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와 단둘이 단란하게 살아가는 여자가 있다. 화분의 꽃처럼 싱그러운 여자, 벽을 넘어 들려오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삶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위로해준다. 살아갈 의미를 준다. 그녀의 이름은 화선이다. 그런데 그녀가 사람을 죽였다. 우발적이고 정상참작이 충분한 살인이지만 어쨌든 양형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래서 그가 화선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의 이름은 석고다.
석고는 수학교사다.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천재로 불릴 만큼 명석한 두되를 갖고 태어나 숫자와 수식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수학만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처럼 숫자는 그에게 틈을 보여주지 않고 언제나 멀리 멀리 달아나는 새침한 대상이다. 더 이상 삶의 가치를 얻지 못한 그에게 옆집으로 이사와 밝음과 따뜻함을 주는 화선을, 그래서 사랑하게 되었다. 천재수학자 석고는 아무도 풀 수 없는 방정식을 만든다. 그리고 그는 성공한다.
방은진 감독은 현명하고 정확하게 한국인이 바라는 <용의자 X>를 만들어냈다. 일본의 영화가 천재 수학자가 만든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방정식과 그를 풀고자 하는 또 한 명의 천재를 등장시켜 긴장감과 스릴을 맛보게 했다면 한국의 영화는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 가져오되 석고라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로 끌어간다. 같은 원작, 같은 내용이지만 사람의 마음, 사람의 감정에 방점을 찍은 방법은 더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석고는 그런 화선을 남사장의 품으로 보내고자 한다. 그래야 이 방정식이 완성되니까. 그래야 화선이 안전해지니까. 그래야 화선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까. 남사장의 차는 랜드로바 디스커버리4. 단단한 차의 외형은 그 안에 탑승한 사람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 같고 고가의 차량은 남사장이 경제적으로도 화선을 감쌀 수 있음을 암시한다. 남사장은 그래서 화선을 자기 차에 태우고 맛있는 것을 사주러 다니고 집에 데려다 준다. 랜드로바 디스커버리4는 결국 화선을 안정적인 삶으로 데려가기 위한 남사장의 마음이며 안락하고 안전한 삶의 보장과 다름없다.
글: 신지혜(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