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츠의 추억. 포르쉐 카레라4 & 카이엔 S 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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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츠의 추억. 포르쉐 카레라4 & 카이엔 S 디젤
  • 아이오토카
  • 승인 2012.12.2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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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소에 대한 기억은 풍경이나 함께한 사람에 대한 것으로 남는다. 하지만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보낸 시간들은 오롯이 포르쉐에 대한 기억만으로 가득하다. 그런 다음에서야 카레라 4의 운전석에 앉아 바라보던 알프스의 눈 덮힌 숲과 차창을 따라 함께 내달리던 검붉은 석양, 노란 벽면의 오래된 집들이 간간히 떠오를 뿐이다. 단편적인 이 기억의 파편들은 이상하게도 포르쉐를 떠올릴 때만이 퍼즐을 맞추듯 그림을 완성해나간다.

포르쉐 911 카레라 4와 카이엔 디젤 S의 국제시승회가 열린 장소는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 그라츠. 중심부에서는 조금 벗어나 언덕 위에 외따로 서 있는 디자인호텔이 캠프다. 이번에 처음 발표되는 991 카레라 4와 4S, 카레라 4 카브리올레와 4S 카브리올레 그리고 카이엔 디젤 S 등이 시승차로 준비되어 있다. 국내에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들어올 모델들이다. 911 중에서 네바퀴굴림 모델 수요는 얼마나 될까? 이전 세대인 997 판매의 34%를 차지했다고 하니 생각보다 많은 수치다. 도로환경이 다양한 만큼 911을 차고에 세워두지 않으려는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포르쉐 시승회의 특징이자 장점이라면 최대한 운전할 시간을 많이 준다는 것. 준비만 되면 언제든 키를 내준다. 캠프를 중심으로 정해진 시승 루트를 달리든 발길 닿는 대로 달리든 약속시간만 지키면 된다. 늦은 오후에 시작해 이른 아침까지의 2박3일 동안은 오로지 포르쉐에 매몰된 시간. 그 기억을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정리한다.
 

 

카레라 4, 4S네바퀴굴림 카레라 4는 통상 와이드 바디라고 부르는데, 뒷바퀴굴림 911에 비해 뒷부분이 넓다. 뒤쪽 휠 하우징이 22mm씩 늘어나 카레라 4의 윤거(좌우 바퀴 사이의 거리)는 44mm 넓어졌다. 카레라 4S의 윤거는 36mm 증가해 4와 4S에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드러낸다. 카레라 4의 뒷모습은 시각적으로 넓어 보일뿐더러 양쪽 리어 램프 사이에 라이트 패널을 달아 디자인에서도 차별화를 준다.

새로운 카레라 4에는 포르쉐 구동력 제어장치(PTM)를 달았다. 4WD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뒷바퀴굴림을 기반으로 다양한 주행환경에서 탄력적으로 동력을 분배한다. 지면에 닿아있는 네 개의 타이어는 주행 상황에 따라 한쪽으로 쏠리거나 미끄러지는데 이때 각 바퀴의 슬립 마찰값을 감지해 접지력을 살린다. 전형적인 뒷바퀴굴림의 주행성능에 핸들링의 민첩성을 더한 장치인 셈이다. 또한 포르쉐는 새로 카레라 4를 내놓으며 차간거리 및 속도제어 기능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시스템을 적용했다.

 

 

 

 

 

실내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 계기판 오른쪽 작은 창-메뉴 바를 조작하면 G포스나 내비게이션이 나타나기도 하는-에 새로 앞바퀴와 뒷바퀴의 무게 배분 상황을 나타내주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거나 코너를 돌 때 앞바퀴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막대그래프의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4WD지만 구동력이 뒤에 몰려있을 때는 뒷바퀴굴림과 다름없다. 그래서 구동력 제어장치(PTM)가 기능을 발휘한다. 탄력 주행을 지원하는 이 장치는 연비를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트렌드에 적응하려는 포르쉐의 노력은 가상하다.

 

 

 

 

 

카레라 4는 3.4L 350마력 박서 엔진을 얹는다. 수동 7단이 기본으로 옵션으로 7단 PDK를 선택할 수 있다. 0→시속 100km 가속은 수동 7단이 4.9초인데, 7단 PDK가 4.7초로 더 빠르다. 처음에 탄 모델은 7단 PDK. 속도가 붙기 시작한 카레라 4는 지면에 한층 다가서는 느낌을 준다. 단단한 시트는 거의 바닥에 닿을 듯 노면의 미세한 진동마저 혈관을 타고 전달되는데, 이상하리만치 안심이 된다. 말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차체 강성, 끈적한 접지력, 그리고 정확한 핸들링… 그저 속도를 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뒤따라오는 차는 차들이 백미러 속의 점으로 사라져간다.

 

 

 

 

 

이어서 카레라 4S를 탄다. 노란색 세라믹 휠, 상어 꼬리 같은 리어 윙이 고수 위의 또 다른 고수 같은 존재감을 전한다. 3.8L 400마력 박서 엔진을 얹었다. 오후 4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키 큰 나무들의 공간으로 들어가면 사위는 어느새 어둑어둑해진다. 늦가을의 정취는 깊어가는데 인적 드문 풍경은 쓸쓸하기만 하다.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좁고 가파른 길을 카레라 4S는 가열차게 달린다. 그늘이 깊은 도로는 축축하다. 역설적으로 네바퀴굴림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카레라 4S의 시속 100km 가속성능은 카레라 4보다 0.4초 빠르지만 내 몸의 촉수는 그것을 인지할 만큼 예민하지 못하다. 둘 다 기막히게 잘 달린다는 느낌뿐.

 

 

 

 

 

카레라 4 수동 7단 모델을 탔을 때는 정해진 시간까지 목적지에 가야했다. 목적지는 공항인데, 포르쉐가 격납고를 개조해 신차발표회장으로 만들었다. 포르쉐다운 발상이다. 짧은 직선로를 두고 에둘러가는 롱 코스를 선택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은 숲으로, 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눈은 점점 쌓여가기 시작한다. 계절의 흐름을 누군가 영사기를 틀어 보여주는 것처럼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바뀐다. 카레라 4의 바퀴 아래 알프스 일대의 설원이 아득하게 펼쳐지고 있다.

클러치는 묵직하지만 기어는 가뿐하게 제자리를 파고든다. 미동도 없이. PDK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특별히 수동 기어를 고집할 이유는 없지만 모처럼 손맛을 느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분주하게 기어를 바꾸는 재미에는 자기만족도 크지 않을까. 도대체 몇 개의 구배를 넘었을까, 핸들링 머신의 와인딩 로드 정복은 도무지 지칠 줄을 모른다. 이윽고 탁 트인 도로를 만나 기어를 최고단수에 내리꽂는다.

 

 

 

카레라 4 카브리올레
포르쉐는 하드톱 카브리올레를 만들지 않는다. 전통적인 오픈카는 역시 소프트톱이라는 철학 때문이다. 쌀쌀한 날씨지만 루프를 열고 달린다. 창문을 올린 상태에서 바람은 생각보다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히터를 최대로 틀고 시트열선을 작동시키니 춥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뜨거운 온천에 몸을 담그고 얼굴만 찬공기에 내놓은 시원함이랄까. 네바퀴굴림 911 카레라 4는 이전 모델보다 65kg이 더 가벼워졌다. 소프트톱 911은 쿠페와 마찬가지로 강성이 높은 알루미늄-스틸 구조를 공유한다. 새로운 카레라 4 카브리올레에서 특징적인 것은 포르쉐가 새로 개발한 패널 바우 톱이란 것.

 

 

 

 

 

 

마그네슘 재질의 패널 바우를 단 이 소프트톱은 루프를 닫았을 때 쿠페와 같은 루프 아치를 만들어 공기역학적인 장점을 배가시켜준다. 차체가 커졌지만 톱의 무게는 이전과 같고 시속 50km 이하 속도에서 약 13초 만에 열리거나 닫히는 시간도 같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일체형의 전동 방식 윈드 디플렉터로 직접 달거나 분리할 필요가 없다.

달리면서 인상적인 것은 스티어링 휠의 즉각적인 피드백이다.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 대신 전기 기계식 스티어링을 도입했는데, 이는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묵직하면서 매우 정밀한 제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루프를 열어젖힌 고속 달리기에서도 안정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차를 온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사뭇 좋다.

 

 

 

 

 

플로어의 계기 버튼 가운데 머플러 모양이 표시된 게 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스포트 모드가 되면서 스포츠 배기음이 향상된다. 소리가 주는 감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 포르쉐다. 인위적인 사운드가 아니라 6기통 박서 엔진의 사운드 질감을 높여주어 운전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어느새 시속 220km. 사운드는 심장을 두들기는데 바람은 귀 끝조차 간질이지 못했다.

 

 

 

카이엔 S 디젤
카레라 4를 타고난 다음일까, 카이엔의 큰 덩치가 부드럽기만 하다. 그러나 강력한 토크는 발진에서부터 뚜렷한 존재감을 낸다. 그리고 어느 기어 영역에 있을 때나 원하는 속도를 내는데 주저함은 없다. 와인딩 로드에서는 물론 카레라 4의 타이트함은 없지만 덩치 큰 911이라는 유전자는 속일 수 없다. 풍경을 좀 더 크게 받아들이고 여유 있게 달리는 것도 자동차의 즐거움 중 하나다.

카이엔 S 디젤은 V8 디젤차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오토 스타트-스톱 기능이 적용된 모델이다. 두 개의 터보를 단 신형 V8 4.2L 382마력 엔진은 자동 8단 팁트로닉 S와 매칭되어 0→시속 100km 가속 5.7초, 최고시속 252km의 압도적인 성능을 낸다. 팁트로닉 S에는 또한 오프로드 모드가 달려 비포장도로에서의 주파력을 높여준다. 향상된 연비에 따라 장거리주행에도 부담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카이엔의 인기가 높은 국내에서도 가장 기대를 모으는 모델이다.

 

 

 

 

 

 

떠나는 날 아침 비가 내린다. 다시 카레라 4를 타고 주변 일대를 돌아본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도 몰고 나갈 수 있다는 게 4의 매력이다. 안개에 쌓인 숲에서 잠시 길을 잃은 것처럼 멈춰 섰다. 가만히 카레라의 조용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저 빠르게만 달리는 차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때서야 아름다운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기계공학의 미학. 지구의 어느 한쪽, 그라츠에서의 시간은 잠시 포르쉐와 함께 멈추었다.

글·최주식

Porsche 911 carrera 4
크기(길이×너비×높이): 4491×1852×1304mm
휠베이스: 2450mm
엔진: 수평대향 6기통 3436cc 휘발유
최고출력: 350마력/7400rpm
최대토크: 38.2kg·m/5600rpm
연비: 8.6L/100km(유럽 기준)
CO2 배출량: 203g/km
변속기: 자동 7단(PDK)
서스펜션: 스트럿/멀티링크
브레이크(앞, 뒤): 모두 V디스크
타이어(앞, 뒤): 235/40 ZR19, 295/35 ZR19

Cayenne S Diesel
크기(길이×너비×높이): 4846X1939X1705mm
휠베이스: 2895mm
엔진: V8, 4134cc, 디젤
최고출력: 382마력/3750rpm
최대토크: 83.3kg·m/2000~2750rpm
연비: 8.3L/100km(유럽 기준)
CO2 배출량: 218g/km
변속기: 자동 8단(팁트로닉 S)
서스펜션: 더블 위시본/멀티링크
브레이크(앞, 뒤): 모두 V디스크
타이어(앞, 뒤): 모두 255/55 R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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