낼 수 있는 최상의 균형미를 그려내기 위해 담당 디자이너들 머리털 좀 빠졌을 것 같다. 옆에서 보건 뒤에서 보건 어색함이 없다. 그러니 “이 차는 왜건이 아니야. 세상에 없던 차 5도어 쿠페라고” 강력 주장하는 벤츠에게 별 아쉬움 없이 선뜻 동의하게 된다. 쿠페의 특징인 프레임 없는 도어를 고집한 것도 새로운 장르로 명명되고자 한 집착의 흔적이다.

실내는 고급스럽고 잘 정돈돼 있다. 있을 곳에 정확히 배치된 스위치들이며 매끈한 조작감이 과연 프리미엄의 역사를 기록해온 브랜드답다. 재질이며 디테일, 전체 마무리는 어느 한곳 흠 잡기 어렵다. 하지만 딱 하나, 커맨드 컨트롤은 여전히 적응이 쉽지 않다. 지난호 아우디 A5 스포트백 시승기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프리미엄의 힘은 직관적인 매뉴얼에서도 나온다. 특히 내비게이션은 왜 굳이 이렇게 조작하도록 설계했는지 정말 미스터리하다. 컨트롤러를 하나하나 돌려가며 가갸거겨 찍다보면 한글을 처음 배우는 유치원생 기분이 든다.

그냥 손가락으로 툭툭 누르게 만들면 안 되나? 게다가 내비게이션 목적지 검색에서 명칭을 아예 입력할 수가 없다. 주소 검색도 도로명을 쓰는 새 주소 방식이라 시승하는 며칠 동안 여러 번 답답했다. 가로수길 카페에 가려는데 이름만 알아서는 검색할 수가 없다. 주소를 알아도 새 주소를 알아야 하는 식이다. 이런 건 전혀 프리미엄답지 않다. 하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하겠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찍는 건 고급스런 손목받침대에 손을 올리고 점잖게 컨트롤러를 돌리는 것보다 우아해 보일 리 없을 테니까. 게다가 운전 중 스위치 조작은 위험하기도 하니까…라는 건 순진한 생각이고, 실은 도로명 검색이 일반적인 유럽 방식이라 그렇다.

이것 말고는 트집 잡을 만한 게 없다. 나처럼 어디론가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는 가장이라면 다 필요 없고 이 차 하나면 평생 해로할 수 있을 것 같다. 며칠간의 오토캠핑에도 좋고 낚시 여행에도 끝내주겠는데 혹시 텐트가 없어도 문제없을 만큼이다. 시트를 접으면 마누라 손잡고 나란히 짐칸에 누울 수도 있다. 물론 그 순간 천장으론 별이 가득 쏟아질 것이고. 또 나중에 아이들 출가하면 김장 보따리도 날라다줘야 할 테니 이만한 짐칸은 있어야겠지. 아마도 그 동네에서 가장 멋쟁이 시아버지로 소문날지도 모른다. 아, 생각만 해도 근사하다. 쓸모 있는 차가 인생에 주는 기쁨은 유효기간이 길다.

그런데 이렇게 칭송을 늘어놓자니 왠지 가슴 한쪽이 자꾸 저려와서(전형적인 지름신 강림 증세다) 결정적인 흠을 하나 더 찾아내야겠다. 이름만 그럴싸하지 실제로 사냥을 갈 땐 전혀 쓸모가 없단 거다. 무거운 후륜이라 산길에서 갑작스레 눈이라도 만나면 고립되기 십상이다. 그러면 아마도 사슴을 생포해 재갈 물려 짐마차로 끌어야 할지 모른다. 공교롭게도 시승날 저녁에 습기 잔뜩 머금은 눈이 내렸다. 하필이면 모임 장소가 김포시 근방 어디쯤이었고 모임에 가져가서 귀족의 사냥이니 어쩌니 하면서 폼을 있는 대로 쟀건만 막상 돌아오는 길에 눈이 살짝 쌓인 야트막한 고갯길을 못 넘어 체면을 구겼다.

그런데도 사냥이 뭐 어쩌고 어쨌다고? 슈팅 브레이크란 이름엔 4매틱 모델이 필요하다. 짐 공간이 크면 힘도 세야 한다. 레터링은 250이지만 직렬 4기통 2.2L 디젤 엔진이 장착된다. 최대출력 204마력에 1,600rpm에서부터 터지는 최대토크는 51.0kg·m에 달한다. 시트를 접으면 1,550리터나 되는 공간에 무거운 짐을 가득 실어도 거뜬하게 달릴 수 있을 만큼이다. 7단 G 트로닉 플러스가 조합돼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7.8초, 최고속도는 235km에 달한다. 이건 마치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류현진이 달리기까지 잘하는 격이다. 이러고도 연비는 15.0km/L에 달하니 정말 착하기도 하지.

공회전에서 디젤엔진 특유의 잔진동은 없을 수 없지만 주행 중 정숙성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하만카돈 오디오 시스템이 소음 때문에 아쉬울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방향지시등이 깜박이는 소리는 너무 크고 투박해서 마음에 안 든다. 이런 소소한 아쉬움이야 무시해도 좋을 만큼 주행감각은 뛰어나다. 커다란 체구가 몸놀림이 사뿐하다. 급격한 코너링에서 과격하게 몰아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와인딩과 요철 구간에서 체감되는 에어 서스펜션의 질감도 근사하다. 토크가 좋은 만큼 저속에서도 발끝 움직임이 경쾌한데 고속 영역에서 쭉 뽑아주는 가속감은 350 휘발유 모델 부럽지 않을 만큼 후련하다.

벤츠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더구나 8천9백만원이나 하는 차에서 실용성이란 덤 혹은 부록 같은 의미다.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스타일이 좋아서 다행이란 뜻이다. 제아무리 쓸모가 있어도 예쁘지 않으면 쳐다보지 않는다. 우린 여전히 왜건을 천대하는 습성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으니까. 다행히 슈팅 브레이크는 실용성보다는 스타일이 백 배는 더 멋진 차다.

글: 이경섭, 사진: 김동균 기자

MERCEDES-BENZ CLS 250 CDI SHOOTING BRAKE
가격: 8천900만원
0→시속 100km 가속: 7.8초
최고시속: 235km
복합연비: 15.0km/L
CO₂ 배출량: 131g/km
무게: 1840kg
엔진: 직렬 4기통, 2143cc, 디젤
최고출력: 204마력/3800rpm
최대토크: 51.0kg·m/1600~1800rpm
변속기: 7단 자동
서스펜션(앞/뒤): 멀티링크 코일스프링/ 멀티링크 에어스프링
휠: (앞/뒤 모두)8.0J×17
타이어: (앞,뒤 모두)245/45 R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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