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하는 장사, 오래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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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하는 장사, 오래 가지 못한다
  • 아이오토카
  • 승인 2011.05.02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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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희(자동차평론가)의 자동차만평

요 며칠 사이에 국내 브랜드의 준대형차 세 모델을 몰아볼 기회가 생겼다. 잠깐씩이나마 몰아보기 위해 바쁜 스케줄 가운데에도 시간을 뺐다. 그중 갓 새로 나온 차는 한 대뿐이었는데도 호들갑을 떤 이유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국내 브랜드 차를 몰아볼 수 있게 될지 몰라서였다. <오토카>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시승기를 쓰고 있기는 해도 국내 브랜드 차 시승에 참석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메이커에 직접 시승차를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한다고 해도 매체에 소속되어있지 않은 필자 같은 사람에게 차를 쉽게 내어주지 않을 것이 뻔하다.

같은 개인이라도 파워블로거라는 타이틀을 단 사람이라면 얘기는 좀 다르다. 잘 나가는 파워블로그는 하루에 1만 명 이상이 찾아보기 때문에 웬만한 신문에 가까운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필자 역시 블로그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불행하게도 방문자 수는 잘 나가는 블로그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은 국내 메이커들은 매체기자보다도 블로거들이 국산차 시승기회를 더 많이 얻는다. 매체에는 기껏해야 새 차가 나왔을 때 하루 이틀 차를 내주지만 블로거들에게는 적어도 며칠, 길게는 한 달씩도 차를 타보게 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단순히 시대적 흐름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메이커가 블로거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어느 정도 ‘자본에 의한 언론통제’의 성격이 있다. 짐작도 했고 소문도 들었지만, 최근 가까이 지내는 파워블로거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심증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메이커에서 블로그에 차 소개 및 시승기 게재를 요청하면서 시승차를 빌려주기로 했는데, 거기에 단서조항을 붙였다는 것이다. 만약 블로그 게재 내용 중에 해당 메이커나 차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가면 그에 대해 해명(이라 쓰고 반박이라고 읽는다)하는 댓글을 달겠다는 것, 그리고 원고료조로 비용을 지불할 테니 최소 몇 회 이상 해당 차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게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거나 왜곡하라는 요구는 아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표현이 무기인 블로그 게재 글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음은 분명하다.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 블로거는 이런 요구에 기분이 상해 결국 메이커의 요구를 모두 거절하고 받았던 시승차도 돌려줘버렸다고 한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식의 메이커와 블로거 사이의 거래는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개중에는 메이커의 통제에 순순히 잘 따르는 블로거들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금전적 거래에 있다. 글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미끼가 되어 글이 통제되는 것이 문제다. 사실 매체도 그런 면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매체의 경우, 글 쓰는 기자가 돈에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 매체에 실리는 광고가 흥정의 매개체가 된다. 그런 점에서 메이커가 블로거를 상대하는 방식은 매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광고 대신 글 자체를 갖고 흥정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큰 차이다. 컨텐츠 수용자에게 전달되는 방식과 효과는 블로그가 더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거래는 매체에서도 그랬듯, 장기적으로 블로거와 메이커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매체든 블로거든, 메이커는 정정당당하고 솔직한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래로 만들어진 컨텐츠는 누군가는 눈치 채기 마련이다. 들통 나면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매체와 블로거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컨텐츠 팔아서 먹고 살기 힘들어진 매체들은 대부분 광고를 쥐고 흔드는 메이커의 금권에 무너졌다. 블로거들마저 무너진다면 메이커와 관련된 컨텐츠는 믿을 구석이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메이커가 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들 손에 직접 돈을 쥐어주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 전에 메이커들은 정신차려야 한다.

글ㆍ류청희(자동차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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