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 투어링, 누비라 스패건 같은 이름을 기억하는가? 혹시나 하고 나왔다가 역시나 하고 역사 뒤편으로 조용히 사라진 불쌍한 국산 해치백들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국산차는 물론이려니와 수입차는 본토에 짱짱한 왜건을 두고도 언감생심 가져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겨우 발끝을 들이밀어 본 폭스바겐 파사트 바리안트나 푸조 508SW 같은 괜찮은 차들도 여지없이 홀대를 당했다. 그러나 이건 어제까지의 일이다. 오늘은 달라졌다.
사냥 갈 땐 장총도 실어야 하고 사냥개도 태워야 하며 먹을 것이며 가재도구를 바리바리 싸들고 갈 테니 짐 공간이 넓어야 했겠지. 혹시나 여우나 멧돼지를 잡으면 차에 싣고 돌아와야 하고 말이지. 메르세데스 벤츠 엠블럼을 단 ‘사냥용 마차’는 아닌 게 아니라 해치를 열고 뒷좌석을 앞으로 눕히면 운 좋게 엘크 한 마리쯤 사냥해도 별 고민 없이 집어넣을 만큼 넓은 화물 공간이 펼쳐진다. 시트 폴딩 레버는 트렁크 안쪽 테일램프 뒤편에 있어서 한 손으로 당기면 시트가 납죽 엎드린다. 실용성만으로는 벤츠 중에 단연 갑이다.
실내는 고급스럽고 잘 정돈돼 있다. 있을 곳에 정확히 배치된 스위치들이며 매끈한 조작감이 과연 프리미엄의 역사를 기록해온 브랜드답다. 재질이며 디테일, 전체 마무리는 어느 한곳 흠 잡기 어렵다. 하지만 딱 하나, 커맨드 컨트롤은 여전히 적응이 쉽지 않다. 지난호 아우디 A5 스포트백 시승기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프리미엄의 힘은 직관적인 매뉴얼에서도 나온다. 특히 내비게이션은 왜 굳이 이렇게 조작하도록 설계했는지 정말 미스터리하다. 컨트롤러를 하나하나 돌려가며 가갸거겨 찍다보면 한글을 처음 배우는 유치원생 기분이 든다.
이것 말고는 트집 잡을 만한 게 없다. 나처럼 어디론가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는 가장이라면 다 필요 없고 이 차 하나면 평생 해로할 수 있을 것 같다. 며칠간의 오토캠핑에도 좋고 낚시 여행에도 끝내주겠는데 혹시 텐트가 없어도 문제없을 만큼이다. 시트를 접으면 마누라 손잡고 나란히 짐칸에 누울 수도 있다. 물론 그 순간 천장으론 별이 가득 쏟아질 것이고. 또 나중에 아이들 출가하면 김장 보따리도 날라다줘야 할 테니 이만한 짐칸은 있어야겠지. 아마도 그 동네에서 가장 멋쟁이 시아버지로 소문날지도 모른다. 아, 생각만 해도 근사하다. 쓸모 있는 차가 인생에 주는 기쁨은 유효기간이 길다.
그런데도 사냥이 뭐 어쩌고 어쨌다고? 슈팅 브레이크란 이름엔 4매틱 모델이 필요하다. 짐 공간이 크면 힘도 세야 한다. 레터링은 250이지만 직렬 4기통 2.2L 디젤 엔진이 장착된다. 최대출력 204마력에 1,600rpm에서부터 터지는 최대토크는 51.0kg·m에 달한다. 시트를 접으면 1,550리터나 되는 공간에 무거운 짐을 가득 실어도 거뜬하게 달릴 수 있을 만큼이다. 7단 G 트로닉 플러스가 조합돼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7.8초, 최고속도는 235km에 달한다. 이건 마치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류현진이 달리기까지 잘하는 격이다. 이러고도 연비는 15.0km/L에 달하니 정말 착하기도 하지.
벤츠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더구나 8천9백만원이나 하는 차에서 실용성이란 덤 혹은 부록 같은 의미다.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스타일이 좋아서 다행이란 뜻이다. 제아무리 쓸모가 있어도 예쁘지 않으면 쳐다보지 않는다. 우린 여전히 왜건을 천대하는 습성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으니까. 다행히 슈팅 브레이크는 실용성보다는 스타일이 백 배는 더 멋진 차다.
글: 이경섭, 사진: 김동균 기자
MERCEDES-BENZ CLS 250 CDI SHOOTING BRAKE
가격: 8천900만원
0→시속 100km 가속: 7.8초
최고시속: 235km
복합연비: 15.0km/L
CO₂ 배출량: 131g/km
무게: 1840kg
엔진: 직렬 4기통, 2143cc, 디젤
최고출력: 204마력/3800rpm
최대토크: 51.0kg·m/1600~1800rpm
변속기: 7단 자동
서스펜션(앞/뒤): 멀티링크 코일스프링/ 멀티링크 에어스프링
휠: (앞/뒤 모두)8.0J×17
타이어: (앞,뒤 모두)245/45 R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